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후회의 아침이다. 어젯밤, 나는 왜 또다시 나의 밑바닥을 보이고 말았을까.
누군가에게 내 안의 못난 점과 치부를 가감 없이 꺼내 보이고 나면, 잠시 동안은 속이 시원해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찾아오는 것은 해방감이 아니라, 갚을 길 없는 마음의 부채다.
내가 내뱉은 말들이 공중에 흩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무게가 되어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분명 처음엔 좋은 기분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일상의 이야기로 화두가 옮겨졌고 나의 평소 고민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할수록 나의 미숙한 대처와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이 그대로 나왔다.
뭔가 나만 힘들다고 징징대는 상황이었고, 이런 나를 진정시키는 상황이 이어졌다. 편한 동료들이기에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말을 하면서도 느꼈다.
'아..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역시나, 아침이 되니 어제의 기억이 나를 짓누른다.
말은 뱉는 순간 가벼워지지만, 그 책임은 아침이 되어야 무섭게 돌아온다.
사회는 '솔직함'을 미덕이라 말하면서도, 동시에 '치부를 드러내지 말 것'을 생존 전략으로 가르친다.
적당한 거리두기와 가면은 어른의 예의이며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이다.
나는 왜 그 갑옷을 그토록 쉽게 벗어버리는 걸까.
늘 이 지점에서 나의 고민은 깊어진다.
유독 가면쓰기에 취약한 나. 오죽하면 내 닉네임을 '유리알구슬'이라고 지었겠는가.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역시 나의 고질적인 결핍이 원인인 듯 하다.
'완전한 이해'에 대한 갈망. 내 못난 점까지 사랑받고 싶다는, 혹은 누군가 나의 결핍을 보고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는 아이 같은 마음이 나를 무방비하게 만든다.
말은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상대의 해석과 판단이라는 거름망을 거치며 변형되고, 때로는 나를 공격하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나를 다 보여준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그늘이 있는 숲이 더 아늑하듯,
사람의 매력과 안전함은 적당히 감추어진 빈 공간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이제는 나를 다 드러내지 않는 연습을 하려 한다.
그것은 상대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고 상대에게 내 마음의 짐을 전가하지 않기 위한 '배려'다.
나의 못난 점은 타인의 평가대 위에 올릴 것이 아니라, 내가 조용히 보듬어 안아야 할 나의 조각들이다.
오늘 아침의 이 후회는 더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한 성장통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