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의 W는 오토바이를 타고 농구하러 온다. 검정색 오토바이에, 검은 헬멧을 팔에 끼고 라이더 재킷을 벗는다. 5대5 가르마에 반곱슬인 머리카락이 미청년의 느낌을 주는데 코트 위에 올라가면 눈썹이 휙 올라가며 사나운 한 마리 재규어처럼 변한다.
첫만남은 이랬다. 내가 조금 수비를 빡세게 하는 편이라 하다 보면 상대 수비가 공격이 좀 안 풀려서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날은 W를 수비했는데 이 녀석이 내가 수비를 하다가 손등을 쳤는지 어쨋는지 기분이 나빴나 보다. 내가 공을 쥐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내 팔을 세게 철썩 때렸다. 공이랑 아무 관련도 없는 위치를 때리고 그는 유유히 돌아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심판을 쳐다봤고, 심판은 그냥 넘어갔다. 나는 두고두고 이때 일을 기억하며 '싸가지 없는 놈' 이라고 머릿 속에 새겨놨다. 그 이후로 W만 보면 신경이 곤두섰고, W도 유독 나에게 수비를 빡세게 붙었다.
옛날 같았으면 어린 녀석을 실력으로 눌러 놓겠다고 할텐데, 이제 그럴만한 힘도 기술도 안 통하니까 내가 피했다. 그렇게 같은 팀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W는 그 성격만큼 공격력도 어마무시했다. 공을 잡으면 3점 슛을 쏙쏙 넣는 왼손잡이 슛터였다.(왼손잡이 슛터는 귀하다. 상대 수비한테 블락을 잘 안 당하니까.) 게다가 몸싸움도 능숙하게 이겨내고 집어넣어서 우리 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아갔다.
한 술자리에서였다. 한 동생이 W이야기를 꺼냈다.
"형은 W가 인정하는 사람이잖아요. 왼손 쓰는 기본기는 형이 제일 좋대요."
한 동생이 W가 내 칭찬을 했다는 얘기를 하자 나는 괜히 어깨가 솟았다.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고 욕하면서도 내심 코트 위에서 뛰고 나는 녀석을 보면서 부러웠다. 나름 팀에서 공격력으로 인정받는 W에게 내 칭찬을 했다고 하자 괜히 어린 동생이지만 잘 보이고 싶어졌다.
어느 날, 농구를 마치고 집에 가는길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 앞에서 갈 준비를 하는 W를 마주쳤다. 나는 순간 그 모습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내 칭찬도 들었겠다 나는 솔직하게 칭찬했다.
"올, 오토바이 간지나는데?"
그러자 W가 신이 나서 자기 오토바이 자랑을 했다. 모델이 어떻고, 얼마나 탔고 등등... 코트 위에서 보이지 않던 W의 웃는 모습에 괜히 긴장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대화를 해보니 W는 꽤 순수한 친구 같았다. 오토바이를 타기 전 그는 목걸이로 차고 있던 전자담배를 물었다. 하얀 연기를 뿜으며 이야기하는 표정이 한없이 진지했다.
"형, 걔 완전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요."
"뭐라고?"
이후 회식에서 나는 한 친구가 W얘기를 꺼내자 웃음이 터졌다. 온갖 상대들을 터프함으로 이겨내는 W. 오토바이를 타고 전자담배를 피는 W가 완전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니. 알고보니 W는 술도 잘 마시지 않았다. 그럼 그가 코트에서 그렇게 날을 세워가며 뛰는 이유가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였다는 건가? 경기를 마치고는 담배를 피며 제사를 하고?
회식자리가 길어졌다. W가 그 자리에 합류했고,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덩치 크고 화 잘 내는 D가 W한테 벼르고 왔는지 한 소리 늘어놨다.
