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구 동호회에 들어가서 몇 년만 열심히 하면 농구선수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바로 O형을 만나고 나서다. 하지만 그게 큰 착각이란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에서 유명인의 등장은 곧 화제가 됐다. 한 번은 회사 직원 회식자리에서 누군가 곁눈질하며 내게 말했다.
'저 사람이 O야. 프로선수 출신.'
'진짜요?'
네이버에 이름을 검색하자 정말 이름이 나왔다. 당시 길거리 농구만 하고 있던 나는 그가 궁금했지만, 차마 나설 용기는 갖지 못했다. 그러다 길거리 농구를 하던 친구 한 명이 동호회 유니폼을 입고 왔다. 나는 몇 달을 참고 참다가 물었다. 그 동호회 나도 들어가도 되냐고. 동생은 운동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고 한 번 오라고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커다란 시 체육관에 들어섰다. 신입회원은 날 포함해 세 명이었다. 수준 테스트 겸 클리닉을 위해서 O가 불렀을 때, 나는 그가 선수가 맞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조금 긴 스포츠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키가 나보다 3cm 클까? 얼굴만큼이나 팔은 피부가 하얬고, 통통했다. 왠지 보통 회사원같아 보였다.
"왼손 레이업 한 번 해 보세요."
"체스트 패스 한 번 해보세요."
드디어 내 실력을 선보일 차례였다. 그동안 동영상 보고 동네 농구를 하며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왼손 드리블은 땅을 보면서 했고, 체스트 패스는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하는 모양새를 보고 그는 칭찬 하나 없이 말했다.
"뭐, 기본기는 앞으로 차차 배워가면 되니까."
드디어 그가 드리블 시범을 보였다. 팡!팡! 드리블을 치는데 공이 비명을 지르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패스 시범을 보였다. 30미터는 되는 거리에 서 있으라고 하더니, 패스를 줬다. 그러자 공이 장풍을 쏘는 것 마냥 콰콰콰콰 포물선 없이 직선으로 날아가서 자석처럼 정확히 가슴에 폭신하게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이것이 프로출신 선수의 패스였다. 나는 그와 같이 농구를 한다는 것에 설렜다. 그렇게 본격적인 내 농구 인생이 시작됐다.
내겐 시작이었던 그 시기가 O형에겐 암흑기였다. O형은 기대주로 드래프트 고순위로 프로에 들어갔으나,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짧다면 짧은 9년의 프로 생활을 거치며 한 팀에 오래 있지 못하고 1년마다 팀을 옮겨다녔고, 결정적으로 허리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프로선수 은퇴를 선언하고 인구 10만의 소도시로 내려와 사실상 농구로부터 도망쳐왔다. 20년 가까이 농구만 해 온 사람이 30살에 은퇴하고 내려온 기분이 어땠을까? 50살의 일반 회사 명퇴자가 느끼는 고통을 혈기왕성할 때 겪으니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하지만, O형의 농구선수 은퇴가 이 지방의 작은 팀에는 기회였다. 우연히 코트에서 농구하던 형 한 명이 혼자 공을 던지던 O형에게 말을 건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저기 3대3 하실래요?"
O형은 작은 키와 달리, 쏘는 족족 공이 들어갔고 같이 경기하던 형 하나가 소리쳤다고 한다.
"혹시 O 선수 아니세요?"
그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동호회에 프로출신 대형 거물 O형을 이렇게 우연히 영입한게. 그렇게 O형 하나만 믿고 '전국대회'에 나가보자고까지 의기투합했다. 결국, 지방 소도시의 작은 팀은 그 해에 김포시에서 주최한 전국대회에서 우승까지 해 버렸다.
코트 위의 O형은 신이었다. 슛을 쏘면 다 들어갔고, 발에는 스프링이 달린 거 같았다. 상상도 못한 곳으로 상상도 못한 타이밍에 공이 날아와 가슴에 폭 안기는 패스를 받으면 황송하기까지 했다. O형에 대한 무용담은 참 많은데, 특히 몸이 놀라웠다. 한 번은 동호회 회식을 한다고 한여름에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을 때, 배를 긁적이는 O형의 배를 보았다. 분명히 아저씨들처럼 배가 튀어나와 있는데 왕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식스팩 중 하나가 손바닥만 했다. 그렇게 큰 복근은 살면서 처음 봤다. 한 번은 그가 떡볶이를 해준다고 집에 초대를 했는데, 그의 등을 천천히 볼 수 있었다. 거대한 황소 개구리처럼 등이 부풀어 있었다. 어마어마한 근육이었다. 그런 O형이 오고 나서 팀은 승승장구했고, 전국에 팀 이름을 떨치고 뉴스에도 나왔다.
