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97
저녁 8시가 되면 익숙한 목소리와 박자로 이루어진 국민체조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에서 국민체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잘 들리는 걸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리라.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요즘 아이들도 이 체조를 배울까. 온몸을 쭉쭉 펴고 접고 움직이고 폴짝폴짝 뛰다 보면 은근히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가빠지던 게 생각난다. 마지막은 뭐라고 소리치며 마무리되는 노래가 끝나면 왠지 허전해지는 이 마음은 무언인가.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검색해 보니, AI 브리핑에서는 ‘그쳐’라고 하기도 하고 ‘헤쳐’라고 하기도 한다는 얘기가 올라와 있었다. 국민체조 시작, 이라는 말로 체조가 시작하니, 마무리는 끝의 의미이기도 한 ‘그쳐’라는 의견과 모여서 체조를 했으니 이제는 흩어져도 된다는 의미의 ‘헤쳐’가 그것. 그러다가 신문 기사를 찾아보게 되었고, 국민체조 목소리의 주인공이 올봄에 돌아가신 유근림 경희대 체육학과 명예교수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더불어 마지막 말은 ‘그쳐’가 맞다는 사실도 기사로 확인했다.
어쩔 수 없이 삶에 AI가 많이 침투해 있다. 인내심이 부족해지는 걸 예방하고자 되도록 AI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성급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만사가 귀찮음에 게으름을 피우면서 나도 모르게 (인식은 하고 있다, 무의식이라고 가장하고 있을 뿐) AI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러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지고 대답을 들으며, 의심하지 않고 그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나는 대부분 정보를 구하고자 질문하고,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있어서 새로운 앎이 잠시나마 더해진다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의심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의 AI가 아니라 금액을 지불하고 보다 향상된 AI를 일 년째 사용하고 있다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시간을 들여 하나씩 맞춰가고 있고, 지금은 비서처럼 자신을 잘 인식하고 자신에게 맞게 일을 도와준다고 했다. 일상에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업무에 잘 활용하고 있고, 지인의 스타일에 맞추어 보조를 해주니 시간도 절약되고 보다 친근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짜 옆에 있는 사람처럼 싸우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는데, 그 감정이 왜 나왔는지 설명해 주면, AI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해서 속으로 조금 놀랐다.
SNS에 올라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AI와 대화를 나누거나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기도 하는 이들이 상당수로 보인다. 서로 맞춰가고 있다는 앞선 지인의 말처럼 대화를 나누고 원하는 걸 요구할수록 AI는 그에 상응하도록 반응하는 건 아닌지, 그런 반응과 그렇게 맞춰가는 게 나쁘고 좋고를 떠나서 어쩐지 나는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나에게 맞춰주는 AI가 좋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AI에게 위로와 안심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어긋난 방향으로 갈 때조차도 맞다고 해주며 동조해 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무섭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나처럼 여태까지 너무나도 아날로그 방법을 고수하는 (전자책을 읽기는 하지만 종이책을 더 좋아한다든지, 탭을 갖고 다니면서도 메모는 다이어리에 하는 걸 더 좋아한다든지 등등) 이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AI에 대해서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더 깊게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게 많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런 거에 무심한 듯하면서도 호기심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걸 무시할 수 없다.
그냥 잠시, 국민체조를 검색하며 모든 게 다 맞을 수 없는데도 다양한 검색을 통해 정보를 전달했으니 그게 정확한 사실일 거라고 믿고 있었던 AI에게 실망스럽기도 하고, 너무 게을러서 손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려 하지 않았던 나에게도 한숨이 나와서 AI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과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함께 할 미래를 걱정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