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어디? 지방 하위권 농구동호회.

by 빈둥

주말 농구를 마치고 버스를 잡기 위해서 뛰어가는데, 맞은편에서 한 친구가 손을 흔들었다. 점심 한 끼 하겠냐고 묻기에 나는 옳다꾸나 하고 따라갔다.그 옆에 S형이 서 있었다. 실은 S형이 그 친구와 먹자고 하는데 단둘이 먹기 뻘쭘해서 나를 부른 거였다.


3인분을 시켰는데, 철판 위에 닭갈비는 젓가락 세, 네 번 오가자 고기가 보이질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형은 '이거 3인분 맞냐? 너무 적다.' 고 되물었고. 사장님은 '3인분 맞다.'고 응수했다. 밥이나 많이 먹자고 3인분 볶아 먹자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형이 대뜸 저번 주에 농구하면서 있었던 말다툼 얘기를 꺼냈다.


"근데, 그건 너가 틀렸어."


나는 발끈했다. 그때 느꼈던 모멸감이 되살아 났다.


저번주에 동호회 내에서 20대, 30대, 40대 팀으로 리그전을 꾸렸다. 나는 30대였다. 우리 팀은 40대와 경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함께 뛰던 30대 팀의 주장 C가 골을 하나 먹히자 내게 흥분해서 소리쳤다.

"형, 수비 그렇게 하면 안돼! 끝까지 따라가야지."

나보다 5살이나 어린 애가 화를 낸 것도 기분 나빴지만 길거리 농구만 했지 동호회나 농구 대회 경험도 없는 애였다. 나는 10년 넘게 동호회 생활을 했고, 2-3 수비. 1-3-1수비. 3-2 수비. 등 각종 수비 방법에 대해서 이골이 나도록 연습을 했다. 암것도 모르는 게 함부로 지적을 하자 화가 났지만, 일단 경기를 마칠 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참았다.

패배로 그 경기는 끝이 났다.

샤워를 하며 모멸감을 씻어내려고 들어갔다. 그러나 샤워를 하며 분노를 삭히기는 커녕, 머릿속에서 함부로 화를 쏟아내던 찌푸린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몸을 씻어도 분노감이 여전했다. 도대체 이 부당한 대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옷을 갈아입고 땀에 젖은 옷꾸러미를 감싸안고 자리로 돌아가다가 C의 얼굴이 보이자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가서 말했다.

"너, 아까 그 수비. 틀렸어."

"아뇨. 형. 제가 맞아요."

"뭐?"

나는 들고 있던 옷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야. 지역 수빈데 내가 어디까지 들어가라고. 이게 맨투맨 수비야? 골 밑까지 내가 들어가야 돼?"

나는 키가 작아서 앞선 수비를 한다. 앞선 수비수는 대개 바깥쪽 수비를 막는다.안쪽은 키가 큰 뒷선 수비수에게 맡긴다.그런데 이 녀석 대답이 짧았다.

"네."

어이가 없었다.

"지역수비인데?"

"아니 형... 형 수비수가 돌파하는데 끝까지 따라가야죠."

설명을 다 듣지도 않고 나는 무시했다.

"야. 됐어."

나는 옷을 주섬주섬 집어들고 돌아와 짐을 쌌다. C가 다시 와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끝내 지가 틀렸다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대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친구와 얼굴 보는 게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S형이 그 친구를 옹호하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근데 너가 틀렸어."

"형, 그럼 내가 수비를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너가 컷인까지 다 봐야돼."

"내 앞에 공 들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컷인까지 보라고요?"

"어."

대환장 파티였다. 그 녀석 C과 이 S형은 자주 술자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똑같은 상식을 가진 두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결국 속에 담아둔 말을 했다.

"솔직히 형 내가 수비하는 거 봐요. 나 수비 잘해요. 내가 공격은 몰라도 수비는 잘한다고요. 근데 그렇게 무시를 해요? 저 지역수비 어떻게 하는지 다 알아요. 형 알아요?"