"너 농구할때, 그렇게 하는 게 잘하는 줄 아나본데. 아니야. 팀 분위기 다 망쳐놓는거야. 자기 슛만 쏘면 되냐? 안되지. 너네가 그 잘하는 팀에서는 패스 잘 돌린다면서. 우리팀 연습만 오면 대충 하는거 알아. 만만하게 보는 거지. 야. 그거 팀 흐리는 거야. 자꾸 그럼 안돼."
그러자 W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해서 혼이 나는 풀죽은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D 앞에선 W도 순한 양에 불과했다. 나는 평소 W를 보며 나를 포함한 못하는 선수들의 속에 담아왔던 얘기를 해주자 내심 통쾌하면서도, W가 혹시 상처받아서 팀을 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예상대로 W는 그 뒤로 알바를 해야 한다며 한동안 팀에 나오지 않았다. 나이 먹은 형들이 지적하면, 젊은 애들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보통의 젊은 회원들이 팀을 그만두는 패턴이었다. 한 경기 20득점씩 해주던 강력한 스코어러이자 젊은 유망주를 잃었다는 안타까움이 일어났다. 또 한 편, 혼자 공격하는 이기적인 선수 하나가 없으니 농구할 땐 꽤나 마음껏 공격할 수 있기도 했다.
그 즈음, W의 친구 P가 회장에게 쿠사리를 먹고 팀을 그만두었다. P는 W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지역 내 강팀에 소속되어 있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 자기 공격만 보고 패스는 제대로 주지도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젊다는 점. 아직 변변한 직업이 없다는 점까지. 그날은 P가 농구를 마치고 형들이 볼백이며 전광판을 정리하고 있을 때 혼자 자기 짐만 챙기자 회장이 화가 나서 소리를 쳤다.
"정리 안 하냐 새꺄?"
회장은 정리 좀 같이 하자고 좋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걸, 평소 이기적인 플레이에 불만이 많았던지 상스럽게 말했다.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 말에 P는 밍기적거리며 일어나 공을 주웠다. 하지만 P는 심기가 상했던게 분명하다. 그날 오후, P는 취업준비를 해야 할 거 같다면서 카톡방에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P가 나가자 내심 나는 반가웠다. P는 슛난사가 너무 심해서 상대 팀이 되면 오히려 신날 지경이었으니까. P의 친구인 W는 P에게 회장 형에게 당한 모욕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그럼 조만간 W도 친구된 의리로 혹은,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이유로 나가지 않을까? 자기의 불완전한 직장 문제와 농구 갈등이 겹쳐지면 20대 후반의 젊은 친구들은 금방 취미를 먼저 포기해 버리고 만다. 불투명한 미래로 괴로운데 스트레스 풀러 가는 클럽에서 회비를 내면서 욕을 먹는 건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과해질 테니까. 가끔 그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W는 달랐다. 그는 3개월 정도 소강기를 갖더니 돌아왔다. 알바 시간을 조정해서 이제 농구에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변화도 있었다. 그가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D가 조언한 대로 W는 꽤나 자기 공격을 조금 줄이고, 패스를 많이 돌리는 식으로 업그레이드되서 돌아왔다. 공격만 알던 재규어가 한층 더 날카로운 공격수가 된 것이다.
어제 경기에선 W가 상대편이 되었다. 승부를 결정지을 마지막 수비에서 공이 험블이 났다.(패스 미스 등의 이유로 공의 소유가 애매한 상황을 말한다.) 그때 나와 W가 동시에 뛰어갔다. 둘의 손이 공을 동시에 잡았고, 뛰어오던 속력 그대로 둘은 부딪쳤다. 내 턱과 W의 머리가 부딪쳤다. 꽝 소리와 함께 눈 앞이 깜깜해졌다. 나는 발라당 뒤로 넘어졌다. 그대로 우리 팀이 게임에 져버렸다.
그런데 게임이 끝나자 W가 내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턱은 좀 괜찮으세요 형?"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너는 인제 패스 잘 돌리더라?"
W가 쑥스럽게 뒷통수를 긁적였다. W가 이제 우리 팀의 일원이 좀 된 거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