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라 소소

비장함은 없어, 잊지 마

- 라라 소소 88

by Chiara 라라


지난주에 머리를 잘랐다. 내가 직접 자른 건 아니고 눈에 보이는 미용실에 들어가서 바로 긴 머리를 싹둑. 요즘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미용실이 많아서 내심 걱정했으나 한산한 오전이어서인지 무리 없이 머리를 자를 수 있었다. 계획상으로는 5월이나 6월이었는데 시간은 흘렀고 7월이 되어서야 겨우 자르게 되었다. 이번에는 40cm가 넘었다.


머리를 자를 때는 우선 어깨 부분에 고무줄로 머리카락을 묶는다. 잘리는 머리카락이 최대한 건강한 모발로 길게 나올 수 있도록 묶어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더 높이 묶어 내 머리가 짧은 단발이 되어도 괜찮다고 말하는데 헤어 디자이너는 대부분 긴 머리 자르는 걸 아까워하곤 한다. 펌을 하거나 머리에 포인트를 주기에는 긴 머리가 좋기는 하다. 나도 긴 머리에 관심을 두고 정성을 들이던 때가 아주 잠시 있었다. 내 모발은 늘 길고 건강한 편이어서 헤어 디자이너가 다양한 스타일은 권하기도 했고 특별히 튀지 않을 정도로 나도 그 조언에 따르곤 했다. 그러다가 점점 미용실에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앞머리는 집에서 내가 필요할 때 바로 자르고 – 자주 이상하게 잘렸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미용실에 가서 펌을 하거나 머리 색을 바꾸거나 했다. 짧은 머리는 오히려 관리가 더 어려울 것만 같았고 내 머리가 긴 상태인 걸 좋아하기도 했다.




나는 지병이 있다. 두 번째 수술을 받은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 즈음, 주변에 악성 종양이 발견되거나 몸이 많이 안 좋아 병원 치료를 받는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비장한 각오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다. 내가 못나 보였고 한심했으며 모든 일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다 귀찮았고 무기력했음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산뜻한 마음이 들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에게서 덜어낼 수 있는 건 머리밖에 없었다. 머리카락은 꽤 길었고 몇 년 동안 관리를 하지도 미용실에서 펌이나 염색을 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원래 머리 그대로의 내 까만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한국 백혈병 소아암 협회에서는 소아암 어린이의 가발 제작 및 무상 지원을 위해 모발을 기부받는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 펌도 염색도 다른 어떤 것도 하지 않은 건강한 모발 25cm 이상이면 기부가 가능하다고 했다. 머리카락을 앞으로 해서 재도 30cm가 넘었으니 충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중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귀밑에서 찰랑거리는 단발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이삼 년에 한 번씩 모발을 기부하고 있다. 나는 머리가 잘 자라는 편이고, 어차피 게으름에 미용실에 자주 가지도 않아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쑥쑥 길어지는 머리카락, 어느새 자라 있는 머리카락이 익숙하다. 긴 머리로 평생을 살고 있으니 긴 머리가 좋고, 모발 기부로 이삼 년에 한 번씩 하게 되는 단발도 기분 전환이 된다.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머리를 자르면 단발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도 듣는다. 단발로 사진을 찍으면 얼굴도 머리도 동글동글해서 찐빵같이 나오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게 맞을까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주위에서 잘 어울린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평소에 칭찬받을 일이 없어서인지 애정에 굶주려서인지 그런 한 마디의 관심에도 솔깃하게 되는 나다.




코로나를 지나며 한국 백혈병 소아암 협회에서는 더 이상 모발 기부를 받지 않는다. 협회의 모발 기부 캠페인은 종료되었다. 다른 곳에서도 모발 기부를 받고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소아암 협회의 캠페인에 참여했던 건 한국 백혈병 소아암 협회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했고 규정이 타이트해서 더 신뢰가 가기도 했던 마음에서다. 코로나를 지나며 이왕 머리를 길렀으니 다른 곳에서라도 기부를 하고 이젠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규정이 다소 약한 곳에는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제대로 하는 게 맞을까, 가발 제작에 약품처리를 하면서 모발이 다 녹아버릴 텐데도 염색한 머리를 받는 걸까, 등등의 생각과 의심을 많이 하면서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이 주관하는 ‘어머나 운동’에 모발을 기부했다. 펌이나 염색, 탈색이 가능하다고 했고, 손상된 머리는 제외될 수 있다고 했다. 길이 25cm 이상은 동일했다. 30가닥 이상의 수량도, 가닥으로 모아서 보내도 된다는 말에도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보냈다.


모발 기부를 하면 기부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고무줄로 묶은 머리카락 윗부분을 잘라 봉투에 넣고 등기로 보내고 나서 그 등기번호를 기입하여 기부증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몇 주 뒤에 기부증서가 발급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신청하는 페이지가 있다. 자른 머리를 등기로 보냈으니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기부증서 신청을 하기 위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이 기부증서들을 어디에 쓴 적도 없고 출력한 적도 없지만 보냈으니 확인차원에서 신청을 하기도 했다. 우체국에서 발급받은 영수증이 없다는 걸 등기번호를 기입하는 란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날을 돌아보니 아무래도 카페에서 편지를 쓰며 불필요한 다른 종이들을 쌓아 놨었는데 거기에서 휴지와 함께 버려진듯했다. 기부증서가 뭐라고, 어디에 쓰지도 않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모발기부를 왜 하는 걸까. 단지 머리가 길었으니까 그냥 잘라 버리기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에 쓰였으면 하는 바람에서인 걸까. 소아암 아이들을 위해서인 걸까. 그 마음이 애틋하고 걱정되어서 그런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모발을 기부하는 게 더 좋은 건데 왜 규정이 타이트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규정이 타이트해야지만 믿음이 갔을까.


나는 어떤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모발 기부에 비장한 마음을 갖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닌가 싶다. 떨어진 머리카락이든 빗에 있던 머리카락이든 펌이나 염색, 탈색을 한 머리카락이든 머리카락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가발 제작에 힘이 되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거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타이트한 규정만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수월하게 모발을 기부할 수 있으면 그만큼 많은 가발을 제작할 수 있을 텐데 성경에서 규정에 얽매여 있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 같은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어머나 운동’에 물음표를 던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나 운동'은 '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의 줄인 말로 "머리는 짧게, 행복한 마음은 길게"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동참하면 좋겠다.


처음부터 비장한 각오는 없었다. 잊지 말자. 비장함은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판단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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