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89
독서 모임에서 이번 달 발제자는 나였다.
책은 보통 한국 여성 작가, 한국 남성 작가, 외국 여성 작가, 외국 남성 작가 순으로 돌아가며 그달에 맞게 각자 세 권 정도 추천하고 투표를 통해서 선정하는데, 이번에는 모두가 추천하지는 않고 인생 새로운 막을 시작하는 분의 선택으로 정해졌다. 얇고 여름에 어울리는 책이었으나 나는 무서움을 많이 타기도 하고 기담이든 괴담이든 공포든 호러든 읽으면서 느껴지는 그 긴장된 감정이 내 몸에 드러나도록 일부러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펼쳐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였다. 평소 독서 모임의 책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발제 차례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화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초조해지고 약간 더 세밀하게 읽게 되고, 작가가 작품에 숨긴 게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무언가 있으리라 단정하며 숨은 내용까지 추측하며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얇은 책은 더 부담이다. 단편 네 편이 들어있는 얇은 기담 책이라니.
기담을 무서운 이야기로 착각하고 있었다. 두려움을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이상하네? 가 첫 느낌이었다. 책을 다 읽고서 찾아보니 기담은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뜻이 있었다. 유의어는 기담괴설로 ‘기이하고 괴상한 이야기’이다. ‘이상야릇하다’는 “정상적이지 않고 별나며 괴상하다”는 의미. 여기까지 찾아보았을 때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래, 이 소설들은 정상적이지 않아, 별나기도 하고, 괴상하기도 해, 근데 재미는 잘 모르겠어. 그런 이야기야.
한 문장(누군가에게 무생물로 존재한다는 게 그토록 불쾌한 일인지 몰랐다.)과 한 단어(극진)에 꽂혔다. 이 둘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왜 여기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무생물로 존재” 그리고 “극진했다”. ‘극진하다’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태도가 있다.’는 뜻이니 내가 집착하고 있는 이 둘은 서로 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닐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앞에 나서고 싶지 않다. 조용히 나의 할 일을 하는 게 더 좋을 때가 많은데 한두 명이 아닌 셋 이상의 집단 안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정말로 가마니로 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가마니의 어원이 일본어여서 곡식을 담는 자루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더 좋겠지만 ‘가만히’와 ‘가마니’를 이용한 언어유희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쓰고야 말았다. 중요한 건 곡식이지 자루가 아니다. 꼭 특정한 자루가 아니어도 아무 데나 담으면 된다. 봉사를 할 때는 내가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꼭 나여야만 하는 건 사회에서의 일이다. 능력을 인정받아야 할 때, 누군가 보다 높이 놀라 서야 할 때, 경쟁을 하는 상황이 올 때, 나를 드러내 보여야 할 때.
무생물은 ‘생물이 아닌 물건. 세포로 이루어지지 않은 돌, 물, 흙 따위’를 이른다. 나는 무생물이 마음에 든다. 그 자체로도 충만하고 드러나지 않게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나도 무생물이 되고 싶다. 내가 무생물이 되고 싶은 것과 누군가가 나를 무생물로 취급하는 건 꽤나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취급을 받으면 내가 무생물이라고 느껴지기보단 은근히 무시당하고 있다는 오묘한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특히 애매하게 나만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단톡방에서의 한 마디라든지, 모임에서의 눈빛이라든지, 그런 건 자신만이 감지할 수 있는 센서에서 탐지된다. 내가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우물쭈물 넘어갔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직접 물어보기도 애매한 사이여서 그럴 거라고 위로하며 나를 토닥인다. 극진까지는 아니어도 나도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상황에서 극진했으리라.
불필요한 곳에 마음 쓰지 말자.
발제 때문에, 얇은 책이어서, 기담이어서, 어쨌든 여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