난 그때 뭐 했냐고? 똥이나 닦아줬다. 농담이 아니다. 훈련 중일 때 따라온 O형의 아들이 똥마렵다고 해서 할 일이 없던 내가 아이를 보게 됐다. 그렇게 나는 처음 보는 아이와 화장실에 같이 갔다.
"형 나 똥 닦아줘."
나는 처음 보는 애 엉덩이에 묻은 똥을 닦아 줬다. 흔히들 코트 위에서 '오늘 쟤 똥쌌다' 란 말을 하면 그날 플레이가 엉망이란 얘긴데, 나는 코트 위는 커녕 밖에서 남의 똥이나 닦아주고 있었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참는 건 참 잘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참으면서 농구 훈련 있다고 하면 따라가서 볼백 들고, 물 옮기고, 점수판 보라고 하면 점수판을 익혔다. 심지어 술자리까지 다 따라가서 못하는 술 홀짝홀짝 마시면서 형들 하는 얘기를 뭐든지 열심히 주워 들었다. 형들이 가끔 칭찬하는 소리 한 마디 해주면 또 그거 하나에 좋아하며 내일 또 코트 위에 일찍 가서 기본기 연습을 했다. O형이 운영하는 농구교실도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25살에 시작된 인연이 계속되어 한 3년쯤 지났다. 나는 대회에 따라가서 겨우 교체 선수로 가끔 뛸 기회를 얻었다. 대회에서 뛰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 될까. 하지만, 코트 위에 올라가면 만나는 몸 좋은 상대에게 느껴지는 압박감으로 두근대는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곳에는 온갖 신체능력 괴물들이 우글거렸다. 경기가 끝나고 갖는 회식 자리에서 함께 취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무용담을 함께 늘어놓으며 팀원인걸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나도 저들처럼 팀의 주인공이 되어 보고 싶었다. 강력한 존재감을 가진 선수가 되고 싶었다. 아니, 아직 그것까진 바라지 않으니까 적어도 O형이 '빈둥이 나와.' 라는 말을 해주길 간질히 바라며 벤치를 뜨겁게 달궜다.
O형의 뉴스기사와 댓글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O 선수는 패싱 센스가 좋아서 제2의 000이 될 것 같다. 약점은 슛이 약하고 신체 능력이 약하단 점이다.
'슛이 약하고, 신체능력이 약하다.'
이건 완전 내 얘기였다. 그럼 나도 열심히 하면 O형처럼 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어느 날, 나는 O형과 슈퍼에서 음료수를 단 둘이 먹게 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아무리 농구를 연습해도 그저 그런 개인 능력이 없는 선수라는 자각이 찾아왔다. 나는 너무 공을 많이 뺏겼고, 패스 하나도 제대로 못 줬으니까. 가슴이 사무치게 아팠다. 나는 형에게 참다 못해 고백했다.
"형, 도대체 어떻게 해야 농구선수 될 수 있어요?"
그러자 형은 좀 당혹스러워 했다. 동호회 농구선수 그 중에 벤치선수. 또 그중에도 제일 키도 작고 왜소한 애가 농구선수라니... 형은 음료수를 마시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농구 취미로 하는 거잖아. 밥만 먹고 우린 농구만 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같냐."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희망이 산산조각났다. 그땐 많이 어렸고,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 당시 내 머리속에 '나도 O형처럼 농구 선수가 될거다.' 라는 희망만이 각인되어 있었다. 나는 영원히 코트 위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겠구나. 이런 절망감이 내게 다가왔다.
취미... 취미...
내가 멍때리고 있자 형은 선수 생활 이야기를 들려줬다. 새벽부터 런닝하고 아침 먹고 오전 헬스. 점심 먹고 팀 훈련. 저녁 개인훈련. 하루 종일 운동이었다. 게다가 키가 작아서 패스 능력을 키우려고 손목만 따로 근육을 키웠다고 한다. 황소개구리같은 등, 거대한 식스팩 등 저렇게 인간같지 않은 몸이 어떻게 나오는지 듣고 나자 고등학교때 앉아서 공부만 했던 내가 훨씬 편해 보였다.
하지만 머리는 O형처럼 안 된다는 걸 알아도 가슴은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20대의 에너지란 건 그렇게나 현실을 무시하고 자기를 혹사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건 아닐거야. 현실을 부정하고 나는 20대를 또 농구와 함께 보냈다. 시간을 더 투자하면 될 줄 알고... 그렇게 하면 알아서 선수가 될 줄 알았다. 마치, 학원 뺑뺑이 돌리면 알아서 수능 성적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듯이. 근데 공부는 그렇게 하면 적어도 조금 성장이 된다. 하지만 농구는 영 그렇지 않았다. 몸에 새기는 일이라 그런 것일까. 너무 늦게 운동을 시작한 탓일까. 아니면 타고난 몸이 허약해서일까. 그 이후의 내 농구 실력은 여전히 그저 그랬다. 경험치가 조금 늘어난 정도.
