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라 소소

종료

- 라라 소소 95

by Chiara 라라


***님의 요청으로 모임통장 참여가 종료되었습니다.


알람을 받고 이게 무슨 말인지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종료가 되었다고? **이 참여 종료를 요청했다고? 그러면 **이가 모임통장을 이제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인 건가. **이만 모임통장 참여를 종료하는 건가. **이가 나와 모임통장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긴 건가. 무슨 소리지?


**이가 만들었던 모임통장이 사라졌다. 우리 둘이 하는 모임통장이었으니 한 명이 종료를 하면 다른 한 명도 사용하지 못하나 보다. 그런 건 몰랐다. 아니면 만든 사람이 **이고 만든 사람이 종료를 했으니 통장이 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 **이의 생일날이었다. **이의 생일은 기억하기 쉬운 숫자의 조합이다. 퇴근할 시간쯤 되어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의 통화였다. **이가 저 멀리 남쪽 나라로 이사 간 이후로 우리는 만난 적이 없다. 벌써 이 년이 지났다. 항상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 놓고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내 괴벽으로 통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생일 축하를 간단히 하고, 그간 쌓인 얘기를 하느라 시간이 후루룩 지나갔다. 삶이 힘들면 좋았던 때를 더 좋게 기억하는 법이다.


떠나고 싶다. 여행 가고 싶어. 그때 재미있었는데. 우리 또 여행 가자.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어디 가보고 싶은 나라 있어? 멀리 가자. 유럽 어때?


지금 당장은 돈도 없고 이런저런 일로 여의찮으니 이 년 뒤에 가는 걸로 얘기했다. 유럽은 멀고 아무래도 경비가 많이 들 테니까 조금씩 돈을 모으자고 했다. 통화를 하면서 **은 모임통장을 개설했다. 온라인으로 모임통장을 만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입출금을 다 확인할 수가 있어서 좋다. 이렇게 여행을 위해 모임통장을 만든 건 처음이었다. 설렜다.


이 년 뒤는 너무 멀다. 우리 가까운 데를 먼저 가자. 일본이나 제주도라도.


**은 제주도를 좋아한다. 당일치기로 제주도를 다녀올 정도니 말 다했지. 그럼에도 나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우리는 일정이 잘 맞지 않는 친구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콩닥콩닥 친구로 지내고 있는데 여행은 한 손에 꼽는다. 동네 친구여서 오다가다 들르고 놀고 어울리는 게 일상이어서 여행을 갈 생각을 별로 하지 않기도 했다. **네 집에서 자고 쉬면서 방구석 여행을 하기는 수두룩하다. 그런 **이 없어서 이 년 동안 외로웠다. 오다가다 갈 곳이 없었다.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고 말할 데도 없었다. 한밤중에 빙수 먹자고 찾아갈 곳도 없었다. 커피 만들어 달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모두 다, 나 혼자서 해야 했다. 이런 이 년을 보내고 나니 여행이라는 말에 설레고 신날 수밖에.


당장은 돈이 없어서 그다음 달부터 조금씩 넣기로 했는데, **은 가진 돈을 쓰기 전에 넣고 싶다고 했다. 먼저 넣으라고 하니, 그건 또 싫다고, 같이 넣고 싶다고 했다. 연초에 아버지 병원비 이후로 계속 생활비가 부족하다가 다음 달부터는 단돈 오만 원이라도 여유가 있지 않을까 희망하던 차였다. 오만 원씩 이십사 개월이면 백이십만 원이다. 유럽으로 여행 가기에는 적은 돈이지만 조금씩 더 넣으면 되고 그때 가서 여비를 더 보태면 된다. 이 년 뒤에도 지금처럼 허덕이며 살고 있지는 않을 테다. 이 년 뒤에도 이렇게 살고 있으면 안 되는 거다.


한참 신나는 얘기를 하다가, 슬픈 얘기가 **의 입에서 발화되었다. 어둠에 감싸인 이야기가 스멀스멀 귀에 들어왔다. 다 들었다. 내 입에서는 상투적인 말만 튀어나왔다.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희망은 준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모임통장은 왜 종료한 거냐고.

우리 여행은 안 가는 거냐고.

슬픔과 어둠 때문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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