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처분

by 유리사탕

오전 여섯 시. 스피커 알림.


"야간통제가 해제되었습니다."


이미 서진은 세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밤새 뒤척이다 결국 포기하고 일어났다. 세면대 수도꼭지에선 녹물이 잠깐 나오다 맑아졌다.


방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다른 방들의 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객실 복도를 지나는데,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다. 김준영의 방. 문틈으로 안이 보였다. 침대 위에 노트북 세 대. 화면에 코드가 빼곡했다. 김준영은 노트북 앞에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밤새 작업하다 잠든 것이다.


노트북 세 대. 이 섬에서 뭘 하려는 건지.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가 뷔페 형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첫 번째 손님이었다.


토스트와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버터가 딱딱했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것이다. 송민호가 내려왔다. 눈이 부어 있었다. 하지만 뷔페를 보자 표정이 밝아졌다.


"오, 에그 베네딕트도 있네. 이거 소스가 관건인데—" 한 입 먹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음. 70점? 올란데즈 소스에 레몬이 좀 더 들어갔으면."


커피를 마시며 관찰했다. 이 상황에 음식 타령이라니..


"어젯밤에 잘 잤어요?"


"아뇨, 전혀." 웃었다. 웃음 끝이 짧았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어요. 혼자 방에 있으니까 별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잠이 안 왔군요."


포크가 잠깐 멈추었다. 다시 움직이며 웃음을 이어갔다. "5억이 뭐라고, 이런 데 와서."


새벽에 들었던 발소리를 떠올렸다. 운동화 소리. 송민호는 지금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에 내려왔다. 윤재하, 류지원, 오하늘, 강다은. 이수아가 조용히 구석 자리에 앉았다. 정태호가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고 들어왔다. 백서연이 뒤를 따랐다. 차민경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박도현은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열한 명. 김준영만 없었다.


스피커가 켜졌다.


변조된 목소리가 평소와 다른 톤으로 말했다.


"어젯밤 야간통제 시간에 규칙을 위반한 참가자가 있습니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포크가 접시에 닿는 소리,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 전부 멈추었다. 창밖에서 갈매기 울음소리만 지나갔다.


"송민호."


모든 시선이 쏠렸다.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손에 든 포크가 접시 위에 떨어졌다.


딸깍.


"잠깐, 잠깐만요."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나는 그냥, 잠이 안 와서 복도를 좀 걸은 것뿐이에요. 그게 뭐가—"


"규칙 6조. 야간통제 시간 객실 밖 이동 금지. 위반 시 즉시 퇴장."


"퇴장이 뭔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를 어쩌겠다는 거야!"


변조 음성이 잠시 멈추었다. 그 침묵이 식당 전체를 짓눌렀다.


"고해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입이 벌어졌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규칙 4조. 죄가 밝혀진 자는 고해의 기회를 받습니다. 고해를 수락하면 격리, 생존. 거부하면 퇴장." 한 호흡의 간격. "송민호. 당신의 죄를 고해하시겠습니까?"


"무슨, 무슨 죄요." 떨리는 목소리. "나는 야간통제를 어긴 거지, 무슨 죄를—"


"당신이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변조 음성이 차분하게 끊었다. "당신도, 이 식탁에 앉은 모든 사람도, 자기 죄를 알고 있습니다. 어젯밤 그것이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정태호의 질문을 떠올렸다. 누구도 "무슨 죄"라고 반문하지 않았던 그 순간.


송민호가 주저앉았다.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무릎이 대리석을 쳤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30분."


스피커가 꺼졌다.


*


식당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송민호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오하늘이 먼저 움직였다. 일어나 옆에 무릎을 꿇었다.


"괜찮으세요?" 간호사의 목소리. "일단 앉으세요. 물 드릴게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괜찮지 않아요. 하나도 괜찮지 않아요."


"고해하면 된다며." 박도현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뭘 그리 쫄아. 죄가 있으면 말해. 여기 다 같은 처진데."


"같은 처지라고?" 올려다보았다. "아저씨는 자기 죄를 말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여기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입이 닫혔다. 관자놀이의 핏줄이 꿈틀거렸다.


"아무도 못 해요." 송민호가 말했다. "그게 여기 온 이유잖아요. 말 못 할 죄를 지었으니까."


백서연이 나섰다. "법적으로 강제 자백은 무효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든 법적 효력은—"


"법이 뭔 소용이에요, 여기서." 힘없이 웃었다. 처음으로 그의 웃음에서 가벼움이 사라져 있었다.


류지원이 조용히 다가왔다. "송민호 씨. 아무도 억지로 시킬 수는 없어요. 하지만 고해를 거부하면 퇴장이라고 했어요. 퇴장이 뭔지 우리는 아직 몰라요."


"저도 몰라요. 그게 더 무서운 거잖아요."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송민호 씨. 여기서 30분을 보내는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말하든 말든 선택은 본인 거예요. 하지만 퇴장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거부하는 건 도박이에요."


"서진 씨는 알아요? 퇴장이 뭔지?"


