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툭하고 던진 질문

- 라라 소소 114

by Chiara 라라


겨울이어서 낮이 짧고 밤이 길다. 해가 일찍 지니까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 시간이 별로 없다. 해가 지면 밤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해가 있을 때보다 더 빨리 집에 들어가도록 재촉하게 되는 것이다.


생일날 눈이 많이 내려서 쌍둥이 조카들이 신났을 거라 예상했다. 눈사람은 만들었는지 눈싸움은 했는지 즐겁게 시간 보냈는지 물어보는데 하나도 놀지 못했다고, 놀 시간이 없다며 볼멘소리로 대꾸한다.


조카들은 방학이지만 평일에는 매일 돌봄 교실에 나가고 있다. 돌봄 교실이 끝나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태권도와 피아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목요일에는 학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금요일에는 저녁밥을 일찍 먹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수영장에 간다. 학기 중이든 방학이든 매일의 정해진 일상이다.



새언니와 오빠 둘 다 직장에 다녀서 주 양육자는 조카들의 할머니인 우리 엄마다. 엄마가 아무리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조카들이 자라면서 엄마도 연세가 드시니 에너지는 줄어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나도 아니고 쌍둥이 남아 둘을 돌보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초등학교는 유치원에 비해서 하교 시간이 너무 이르다. 돌봄 교실 추첨에서 떨어졌던 첫해는 온 가족이 비상이었다. 조카들이 다니는 학교의 돌봄 교실은 공을 추첨해서 붙고 떨어지고 가 결정되는데, 쌍둥이는 한 명이 떨어지면 나머지 한 명은 뽑을 기회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런 제도를 도입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다소 이해는 간다. 하지만 각각의 인격이 존중되지 않고 한 명으로 취급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암튼, 첫해는 떨어졌고, 2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돌봄 교실에 다니고 있다. 활동과 놀이 위주로 이루어져 있어서 조카들은 돌봄 교실을 좋아한다. 돌봄 교실 덕분에 실내에서 하는 활동은 다양하나 외부에서 흙을 밟으며 뛰어노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숲유치원을 다녀서 야외에서의 활동과 놀이와 운동이 많았는데 이제는 체육 시간도 운동도 모두 야외 운동장이 아닌 실내 체육관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의 몫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학습보다는 야외에서 많이 움직이고 관찰하고 새로운 걸 발견하면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울림을 통해 배려와 존중과 참을성 등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요즘 놀이터에 가보면 뛰어노는 아이들도 있지만 의자에 빙 둘러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게임하는 걸 구경하는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런 걸 보면 아이들의 어울림이 놀이보다는 게임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서 이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다.




볼멘소리를 하던 조카들 얘기로 돌아가서.


왜 놀 시간이 없는지 물어봤다. 매일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단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건 (보통은 일기 쓰기, 책 읽기, 학습지 한두 장 풀기 등이다) 저녁밥 먹기 전후로 약간의 시간을 들여서 하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구나, 하며 얘기를 들어주고 다시 물었다. 피아노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 오늘 눈이 내려서 밖에서 좀 놀고 싶은데 놀다가 들어가도 되는지 할머니에게 여쭤보았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조카들은 늘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바로 집에 온 것 같다. 놀고 싶다는 속마음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그런 와중에 고모가 재미있게 놀았는지 물어보니 그제야 놀지 못했다는 억울한 마음이 올라온 모양이다. 그 억울함이 나에게도 전해져서 애석하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지 않다가 이제 깨달은 조카들이 귀엽기도 했다. 사실 어른들도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살펴보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다. 살펴본다고 해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조카들의 자기 마음 들여다보기는 내가 무심코 툭하고 던진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순수하게 조카들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해 보인다. 뭐가 그렇게 할 게 많은지 둘이서 속닥거리며 얘기도 하고, 가지고 있는 걸 서로 보여주고받기도 하고, 자그락 대기도 하고, 킬킬거리며 웃기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는데 할 게 무궁무진하다. 이런 면에서는 둘이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향이 굉장히 다른 이란성 쌍생아인 우리 조카들이라 계속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서로를 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주위의 친구들과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계 맺기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건 나와 상대를 생각하고, 나의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 밖에서 여러 명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면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있을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다.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보고 표현하면서 조금씩 어우러짐이 생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친구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거다. 또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표현하면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사실 우리 세대든 우리 윗세대든, 감정 표현을 배우지 못했다. 물론 나의 감정이 어떤지를 알지 못하니까 더 표현할 수 없기도 했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떤 마음인지, 어떤 감정인지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없었다. 우리 세대는 책을 읽고 스스로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그건 부모 세대와는 다른 더 나은 우리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우리 다음 세대, 그리고 우리 조카들의 세대에서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표현하고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우리 조카들은 야외보다 실내에서 더 오래 생활하고, 친구들과 뛰놀고 어울리기보다는 둘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소 길 수밖에 없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 조카들에게 질문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을. 아무런 질문이 아닌 다양하게 생각하고 나아갈 수 있는 질문을. (참고로 나는 일주일에 이틀 조카들을 담당하고 있어서 대화할 시간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조카들도 상대를 알기 위해, 상대에게 다가가기 위해 질문을 더 많이 하면 좋겠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나도 공부를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고, 연습해야 한다.


최근에 읽은 심리학 관련 책에서 긍정형의 질문은 긍정적인 생각을 우선으로 하도록 이끌고, 부정형의 질문은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도록 이끈다는 걸 배웠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 어떤 게 즐거웠어?라고 질문하면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는 거다. 반면에 오늘 하루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니?라고 질문하면 안 좋았던 일을 애써 찾아낸다는 우리의 뇌. 이도 잘 활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익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나아가려면 공부와 노력은 끝이 없겠구나 싶다.

나를 위해서 조카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2월 4일 수요일, 오늘은 입춘이다.


아직 낮보다 밤이 더 긴 겨울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조금씩 밤의 시간이 줄어들면서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낮의 길이가 길어질 때가 곧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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