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라 소소

공포와 슬픔의 감각

- 라라 소소 96

by Chiara 라라

공포영화를 좋아하고 즐겨보던 때가 있었다. 으스스한 영화들이 여름에 개봉을 많이 했는데, 친구와 둘이 대부분의 공포영화를 보러 자주 극장에 가곤 했다. 즐기는 것과 잘하는 것에는 늘 한 뼘만큼의 간격이 존재해서 공포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악몽에 시달리고, 무서워서 온몸이 바싹 말라갔다.


사촌 언니는 우리 엄마를 원더우먼이라고 불렀다. 언니 시대에는 최고의 여성 캐릭터가 원더우먼이었는데 엄마가 못하는 게 없이 다 잘해서 원더우먼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엄마는 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엄마는 늘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었다. 어린 시절, 내가 무서워하면 엄마는 성호경을 그으라고 했다. 세상에 귀신은 없다고. 성호경을 그어도 무서운 건 내 믿음이 부족해서였을까.




공포를 감각하는 기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눈을 가렸다. 귀도 막았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려고 하면 모든 걸 차단했다. 언제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무작정 차단한 상태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대부분의 극적인 장면은 다 지나가고 평화가 찾아와 있곤 했다.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 옆에 있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렇게까지 해서 공포영화를 봐야 하는 거냐는 질문이 돌아오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에 극적인 순간이 다가오는 바로 직전의 순간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입은 바짝 마르고 심장은 두근거리는 평소와는 다른, 이상 감각을 그리워한 걸지도 모르겠다. 뛰어나지 않고 튀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모범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행하는 일종의 일탈, 그런 거. 그래봤자 나만 더 힘든 걸 알면서도 중독처럼 자신을 괴롭혔다. 이십 대 후반에 들어가면서 공포영화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긴장이 싫어졌나, 자신을 덜 고통스럽게 하기로 했나, 심각한 실연으로 아무런 감각이 없었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았던가.


친구는 모든 잔인한 장면을 눈으로 받아냈다. 무서울 것 같으면 손가락으로 귀를 접어 구멍을 막았다. 조금이라도 소리가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꼼꼼하게. 가끔가다 내가 먼저 눈을 뜨고 귀를 풀면 친구는 나를 쳐다보며 심각한 소리가 이제는 지나갔냐고 묻는 표정으로 입만 벙긋거리며 물어봤다. 나는 잘 모르지만 내가 좀 살 것 같으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에 예민하게 감각했다. 잔인한 소리, 날카로운 소리, 긴장된 소리는 잔인하게 친구의 마음을 파고들고, 날카롭게 가슴을 찢어내고, 긴장을 유발하여 몸을 아프게 했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면 내용과 분위기는 사라졌고, 친구는 꿈도 꾸지 않고 잠을 잘 잤다.




사람이 신체의 부위를 이용해서 스스로 감각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외부의 자극으로 이루어진다. 자극이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조절할 수 있지는 않다는 말이 된다. 오감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나타내는 말인데 여기에 하나가 더해지면 육감이다. 숫자 육을 써서 여섯 가지의 감각을 나타내지만, 사실상 앞선 다섯 감각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감각이다. 직감이나 예감이라고 부르는 그런 감각이어서 외부 자극보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신비한 감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는 시각적인 요소를 극대화해서 관객을 사로잡는다. 시각 예술의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생각해 보면 영화는 보통 대화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므로 청각적인 자극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고도 할 수 있다. 배경음악이나 음향 효과도 영화를 보는 묘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시각과 청각에 예민한 사람들이 영화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에는 내용이 있고 그 전개가 책으로 대표되는 활자에 비해서 정해진 시간에 압축적으로 표현되므로 더 깊게 감각을 사용하게 되는 듯하다.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촬영 기법이나 관객이 앉는 좌석을 이용하여 후각이나 촉각을 자극하기도 한다. 3D 입체영상에서 더 나아가 4D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만약 공포영화를 즐기던 때에 4D 영화관이 많았다면 나는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시각과 청각을 통제하는 건 괜찮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놀라거나 통제당하는 건 불편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반응하는 것과 슬픔에 반응하는 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시각에 예민한 사람, 청각에 예민한 사람, 오감과 육감에까지 하나씩 예민한 사람들. 세상에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슬픔을 잊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몸을 자극하고 공포를 느끼게 하고 시선을 돌리게 하기도 한다는 걸 지금의 나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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