"모르죠." 잠깐 멈추었다. 창밖을 보았다. "그래서 도박이라는 거예요."


시간이 흘렀다. 5분. 10분. 식당의 시계가 째깍거렸다.


15분이 지났을 때, 송민호가 일어섰다. 무릎이 떨리고 있었다.


"말할게요."


식당 전체가 숨을 죽였다.


"나는, 요리사예요." 멈추지 않았다. "2년 전에 호텔 뷔페 주방에서 일했어요. 여름이었어요. 에어컨이 고장 났는데 수리비가 아까워서 식자재 관리를 대충 했어요. 냉장 보관해야 할 해산물을 상온에. 몇 시간을."


화상 흉터가 있는 손이 떨렸다.


"그날 뷔페에서 식중독이 터졌어요. 여든 명이 병원에 갔고." 목이 메었다. "한 명이 죽었어요.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었어요."


파도 소리가 창밖에서 밀려왔다.


"나는, 관리 기록을 조작했어요. 온도 로그를 바꿨어요. 호텔 측에서도 덮으려 했고. 결국 식품업체 탓으로 돌렸어요."


고개를 떨구었다. "한 명이 죽었는데. 할머니였어요. 손주 생일이라고 가족이랑 뷔페에 온 거였어요."


오하늘이 입술을 깨물었다.


차민경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화면을 보지 않고 있었다.


정태호가 눈을 감았다.


스피커가 켜졌다.


"고해가 수락되었습니다. 송민호, 격리 처분합니다."


식당 안쪽, 주방 옆에 있던 문이 전자음과 함께 열렸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벽 패널이 옆으로 밀려나며 좁은 통로가 드러났다. 조명이 없는 통로.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


지하.


"해당 통로를 따라 격리실로 이동하세요. 식량과 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송민호가 멍하니 통로를 바라보았다.


다가갔다. "가기 전에." 낮은 목소리로. "어젯밤 복도에서 뭘 봤어요?"


올려다보았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새벽에 돌아다니다가 벽에서 봤어요." 거의 속삭이듯. "1층 라운지 구석, 벽지가 들떠 있는 곳. 그 밑에 긁힌 자국이 있었어요. 손톱으로 긁은 것 같은. 그리고—"

"거기 작은 글씨가 있었어요. '살려줘'라고."


송민호가 돌아서서 통로로 걸어갔다.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넓은 등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벽 패널이 닫혔다. 전자 잠금이 걸리는 소리. 주방에서 접시 부딪히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당에 열 명이 남았다.


*


침묵이 길었다.


"진짜네." 차민경이 먼저 말했다. 평소의 가벼움이 사라져 있었다. "이거 진짜야. 게임이 아니야."


"처음부터 게임이 아니었어요." 정태호가 말했다. "규칙을 세운 자가 처음부터 보여주려 했던 겁니다. 규칙은 실행된다는 것을."


"송민호 씨가 야간통제를 어기도록, 유도한 건 아닐까요?" 오하늘이 말했다. 눈가가 아직 붉었다.


"유도?" 윤재하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모르겠어요. 하지만 잠이 안 오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잖아요. 소음이라든가, 온도라든가."


오하늘이니까.


"유도든 아니든 결과는 같아요." 박도현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앞으로 야간통제는 절대 안 어긴다. 끝."


류지원이 비어 있는 송민호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접시 위에 에그 베네딕트가 반쯤 남아 있었다.


"문제는 야간통제만이 아니에요." 백서연이 말했다. "규칙 5조. 72시간 종료 시 밝혀지지 않은 죄가 남아 있으면 해당 죄인은 '섬에서 사라진다.' 우리 모두, 고해하든가 사라지든가."


사라진다.


"첫 번째 심판이 오늘 오후 네 시예요." 이수아가 조용히 말했다. 식탁 끝에서 노트북을 무릎에 올린 채. "그때까지 여덟 시간 남았어요."


다들 겁에 질려 있는데. 이수아만 시간을 세고 있었다.


*


사람들이 식당에서 흩어진 뒤, 1층 라운지로 향했다.


송민호가 말한 곳. 라운지 구석, 소파 뒤 벽면. 소파를 밀었다. 바닥에 먼지 자국이 있었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뜻.


벽지가 들떠 있었다. 한쪽 모서리가 접혀 올라가 있었다.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조심스럽게 들춰보았다.


벽지 아래 콘크리트 면.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었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방향이 일정하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사람이 필사적으로 긁은 것이다.


긁힌 자국 사이, 작은 글씨. 손톱 끝으로 콘크리트에 새긴 글씨.


'살려줘'


손이 벽에서 떨어졌다.


3년 전. 지하 B3층에서 발견한 것들. 그때는 지하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층 벽에도 있었다. 누군가 지하에서 올라와 여기까지. 또는 여기서 잡혀 지하로 끌려갔다.


3년 전에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알았어야 했다. 3년 전에.


벽지를 원래대로 덮었다. 소파를 다시 밀어놓았다.


콘크리트에 새겨진 글씨의 촉감이 손가락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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