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처럼 농구를 했다.

by 빈둥

수능시험, 대학교 중간 기말고사 그리고 어쩌면 취업시험까지도.


우리는 모두 같은 종류의 시험을 치뤄 왔다.


모두 완벽히 잘하는 사람 vs 하나만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


나는 첫번째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사회 역사를 유독 못했다. 그래서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면서 참는 습관이 몸에 새겨졌다.


싫어도 앉아서 책을 가만히 보고 또 보고... 그렇게 하면 성적이 올랐다. 꾸역꾸역.


잘하는 건 조금 덜하고, 그렇게 밸런스를 잡아갔다.


나는 20대 때 이런 식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에 성실하고 끈질기게 대응하면 성공할 거라 믿었다.


오각형 인간이 되기 위해서.


농구 동호회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키 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이 심각하게 부족했다.


작은 키, 근력, 스피드, 기본기 등등.


부족한 키를 보완하기 위해 근력 운동을 열심히 했다.


밤마다 점프력을 높이려고, 백보드에 100번씩 점프를 하고서야 집에 들어갔다.


경기를 할 때면 달리기 속도가 느려서 누구보다 빨리 뛰어 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평가자가 늘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치열한 만큼 몸이 변했고, 역시 열심히 하면 뭐든 보답을 받았다.


코트 위에서 내 모습이 점점 만족스러워졌다.


전에 날 무시했던 형이 나를 막게 되자 '쟤 힘든데.' 라는 말을 했다.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다. 공을 몰고 가면 앞에서 사람들이 휙휙 옆으로 지나갔다.


하나, 둘, 세 명까지 제치고 골을 성공하기도 했다. 내 고생이 보답받는 거 같았다.


하지만 내 몸과 인생을 소중히 했던 건 아니었다.


벤치 프레스를 아픈 것도 무시하고 하다 어깨가 다쳐서 팔을 한 6개월 못 들었다.


몸무게가 100키로씩 나가는 거구들에게 굳이 부딪쳤다.


조금씩 성장했지만, 공부도 농구도 정면승부만 할 줄 아는 외골수란 건 변함이 없었다.


그저 끈질기게 참고 지속하는 무리한 습관은 운동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운동이란 내 몸을 이해하고 달래가며 하는 걸 그때는 몰랐다.


코트에서 함께 땀 흘리고 나면 갈증을 매일 맥주로 채웠다.


그만큼 간절했고, 진심이었다.


20대는 그렇게 뜨겁게 사는 것만 인생인 줄 알았다.


나를 슬램덩크의 주인공이라 착각하며 살았다.


열정적인 시간은 길어야 3년이다.


10만시간의 법칙도 될만한 것만 해야 한다.


3년 해보고 아닌거 같으면 얼른 접어야 하는데 나는 이기는 팀에 있다고 나도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다 매너리즘에 빠져 점점 스트레칭을 소홀히 했고, 까먹기도 했다.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경기를 뛰고 나서 허벅지에 불편감이 생겼다.


거울로 봐도 왼쪽 허벅지가 유난히 크게 튀어나와 있었다.


운동이 잘 되서 그런 줄만 알았다. 옆에 있던 동생에게 알이 심하게 배겼다고 하자


"형, 그거 뭉친거야. 더 쭉쭉 늘려주면 돼."


그래서 허벅지 당기는 운동을 더 했다.


손가락으로 만지면 허벅지에 딱딱하게 뭔가 잡히고 주변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 부위만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걸을 때마다 불편했다.


정형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했다. 근육 파열이었다.


허벅지 근육 일부가 파열되서 움푹 들어갔고, 끊어진 근육이 말리면서 주변이 튀어나왔던 것.


농구를 쉬라고 했다.


관리를 안하고, 그냥 앞만 보는 내 생활습관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무지개 잡는 소년처럼 나는 어떤 꿈을 향해 달려 왔다.


20대의 나는 팀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를 써 왔지만, 나를 돌보지는 않았다.


퇴근후 시간을 다 바쳤으면서도 늘 무언가 부족하단 느낌에 시달렸다.


늘 코트 위엔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계속 연습만 하며 살아야 할까?


김연아처럼 메달을 따기라도 할 것도 아닌 취미생활인데...


그땐 그런 말이 유행했었다.


일에서 똑부러지게 잘하는 것 하나는 있어야 하고


취미생활 하나는 아마추어 선수 급으로 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저 말이 정답인 것인 양 믿으며 살았다.


이렇게 많은 것을 희생해가면서 노력했던 이유가 불순했다.


순수한 즐거움이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움직여 온 것 뿐이다.


겨우 매일 동호회 동료들 몇 명만 알아주는 유능함을 위해서.


직장을 옮기면서 지금의 지방동호회 하위권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그 사람 뭘 잘해?"


