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라 소소

죽는 순간에 무엇이 가장 그리울지

- 라라 소소 87

by Chiara 라라

죽는 순간에 무엇이 가장 그리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겸이들이 그리울 것 같기도 하고. 삶에 대한 미련이 갑자기 생길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그리울 것 같기도 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그 순간이 또 언제 올지 모르니까 상상이 잘 가지 않지만 생각해 본다, 죽는 순간에 무엇이 가장 그리울지에 대해서.


죽음을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무서웠던 건, 세상에 미련이 남을까 봐, 세상에 대한 미련,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냥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을 때 그때, 어쩌면 지금, 세상을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힘든 시간이었다. 내가 죽어도 괜찮겠다 싶었던 시간이었다. 겸이들이 2살이었나 3살이었나. 이제 막 어린이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그 봄이지 않았나 싶다. 죽어도 되겠다 싶었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마 많지는 않지만 내 물건들을 정리할 때,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때 생각나던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엄마가 제일 고맙다. 어쨌든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었으니 엄마는 정말로 고맙고 소중하다. 그럼에도 또 서운한 것도 참 많은데 막상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라면 명징한 장면이 없는 걸 보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질 수도 있을까. 나는 엄마가 어디냐고 물어볼 때가 가장 싫었다. 내가 어디에, 특정한 곳에 있어야 할까 봐서 싫었다. 뭐 하고 있는지 물어봐주면 좋을 텐데, 엄마는 늘 어디냐고 물어보지 뭐 하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대뜸 전화 첫마디가 “어디야?” 이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나곤 했다. 엄마의 그 소리가 그리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파란 하늘과 싱그런 구름과 아름다운 꽃들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늘 그리운 우리 할머니랑 핑키도 그리울 것 같다. 죽으면 할머니도 만나고 할아버지도 만나고 핑키도 만날 거니까, 이모도 만나고 고모도 만날 거니까, 예수님께 가는 거니까 그 모두가 그리울 것 같은데 또 금세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있을 것 같다. 커피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커피의 향이 나기를 바라거나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다 읽지 못한 책들이나 내가 좋아하는 책이 그리울 것 같기도 하고, 가끔 내면의 무언가 따스한 마음과 그 느낌이 그리울 것 같다. 그리고 당신도 그리울 거다. 나의 사랑. 내가 사랑했던 사람. 어쩌면 지금도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사랑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사람. 당신, 잘 지내고 있나요? 제가 보고 싶은 적은 없나요. 나는 보고 싶고 느끼고 싶습니다. 당신이요. 당신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나의 죽음과 당신.


어쩌면 기타를 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소리 내어 웃는 내 모습이 그 소리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사랑받는 기분, 챙김 받는 기분, 내가 최고라고 느끼게끔 이야기해 주었던 사람들, 이 모두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역시 그림움의 대상은 사람이 가장 클 수 있겠다는 생각. 먹을 거와 자연과 예수님과 그 모든 것들. 내가 가보고 싶었던 장소와 나라, 머물고 싶었던 그곳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 양동마을에서 따스했던 대청마루. 그리고 병산서원의 그곳. 하회마을에서 울면서 보냈던 하루. 어쩌면 가슴 아팠던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눈이 다쳐서 잘 보이지 않았던 검은 고양이. 아마도 그 고양이의 아이들일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 망가진 고양이 집 터. 엉망이 되어 물도 편안히 마실 수 없게 되어버린 그곳.


그냥 행복하게 웃으면서 죽으면 좋겠는데. 그리워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는데.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 순간을 맞이하면 좋겠다.

지금 나에게 그 순간이 온다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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