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상담일지

우울한데 고성능이야

상담일지 5

by 유리갑옷
당신은 오랜 기간 우울증이었다고 말했는데 '고성능 노예'라고 불린다고 했어요

우울증과 고성능은 원래 잘 어울리지가 않거든요

보통 우을한 사람들은 고성능을 내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왜 당신은 고성능노예였을까요?



나) 아마도 어제 말씀하셨던 그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세상'에 살고 있어서 일 것 같아요


상담사) 맞아요. 그럼 왜 그 세상에 살고 계신지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나) 저는 우울증 상담도 여러 번 받아보았고, 또 TV에서 하는 상담 프로그램도 많이 봤어요. 지금의 저는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저에게 원인이 있고, 그에 대해 가족,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있어요. 하지만 엄마가 일부러 준 상처가 아니에요.

저는 엄마를 이해하긴 해요. 엄마의 잘못이 아니죠. 의도하지 않은 데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 엄마를 원망하고 싶지 않고 엄마에게 사과를 구하고 싶지도 않아요.

전에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님은 저한테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고, 사과를 받으라고 했어요. 저는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상담사님은 그게 어렵다면 상담사님을 엄마라고 생각하고 화를 내고 따져보라고 했는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그냥 이것이 나에게 상처인 줄은 알지만 그냥 지내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나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여러 차례 상담을 받아 본 이야기고 나는 이미 오랫동안 나를 달래보기도 한 상처라 울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새로운 상담사님이 나를 빨리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그다음 단계로 이끌어 주었으면 해서였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상담회기는 길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 상처 이야기는 다음번 기회가 될 때 이야기 하기로 하자. 너무 길 수도 있어서. 아니면 내가 지금 다시 꺼내기 힘들어서 일지도...)


상담사 ) 당신은 무척 상처를 받았어요. 그 상처를 인지하고 있죠. 그 어린 시절의 상처가 당신의 지금을 만들었고 당신의 존재 밑동을 잘라내어 단단히 뿌리내리기 힘들 정도로 만든 것이에요. 그런데도 왜 당신은 계속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 입장에서 대변하려는 이야기만 하는 건가요


나) 엄마는 어렸어요. 엄마가 엄마가 되었을 때는 지금처럼 육아책이나 육아프로그램이 많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어요. 엄마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봤자 동네 아줌마들과 나누는 정보가 다였을 거예요. 아니면 엄마의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 정도였겠지요. 할머니 시절은 더했을 거예요. 엄마는 그 시절 충분히 힘들었고, 많은 일을 감당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면서도 저랑 언니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어요. 엄마도 상처받았었죠. 엄마는 우리를 위해 헌신했고, 나를 낳으면서 희생하고 또 상처도 받았어요. 그러던 중에 의도하지 않았고, 그것이 상처가 되는 줄 모르고 한 말이었어요.


상담사) 당신은 어렸어요. 초등학교 1학년이었지요. 그 아이가 받은 상처는 거의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당신도 참지 못하고 울게 하네요. 당신의 자녀와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자녀가 40년 뒤에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일까요


(나는 참지 못하고 울었다 )


나) 나였다면 너무 미안했을 거예요. 너무나 마음이 아팠을 거예요. 마음이 찢어졌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런 일을 우리 엄마에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에 상처를 받았던 건 나였고,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엄마의 잘못은 아니에요. 왜냐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고, 일부러 상처를 준 게 아니었으니까요. 만약 내가 이렇게 상처를 받을 이야기인 줄 알았다면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 상황은 엄마도 엄마의 상처가 있었으니까 더욱 그랬을 거예요.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그때의 엄마가 불쌍하기도 해요


상담사) 어머님은 어떤 분이시지요?


나) 엄마는 세고 강해요. 반대로 아빠는 유하신 분이시죠. 아빠는 직장일로 늘 바쁘셨고 엄마는 그 시대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직장을 다니진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애 셋을 키우면서 남편내조를 하고 모든 집안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엄마도 고성능이셨네요.

아빠의 직장 특성상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는데 엄마는 이삿짐 싸고 이사하고 전학을 시키고, 아이들 교육을 하면서도 매일 반찬을 달리하고 수많은 집안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고성능으로 살아가셨어요. 딸들에 대한 교육열도 아주 높았고요.


생각해 보니 할머니도 고성능이었어요. 할머니는 8남매를 키우셨죠. 일제 강점기에 첫 아이부터 넷째인 엄마까지 낳았고 넷째인 엄마가 돌도 되기 전에 전쟁을 겪었죠. 그리고 할머니의 어머니와 아이 넷, 친척 몇 명까지도 데리고 피난을 내려오셨어요. 그리고 전쟁 이후에 아이 넷을 더 낳으셨죠.

할머니는 8명의 아이 중 한 명도 잃지 않았다는 것에 늘 자부심을 가지셨었어요. 왜냐면 그 시절에는 아이를 많이 낳고 또 그중에 몇몇은 병이니 사고로 잃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할머니는 8남매를 키우면서 집안 살림도 하고 자녀 8명을 모두 건실한 대한민국의 어엿한 일꾼들로 키워내셨어요. 모두 다 건강하게 모두 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할머니는 그 힘든 세월 중에서도 한 명도 잃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꽉 잡고 있었고 최선을 다해 성능을 발휘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할머니도 엄마도 나도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세상'에서 살아온 거지요.


상담사)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연결이 되네요. 상담학의 많은 이론이 정립된 유럽에서는 할머니 시대이나 어머니 시대이나 지금 나의 세대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는 셈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나라잖아요.