"농구는 수비입니다. 공격은 한 명이 해도 돼요. 하지만 수비는 다섯 명이 다 잘해야 되요. 수비만 잘하면 경기에 뛸 수 있습니다."
대회를 앞두고 형이 던진 그 말이 다시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나는 그 후로 팀 수비 연습영상을 찍고,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지 배우고 또 반복했다. 농구를 마치면 치킨집에 가서 후라이드에 맥주를 먹으면서도 영상을 보다 의문이 나면 멈추고 보고 또 멈췄다. 내 퇴근 이후의 삶은 농구 또 농구였다.
드디어 대회날이 되었다. O형이 선발선수를 고민했다. 나는 아닌척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O형을 쳐다봤다.
"현승이, 민수, 병상이, 그리고...빈둥이."
키도 작고, 약한 내가 첫 선발 출전이라니. 짜릿했다. 물론 첫 쿼터에서 중간에 교체되긴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경기 출전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나는 형이 공만 잡으면 무작정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도 뛰고 또 뛰었다. 수비할 땐 팔을 들고 펄쩍펄쩍 뛰고 '마이! 헬프! 스위치!'를 외치고 다녔다. 키도 작고 제일 마르고, 운동능력도 없고, 기술도 없지만 오로지 수비를 향한 열정. 그것 하나로 뛰었고, 형은 내게 점점 더 많은 기회를 줬다. 어느날, 그는 점수에 여유가 생기자 쉬겠다고 했다.
"형 그럼 1번(포인트가드)은요?"
"빈둥이가 오늘 1번 봐."
심장이 벅차올랐다. 1번 역할은 늘 O형의 자리였다. 형의 자리를 내가 맡다니. 나는 황송해 하며 경기에 들어갔다. 팀원들도 O형이 신뢰를 보내는 내게 잘 대해 주었다. O형은 나를 가르쳤고, 나를 키웠다.
만난지 5년쯤 됐을 때, O형이 농구교실 사업 확장으로 경기도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팀을 나가게 됐다. 이제 O형의 충실한 심복 역할을 하던 나는 그가 없어지자 와르르 무너졌다. 팀에서 내 입지는 오로지 O형이 쓸 때만 있었다. 나를 수비 기계로, 속공 머신으로 단련시켜 놓았던 형이 사라지자 내 역할이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코트 위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이후로 30대 초반까지 나는 농구판에서 이도 저도 아닌 선수가 되어 갔다. 악재가 겹쳐서, 나는 당시 연애하던 사람과도 헤어졌고, 제일 친한 형도 결혼하면서 멀어졌다. 제일 친하던 동생도 오해로 틀어졌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이제 나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의 무능력에 시달리고, 혼자 있는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내 첫 직장이 있던 곳, 내 농구 사랑이 시작된 곳에서 상처만 갖고 나는 8년동안 만든 인맥들이 모두 부질없다 생각했다. 그 후로 3년은 외톨이로 지냈다. 가끔 집 앞에 농구코트에 가서, 자주 오던 중학생과 농구를 했다. 얼굴에 점이 유난히 많았던 녀석은 1대1에서 지고 나면 늘 검지 손가락을 들고 애원했다.
"형, 저 한 번만 더 해요. 네?"
마치 예전의 날 보는 것 같았다.
"몇 점 줄까?"
"11점이니까. 7점."
"콜."
나는 그 녀석을 이기며 농락하는 재미나 볼만큼 많이 찌부러져 있었다. 당시에 웃을 일이 많이 없었다. 점점 얼굴은 더 피폐해져 갔다. 속으로는 O형에 대한 분노를 키워갔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떠나버리다니. 혼자 남은 나는 어떻게 하라고. 이런 마음으로 나는 의존하던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보단, 형 탓을 하며 시간을 그냥 허비해 버렸다. 그즈음에 독립을 했고, 나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집에서 술이나 먹으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어느날 문득, 이대로 있다간 농구 인생 뿐만 아니라 내 인생도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다. 결국 큰 결심을 했다.
- 이사를 가자.
