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98
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오피스텔 일 층에 동네 카페가 있다. 입구 옆쪽으로 좁은 테라스가 있고 그 테라스에는 오밀조밀하게 두 명이 마주 볼 수 있도록 의자가 있는 테이블이 두 개 나란히 놓여있다. 무릎 높이도 되지 않는 낮은 철제 펜스를 넘으면 바로 인도다. 그리고 인도를 지나서 바로 차도가 있다.
집에서 별로 멀지 않기에 오히려 자주 가지는 않게 되는 카페지만, 동선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지나다니며 늘 살펴보게 된다. 관심이 생긴 건 테라스 때문인데 정작 한여름과 한겨울에만 카페에 가 본 터라 테라스에 앉을 일은 없었다. 또 그 좁은 테라스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유럽의 어느 길거리 카페의 모습처럼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는 누군가를 상상해 보았는데 너무 인도와 차도와 가까워서인지 테라스가 아담해서인지 아니면 낮은 철제 펜스로 구획이 명확해서인지 그림은 다르게만 그려졌다.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가 며칠간 지속되었다. 피로와 무기력으로 허우적대던 요즘이라 흐린 날씨가 나를 도울 만도 했지만 아무리 좋아하고 나를 차분하게 해주는 흐린 날씨마저도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다행이라면 더 우울하게 나를 가라앉히지는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계속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비가 내리고 있었고, 다시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면 흐린 기운이 가득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마시고 양치질을 하고 틈틈이 무슨 꿈을 꾸었나, 생각해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꿈은 보통 둘 중 하나다. 내가 너무 괴롭고 아파서 혹은 무서워서 몸도 마음도 힘든 꿈이거나 누군가가 나오는데 무언가 의심스러움이 담겨있어 상대가 걱정되는 꿈이다. 멀쩡한 꿈을 꾸어도 왠지 다시 돌아보고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니면 고개를 흔들며 애써 지워버리려 한다. 자꾸 떠올라도 일부러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었고 꿈을 꾸지 않았다는 듯이. 늘 꿈을 꾸면서도 꾸고 싶지 않은 마음. 불안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
흐린 날씨에 걸맞게 적당한 꿈을 꾸었다. 사실 적당하지 않았다. 평소에 연락을 잘하지 않는 이가 꿈에 나왔다. 굉장히 생생했는데 물리쳤다. 다시 잠들었고 또다시 그가 나왔고 꿈은 이어졌다. 일어났다. 생각하지 않고 책을 조금 읽고 또 잤다. 또 이어지는 꿈이었다. 무슨 꿈인지 모른다.
언제 날씨가 흐리고 비가 종일 내렸냐는 듯이 해가 반짝했다. 구름도 아름다웠다. 이 빛 속에서는 잠을 더 자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세수를 하고 수분크림과 선크림을 바르고 옷을 입었다. 침대 안에서는 추웠는데, 선선한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이대로 겨울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창문을 열자 따뜻한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긴팔을 입고 씩씩하게 햇살 아래로 걸어 나갔다.
테라스에 앉았다. 동네 카페의 테라스는 보기보다 더 딱 맞는 일 인분의 자리였다. 의자도 적당하고 테이블도 적당하고 다리를 올려도 적당한 딱 적당한 자리였다. 초록의 철제 의자와 초록의 철제 테이블과 초록의 철제 펜스가 나무 데크 위에 올려져 있다. 나를 위한 자리.
열심히 걸어서, 태양이 나를 비춰서, 하늘이 맑고 공기가 따뜻해서, 콧잔등에 땀이 약간 맺혔다. 실내는 에어컨 바람에 시원했다.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빈 테이블이 있었지만, 그곳은 시원했지만, 나는 아이스 라테를 주문해서 테라스에 앉았다. 손부채질을 하다가 손수건으로 콧등을 톡톡 두드리고 손수건 부채질을 했다.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내 옆의 실내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다. 햇살을 막는 가림막이 쳐져 있어 유리와 함께 그들과 나 사이를 갈라 주었다. 바로 옆으로 사람이 지나갔다. 어색하지 않았다. 나무 데크와 낮은 철제 펜스가 인도에서부터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아늑한 기분. 피로와 무기력이 지금은 없는 것 같아.
책을 꺼내 천천히 읽는다.
여기, 혹시 유럽의 어딘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