S형은 내가 흥분하자 말을 다른데로 돌렸다.


다른 화제가 나왔다. 옆에 앉은 동갑내기 친구 J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 형은 거기서도 내 신경을 긁었다.

"J가 농구를 참 잘해. 미들 슛도 잘 넣어주고. 속공도 잘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친구가 잘하는 건 나도 인정하니까. 형은 나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근데 너는 좀 싸가지가 없게 해. 아. 못한다는 게 아니고. 독특하게 한다는 거야."

여기서 응? 했다. 그리고 이어서 2연타를 날렸다.

"얘가 너보단 농구 잘하지. 그치. 너도 인정 하지?"

대놓고 비교라니 나는 못참고 말했다.

"형. 서로 분야가 다른거죠. 저는 얘처럼 공격은 잘 못해요. 저는 수비 전문이라고요. 농구판은 공격만 잘하면 인정하잖아요."

"그렇지."

"저는 그게 싫어요. 슛만 잘 넣으면 잘하는 거에요? 저는 타고난 슛 결정력이 없어요. 10년을 슛연습을 제가 얼마나 했겠어요. 근데 슛감이 없어요. 저는 신명호라니까요."(신명호는 프로 농구에서 대표적인 슛없는 선수다.)

형은 신경을 긁고, 나는 억울함을 토로하고. 이런 식의 대화가 삐걱거리는 채로 오고 가다가 대화가 끊겼다. 그러자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자기가 왕년에 림을 잡았단 얘기. 자기 친구가 전국대회 우승했다는 얘기도 나에겐 그저 닭갈비 볶음밥 바닥이 타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갑자기 형은 뜬금없이 주식 투자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지루한 얘기를 계속 하며 시간을 까먹었고, 그것도 지루해지면 나를 까대며 이야기를 반복했다. 이 형은 남을 긁고 흥분하는 모습 보는 걸 즐기는 거 같았다. 술이 절로 땡겨서 나는 소맥을 연거푸 들이켰다. 불쾌해서 얼른 일어나고 싶었지만 정말 싸가지 없이 먼저 일어나면 '거 봐. 내가 쟤 저럴 거라고 했잖아.'란 말이 나올 거 같아서 꾹 참고 속으로 무시하면서 술을 마셨다.


자리가 끝나고 차가 없는 나는 친구 J의 차를 얻어 탔다. 내가 기분이 좀 상했는 걸 아는지 J는 말을 꺼냈다.

"뭐 농구 얘기 좀 할려고 했더니, 자꾸 자기 얘기만 하네."

"너도 느꼈어?"

"어. 근데. S형. 나 처음 동호회 왔을 때, 그렇게 나 갈궜다."

"뭐라고?"

"자꾸 미들슛 남발하지 말라고. 속공 자꾸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아하. 처음엔 나도 그 형 얘기 하는 거 듣고 좀 그랬음. 말투가 좀 비꼬는 거 같잖아."

"어. 그렇게 하더니 지금은 또 잘한다고 막 그러네."

"웃긴다. 그치."

딱히 그 친구도 인정해 주는 게 좋지만도 않았던 거다. 인정받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까이는 것도 딱히 달갑지 않다.하지만, 굴러들어온 돌이니 오래 있었던 형 말이면 참아야 한다. 이런 인간들도 얼마든지 있는 곳. 이곳은 네이버 농심카페만 들어가서 팀원 구함 게시판에만 들어갈 정도의 수준만 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곳. 지방 하위권 농구팀이니까.


애초에 나는 상대를 상대는 나를. 우리는 서로를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다.

길고 긴 식사가 끝났다. S형은 심지어 계산할 때도 미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짜증이 나서 계산대로 다가갔다.

"얼마에요?"

"아까 미리 계산 하셔서 만 구천원만 내시면 됩니다."


역시, 계산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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