나는 이 작은 도시를 떠나 60만정도 되는 중소도시로 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3월. 나는 새 농구 인생을 시작했다. 네이버 농심 카페에 들어가서 회원을 모집하는 팀을 찾고, 첫 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국대회까지 나간 팀에 있던 터라 눈만 높아져 있었다. 나는 내 실력도 없는 주제에 수준이 낮다고 그들을 무시했다. 물론 속으로만. 그러다 한 번은 팀조끼 입는 문제로 의견을 제시했다가 이상한 놈 취급을 당했다. 전에 있던 팀에서는 형광조끼를 운영진이 매번 빨아 왔어서 그게 정답인줄 알고 있던 내 오만이었다. 그러다, 다른 팀이 게스트를 구한다 하여 갔다가 조금 수준이 나아보여서 나는 바로 지금 있는 이 팀으로 옮겼다.
새 도시로 이사온 나는 이 팀에서는 잘 적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키가 작고 마르고, 게다가 혼자서 공격에선 1인분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슛을 잘 못 쏘고, 수비만 열심히 하는 나를.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수비 못한다고 뒤에서 '야, 앞으로 나가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니나 잘해' 라고 생각했다. 어린 동생이 '형 그렇게 수비하면 안돼요.' 라고 조언 해줄때는 이를 꽉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안다. 농구판에서는 농구 잘하는 놈이 장땡이란 것을. 그리고 농구 잘하는 녀석들은 대개 키가 크거나 덩치가 컸다. 10년을 넘게 농구했어도 농구판에서 나는 여전히 약자다. 그렇기에 나는 만족할 수가 없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아직도 나는 업신여김 당하니까.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그저 그런 선수다.
하지만 지금은 보인다. 나같은 사람들이. 나와 키가 똑같고, 나처럼 마르고 속도도 느린 형 R이 있다. 늘 딸을 데리고 와서 무대에 앉혀 놓고 경기를 뛰는데, R은 8년동안 이 팀에 있으면서 한결같이 회원들에게 모두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형이랑 얘기를 해본적이 거의 없다. 모든 사람에게 거리를 둔다. 극내향인일지 모르겠다. 그는 농구에서 플레이가 한결같다. 잡으면 미들슛. 요리조리 공간 찾아 들어가서 패스 받고 운 좋으면 슛 성공. 아니면 블락 당하기. 키가 작고 기술이 많지 않고, 속도도 빠르지 않으니까. R형은 자주 실패한다. 그는 성장하지 않았고, 성장하지 않을 거라고 오래 봐온 회원들이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처음엔 이런 형이 내 못할 때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고 속으로는 '아, 좀 못한다.' 라고 무시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어떤 애가 R형을 보고 '저 형은 참 착해.' 라는 말을 했을때, R형을 놀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주장 안하고, 남들에게 험한 소리 안 내뱉고, 조용히 운동하고 가는 사람. 무엇보다 작고 코트 위에서 위협적이지 않은 약한 사람을 부르는 말인 것처럼 들렸다. 과연 R형이 착할까? 착한 사람은 누구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데 저 형은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 수도 있다. 실패하든 말든 내 원하는 만큼만 하고 다치지 않고 플레이하니까. 그때 가슴속에 묻어뒀던 그 말이 떠올랐다.
'농구, 취미잖아.'
O형이 했던 그 말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나는 농구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고, 생활체육을 하는 사람이구나. 그럼 '성장'을 목표로 두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새로 만난 R형을 통해 깨달았다. 생활체육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R형처럼 땀을 빼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오로지 코트 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달려왔다. 그게 안 되서 나에게 실망했고,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R형은 코트 위에서 달리는 것 만으로 만족했고, 땀이 젖은 얼굴로 웃으며 딸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제 말한다. 나는 농구를 취미로 한다고. 성장하면 +인 거고, 성장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대회에 나가서 에이스가 되는 걸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수비에서 스틸 하나만 해도 괜찮은 사람도 있다고. 나는 이제 나 스스로 괜찮다고 나를 위로한다. 아니 나를 굳이 '주인공'이란 프레임에 갇혀서 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잘하는 스틸. 내가 잘하는 수비 집중력. 그걸 좋아하는 만큼만, 좋아함을 잃지 않을 만큼 하는거다.
그렇게 나는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됐다. 생각보다 나는 속공도 잘하고, 패스도 잘 주고, 수비 하는 에너지도 좋은 강점이 있었다. 스틸 능력도 꽤 준수했다. 공격에서도 슛만 안 좋을 뿐, 돌파 하나는 꽤 날카로웠다. 이젠 내가 꽤 잘하는 플레이만 보고, 잘하는 돌파를 더 갈고 닦기로 했다. 그것도 하고 싶은 만큼만. 이제 나는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면 이제 스스럼없이 말한다.
"저 R형처럼 오래 부상없이 즐겁게 농구하고 싶어요."
내 마음 속 농구영웅 O형이 되려는 욕심을 마음 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그러자 O형을 향한 미움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결국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