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회 그리고 싸움.

by 빈둥

W는 오늘 저녁, 회식 자리에 조금 늦게 왔다. 깁스를 한 채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절뚝이는 W를 보자 가슴 한켠이 아렸다. W를 중앙에 앉혀놓고 아침에 있었던 일 이야기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첫 대회라 그런지 다들 들떴다. 나는 김밥을 사서 갔다. 볼백을 들고 오는 S, 물을 들고 오는 L과 마주쳤다. L이 긴장된다고 했다. 처음으로 대회에 나가 보니까. L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팀원 중 반 이상은 대회 경험이 없다.


첫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 에이스는 공격적이었고, 우리편 W도 마찬가지였다. 2쿼터 중반, 게임이 시소게임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상대 에이스가 W를 앞에 두고 몸을 밀어놓고 비볐다. 삐익. 파울이 불렸다. 그러자 W가 항의했다.

"이게 왜 파울이야? 나는 정상수비만 했어요"

심판은 들어주질 않았다. 심판이 조율을 못하자 선수 둘이 말다툼이 벌어졌다. 상대 선수는 갑자기 W를 노려봤다.

"뭐 임마?"

그러더니 상대도 기분나쁜 소리들을 쏟아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둘이 으르렁거리며 싸우자 우리팀 벤치와 상대팀 벤치가 모두 벌떡 일어났다. 몰려와서 W를 억지로 떨어트려 놓았다. 상대 선수는 결국 자유투 라인에 섰다. 그 때도 W는 흥분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나는 '제대로 정상수비 했다고'라며 계속 씩씩거렸다. 근데 자유투를 쏘고 돌아가던 상대 에이스가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더니 바닥에 주저 앉았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갔다.상대는 배를 부여 잡고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며 울었다. 혹시 골반이 부러진 건 아닐까. 그 와중에도 W는 사과는 커녕 계속 엄살 피운다고, 왜 난리냐고 자꾸 궁시렁댔다. 그러자 상대 팀에서 덩치가 크고 팔에 문신을 한 남자 하나가 대거리를 했다.

"아니 지금 사람이 다쳤는데 뭐?"

누가 싸움이 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린 겨우 문신남을 뜯어 말렸다.

그런데 이번엔 키가 작은 아저씨가 너 잠깐 와보라며 손바닥을 까딱까딱했다. 왜소한 체격을 보고 더 무시했는지 사람들은 전처럼 온몸으로 막지 않았다. 나는 가지 말라고 W를 말렸다. 하지만 홀린 듯 W가 아저씨 앞까지 다가갔다. 속으로 외치고 싶었다. '아저씨. 얘 위험한 애라니까.' 무슨 일이 날까 싶어 나는 옆까지 따라갔다.

W가 다가가자 아저씨는 어깨를 잡았다. 생각보다 터프한 양반이었다.

"야 너 따라나와."

그리고 W를 끌고 가려고 했다. 아무리 얘가 흥분했다 쳐도 반말에 신체에 함부로 위력행사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나는 손을 뜯어냈다.

"뭐 하는 짓이에요?"

사람들이 더 달려들어 이제 상대 아저씨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팀대 팀으로 싸움이 번질 상황이 되었다. 이제 아저씨들끼리 말싸움이 시작됐다.

"왜 남의편 애 멱살을 잡고 난리야?"

"우리 아픈 애 두고 누가 먼저 헛소리 했는데?"

두 젊은 선수를 두고 애정을 가진 아저씨들이 뒷짐진 채로 말싸움이 점점 거세졌다.

그때 주최자가 다가왔다.

"이 게임 중단하겠습니다."

농구 경기가 중단된 채로 끝나는 건 이례적이었다. 흥분한 선수를 관리하지 못한 우리팀도 문제, 그리고 심판의 매끄럽지 못한 대처, W의 공격성과 상대 선수의 악다구니가 게임 중단까지 만들어냈다. W에게 물러나라 했지만 쉽사리 앉지 않았다. 계속 흥분상태였다. 형들은 그래도 이건 아니라며 W를 데리고 담배를 피러 갔다.


다음 경기가 진행됐고, 우리는 앉아서 다른팀 경기를 구경했다. 사람들은 W에게 보란듯이 너무 갑자기 매너가 좋아졌다. 파울 하고 나면 상대방 손을 붙잡으며 사과했다. 얼굴에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로. 나는 W와 상대 에이스가 만든 소란이 오히려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아이러니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이독제독이라고, W가 만든 갈등이 갈등을 예방했다. 이후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팀의 다음 경기가 시작됐다. W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경기에 참여했다. 상대와 점수차가 많이 나는 상황. 빠른 한 점이 필요했다. W는 상대 공을 뺏는데 성공했고 나는 골대 밑까지 가서 공을 달라고 했다. 공을 받아 아무도 없는 골밑에서 슛을 쏘는데 머리나 하얘졌다. 어? 하더니 공이 골대를 지나 날아갔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실수였다. 곧 W가 뛰어 오더니 그 공을 잡아 내게 주었다. 나는 다시 슛을 쐈으나 블락에 걸렸다.두번 연속 쉬운 슛 실패라니. 그것도 시합중에! 나는 부끄러워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W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W는 공을 잡고 착지 하다가 상대편 발을 밟고 다리가 돌아가 버렸다. 발목을 부여잡고 W는 울부짖었다. 씩씩대던 W, 공격 본능이 강한 W가 싸우다가 쓰러진 게 아니라, 내가 실수한 공을 잡다가 발목이 돌아가 버렸다. 심지어 W에게 받은 공은 골대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만화에서는 이럴 때 꼭 결정적인 골이 나오던데... 나는 만화 속 주인공이 아니었나보다. W는 아무 소득 없이 발목만 헌납해 버렸다.


나는 이 상황이 왠지 우연이 아니라 필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W는 화를 낸 걸 후회하고 있었고, 그 마음이 스스로를 발목이 돌아가게끔 한 건 아닐까? 너무 과한 비약이긴 했다. 여튼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끼여 있을 건 뭐람. 결국 W는 질질 발을 끌고 밖으로 나갔고, 우리편 에이스인 W는 이후 경기를 뛰지 못하게 됐다. 그날 경기 4경기에서 우린 1승, 2패. 1무란 결과로 끝을 냈다.


그날 술자리에 W는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나는 궁금했다. 파이터인 W가 대체 왜 키도 작은 상대 아저씨가 이리 오라 했을 때 순순히 갔을까. 반항적인 이미지 답게"싫은데요?" 라고 하지 않고.

내가 묻자 W가 말했다.

"쳐봐. 치면 바로 조질거니까. 이런 마음이었죠. 솔직히 한 대 쳤으면 저도 바로 날아갈려고 했어요. 근데 안 치더라구요."

W는 역시 파이터였다. 정당방위를 아는 프로 파이터.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농구, 취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