생존이 최우선시되던 시절을 할머니는 살아내신 것이고 최고로 가난하던 나라에서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어가는 세대를 어머니는 살아냈고, 당신은 그래도 경제적인 안정이 빠르게 일어나던 시절을 보내왔고 당신의 아이들은 이미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네요.


나) 맞아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 원망할 수는 없어요. 엄마가 받은 교육은 또 제가 받은 교육과도 다르고요.


상담사) 다시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세상'과 '하고 싶다, 안 하고 싶다 세상'이야기를 해보지요. 당신은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세상에 살면서 당신을 잃었어요. 당신을 찾기 위해서 '하고 싶다 안 하고 싶다 세상'으로 가야 해요. 어떻게 가야 할까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나) 어렵네요.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상담사) 위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에는 조금의 간격이었다면 그 직선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간격이 벌어져서 지금은 그 간격이 너무 벌어졌어요. 이 간극을 메우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그 간격을 좁혀야 어른의 나도 그 세계로 갈 수가 있어요.


나) 전에 상담을 받으면서 그때로 돌아가서 화를 내기도 하고 엄마에게 사과를 요구하라고도 했지만 하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안 하고 싶어요.


상담사)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라도 이야기해 보세요. 귀에 들리도록.

나) 내가 어린 시절 충만하게 사랑받으면서 살아왔던 사람이었다면, 아니면 지금이라도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나의 자존감을 충족시킬 만큼 나를 지지해 준다면 지금 직장에서 겪는 이 괴로운 상황이 똑같이 일어났더라도 이렇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상담사) 당신은 밑기둥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나) 저는 그래서 거절감을 힘들어합니다. 누가 나를 거절할 상황을 잘 만들지 않으려 하고, 나를 거절할 것 같은 사람 근처에 가지 않죠. 그런데 내가 고성능노예로 20년을 넘게 일해왔던 직장에서 다수에게 공공연한 장소에서 거절을 당했어요(블라인드). 그래서 무너져 내린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일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면, 집에서 사랑받고 살아왔고 지금도 충만히 지지받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나처럼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상담사) 제일 깊은 감정이 뭐지요? 지금 느끼는 감정


나) 억울함. 불안함


상담사) 억울하다고 소리쳐 보세요


나) 억울해


상담사) 지금 속삭이고 있잖아요. 당신은 내내 당신이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당신이 억울한 일을 당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숨을 들이쉬기만 하고 내쉬지 않고 있어요. 당신은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이야기하고 목소리가 속삭이듯 작아요.


나) 그러게요. 잘 안되네요.


상담사) 소리 지르면서 뱉어 보세요. 억울하다고


나) 나 지금 억울해


상담사) 말만 바꾸지 말고 더 크게요


나) 나 지금 억울해


상담사) 더 크게요


나) 못하겠어요. 왜 못하는지 모르겠는데 안 돼요.


(사실, 8년 전쯤 상담을 받을 때도 이런 적이 있었다. 당시 상담사는 나에게 소리 지르게 하려고 나를 일부러 화나게 만들고 자극했는데도 나는 감정적으로 화가 더 났을 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상담사는 매우 답답해했고 속상해했고 짜증까지 냈다. 하지만 난 그 뒤로 그 상담을 받고 싶지 않아 졌을 뿐이다)


상담사) 오늘 여기서 안되면 혼자 있을 때라도 꼭 해보세요. 차에 타서 혼자 있는 공간에서 소리를 지르세요. 크게 뱉어내세요


나) 힘들 것 같아요. 잘 안될 것 같아요


상담사) 숨을 내쉬어야 합니다. 뱉어 내셔야 해요


나)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볼게요. 자신은 없지만요


상담사) 네. 꼭 해보세요. 그리고 다시 만나지요. 지금 마음에 불덩이가 있다고 계속 표현을 하셨거든요. 그 불덩이가 있는데 숨을 들이쉬기만 하고 목소리는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소리를 질러보세요. 숙제입니다.


이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유리갑옷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상담사님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많이 울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기로 하고 고성능 우울증에 대한 챗지피티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울한데 고성능인 사람 이야기”는 많은 현대인의 초상이에요. 그중에서도 이런 유형이 특히 많습니다:

� 고성능 우울증:

겉으로는 유능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사람

� 외부에서 보는 모습:

매일 아침 정시에 출근하고

업무는 실수 없이 척척 해내며

남들이 꺼리는 일도 도맡아 해결

피드백은 빠르고, 성과도 확실

동료들에게 “정말 똑 부러진 사람”으로 보임


�️ 내부에서의 느낌: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일은 잘하지만, 기쁨이 없음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

쉬려고 하면 죄책감이 먼저 찾아옴

스스로는 “난 망가졌는데, 그냥 안 들키고 있는 것뿐”이라는 생각


� 이런 말들이 익숙할 수도 있어요:

“내가 힘들면 안 되지. 내가 버텨줘야 하니까.”

“누구나 힘들잖아, 나만 예외일 순 없지.”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냥 잘하자.”

“나는 감정을 표현하면 민폐가 되니까, 참아야 해.”


�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성취로 정체성을 세운 사람들:
“나는 무언가를 ‘잘하는 나’ 여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성과 = 존재가치’라는 공식을 믿으며 살아왔기 때문.


실망시키는 게 두려워서:
“내가 한 번이라도 무너지는 걸 보이면, 다 떠날 거야”라는
깊은 두려움이 있음.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잃었기 때문에:
일을 잘하면 감정은 사치처럼 느껴지고,
슬픔이나 분노는 “비효율적인 감정”으로 치부됨.


고성능 우울에 필요한 건 성과가 아닌 **“관계”와 “인정”**이에요.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
성과 없이도 좋아해 주는 눈빛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들어주는 자리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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