답을 들으면 나이가 가늠이 된다.


"달리는 게 빨라."


20대다.


"달리는 게 쌩쌩해."


40대다.


'개성인 줄 알았던 게, 젊음이었더라.' 라는 이다혜 작가의 말을 좋아한다.(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에서)


농구판에서 실력인 줄 알았던 건, 젊음이었다.


농구에서 연륜이란 건 별 의미가 없다.


40대 팀과 20대 팀이 싸우면 비등비등하거나 40대가 지기도 하는 게 농구판이다.


연륜을 인정받지 못하는 판에서 자기 만족 외에 어떤 동력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계속 농구팀에 50대에도 남아있는 형들이 있다.


그들이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아남는 방법은?


"야. 빈둥아. 너 4050 농구팀 들어올래? 너처럼 뛰는 사람 없어. 여기서 너가 막내야."


그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랑만 뛰면 되는 거다.


50대인 형은 5060팀에서 뛴단다.


하지만 그건 좀 아닌 거 같다.


절대적인 유능함에서 상대적인 유능함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잘해야만 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똑같다.


그럼 지금 나는 뭘 잘해야 할까?


42살이 되서 고등학생 이후 20년만에 농구한다는 형 P가 팀에 들어왔다.


검은 뿔테에 느긋한 표정, 운동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예상대로 그 형은 동호회 경험이 전혀 없었다.


5대 5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으니 꽤나 겸손하고 점잖았다.


한 번은 그 형이 슛 쏠때 내가 손을 찰싹 때렸다.


조금 뒤 형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까 그거 파울이었는데 안 불어 주더라."


손을 친 건 반칙이 맞았다. 모르는 척 했던 내가 조금은 형을 무시하고 있던 걸까.


여튼 P 형은 조심스럽게 웃으며 조곤조곤 할말을 다했다.


하지만 점점 나는 P형을 수비하기 곤란해 졌다.


3점슛을 쏘면 손을 치지 않고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슛폼을 보면 슛의 완성도가 보인다.


예쁜 폼으로 너무나 가볍게 슛을 쐈고 정확하게 쏙쏙 들어갔다.


드리블도 별로고, 속도도 느린 사람인데 슛 하나만 기가 막혔다.


나는 P형을 시기했다. 내게 전혀 없는 슛 능력을 가졌으니까.


사람들은 그가 슛을 쏘면 환호했다. 나는 아무리 수비를 해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았다.


P형이 어느 날 '빈둥이는 수비 잘하잖아.' 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할 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 잘하는 건 쓸모가 없었으니까.


나는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내가 농구에 바친 세월들이 뭐였나 싶었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물었다.


"형. 농구 진짜 성인 되고 안 한 거 맞아요?"


"응. 근데 고등학교땐 슛 100이면 100개 거의 다 들어갔지. 그때도 슛만 좋았어. 슛만 계속 연습했지. "


정말 사람이 우물을 파도 될 우물만 파야 하는것인가 싶었다.


20년을 쉬어도 남아있는 슛감이라니... 나는 농구 인생 15년이 넘도록 슛감이 찾아오질 않는데...


나는 P형이 너무 부럽다.


나는 주전이 되기 위해 농구를 해 왔다.


마치 수능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모든 과목을 공부하는 것처럼.


하지만 P형은 전체 성적엔 상관 없이 수학 한 과목만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중,고등학교때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수학 100점에 나머지 빵점인 사람이라면 어떠하냐고 이 형은 질문을 던진다.


농구 코트는 그런 곳이다.


슛 100점이 슛 70, 패스 70, 수비 70점인 것보다 돋보이는 곳.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곳.


모두 완벽하라는 말이 가득찬 극심한 경쟁의 사막 속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는 메세지를 보내는 오아시스.


농구코트라는 직사각형으로 된 나무판자 위의 세상은


떨어진 공이 튀어오르듯, 부정적으로 보이던 내게 다시 튀어오를 가능성을 보여줬다.


수비에만 유독 에너지가 많은 나를 바꾸려고 할 필요는 없었다.


수비를 신이 나게 하면 그만이다.


남이 알아주건 말건, 신나게 하고 싶은 걸 하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수비도 하기 지루해지면, 다른 걸 신나게 하면 된다.


남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고 이제 조금 더 내가 바라는 걸 하고, 대신 조금 일찍 게임에서 나오기로 한다.


마침 9명 남았따. 5대5 하려면 10명이 있어야 한단다. 그래도 나는 게의치 않고 털고 나온다.


경기 하나 더 하는 것보다 쿨다운 스트레칭을 10분 더 하는게 내게 더 중요하고 내 농구인생에도 좋으니까.


내 농구 인생에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게, 꽤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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