- 라라 소소 41
2017년 2월 2일에 남아 쌍둥이가 태어났다.
2017년은 정유년, 즉 붉은 닭의 해였다. 식구들은 2월 2일에 태어난 2명의 닭이네, 둘둘치킨이네, 하고 웃으며 말하곤 했다.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지고 태어난 둥이들은 ‘겸’ 자를 돌림으로 쓰게 되었고, 식구들은 둥이들을 대부분 각자의 이름으로 불렀지만 한꺼번에 빠르게 부르거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겸이들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쌍둥이는 이렇게 각자 한 명씩의 둘이 아닌 그저 하나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겸이들은 산부인과와 조리원을 거쳐 집에 오면서부터 할머니와 엄마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겸이들의 할머니는 우리 엄마고, 겸이들의 엄마는 새언니이다. 나는 둥이들의 고모다. 겸이들이 두 살이 되면서 새언니는 복직을 했고 엄마가 전적으로 겸이들의 주 양육자가 되었다.
겸이들은 여름과 겨울에 방학을 하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서울집에 와서 지낸다. 이 기간을 나는 [조카 돌봄 주간]이라고 부른다. 조카들이 아직 어리고 어린이집에도 다니지 않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엄마가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프리랜서인 내가 조카 돌봄에 어쩔 수 없이 동승하게 되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귀하고 사랑스러운 조카들이라 이것저것 찾아서 공부도 많이 하는 시기였다. 걷는 걸 재미있어하고 고형식을 먹으면서 한두 번씩 서울집에 데리고 왔는데, 새로운 곳을 아이들은 좋아했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는 것에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즐거워했다. 가끔은 따로 한 명만 오기도 했다. 각자의 시간을 갖게 해 주기 위해서, 또 함께 있는 식구의 사랑을 혼자서 담뿍 받을 수 있도록.
평소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수원집에 가서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지만, 겸이들이 서울집에 있으면 또 다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나도 모르게 느끼게 된다. 겸이들이 수원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 피곤할 때 모른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고, 바쁠 때 애써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서울집에 있으면 피곤해도 바빠서 시간이 거의 나지 않아도, 잠시라도 들러서 책이라도 읽어줘야 마음이 편해진다. 아이들 양육이 힘에 부친다는 걸 알고 있으니 한해씩 지날수록 더 힘에 부치는 엄마의 노고가 신경 쓰여서 모른척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처음에는 많이 속상했다. 다른 집을 보면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부모들이 더 시간을 내서 아이들을 돌보고 신경 쓰던데, 둥이들 엄마와 아빠에게 일주일이라는 자유 시간을 통으로 주는 이런 할머니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엄마는 아무래도 엄마 집이 편하다고 했다. 서울에서나 수원에서나 겸이들을 돌보는 건 같은데 주말에만 올 수 있는 엄마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게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는 거라고 하셨다. 게다가 동네에 오래 살아 지인들도 많으니, 겸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잠깐 티타임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많이 커서 둘이서 큰 무리 없이 잘 놀다. 식사 시간 사이에 할머니 없이 할아버지와 두세 시간 정도 있게 하고 외출도 가능하다.
보통 조카 돌봄 주간은 여름과 겨울인데 어찌나 빨리 돌아오던지, 그 사이에 미리 어디에 갈지 알아봐 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를 찾아보고, 괜찮은 어린이 박물관이나 뮤지엄은 어디 없을까 알아보고, 방학 기간에 열리는 프로그램들도 찾아본다. 종종 크게 열리는 행사가 있으면 아이들도 참여해 보면 어떨지 고민하기도 한다. 도서관에도 데리고 가고 겸이들이 좋아해서 매번 가려고 하는 장소들도 예약해 놓는다.
겸이들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쌍둥이는 보통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조금 작은 편이라고 하는데, 우리 조카들은 상위에 들 정도로 발육이 좋다. 얼굴은 아직 어린아이인데 키는 부쩍 자란 모습. 겸이들이 작년까지 재미있게 놀았던 실내 놀이터 중에는 미취학 아동까지만 입장이 가능한 곳도 있었다. 보통 미취학 아동,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까지 입장 가능으로 구분되는 듯했다. 안타까운 건 수원보다는 서울에 아동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겸이들의 부모가 아니고 고모여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거다.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곳이면 그냥 엄마인 척 (보통은 겸이들과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고모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엄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조카들을 데리고 들어가기도 한다. 겸이들은 수원시민이라고 굳이 얘기하지 않기도 한다.
지금은 [조카 돌봄 주간]이다.
오늘은 조카 돌봄 주간 여섯째 날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겸이들이 서울집에 왔다. 도서관 프로그램을 검색하다가 세계 영화 애니메이션 피규어 전시회를 우연히 발견해서 가 보았고, 다른 구에서 처음으로 기획했다는 팝업 놀이터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겸이들이 늘 즐거워하는 둘리 뮤지엄은 시간과 인원수가 정해져 있던 예약제가 풀려서 점심 식사 후에 천천히 가서 시간 구애받지 않고 신나고 흥미롭게 여유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미니언즈들이 잔뜩 나오는 <슈퍼 배드 4>를 더빙으로 예매했다. 조카들과 함께 외출을 하면 물과 간식도 챙겨야 하고, 이리저리 튀고 뛰고 정신없어서 다치지는 않을까 조심도 해야 하고, 식사도 신경 써야 한다. 무엇보다 지나고 보면 소소한 지출까지 훌쩍 늘어나 있곤 한다. 그럼에도 지금의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또 내년의 겸이들은 지금의 겸이들과 많이 다를 것을 알기에 피곤하고 힘들어도 조카 돌봄 주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이번주까지 학교 방과 후 교실이 방학이다. 사실 학교 방학이라고는 해도 딱 일주일을 학교에 가지 않는 거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늘봄이나 방과 후 교실 수업으로 학교에 간다고 하더라도, 점심 식사는 집에서 챙겨줘야 한다는 데 주 양육자의 고충이 있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때에는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 일주일 방학을 제외한 나머지 삼 주는 그래도 몇 시간이라도 학교에 간다는 게 엄마에게는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겸이들 입장에서는 더 놀고 싶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방학 때 학교에 안 가고 놀기만 해도 줄어드는 시간이 아쉬웠는데 말이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 정말 힘들었겠다. 초등학생인 오빠와 내가 둘 다 집에서 방학 내내 놀았으니...
이렇게 또 한 스푼 엄마의 노고를 이해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찾아온다. 겸이들도 할머니와 고모의 사랑을 언젠가는 이해하고 감사해할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