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른, 그러다 마흔

[Part1] 3화. 첫 월급으로 산 건 엄마 선물이었다

by 유리사탕


통장에 숫자가 찍혔다.


세전 이백사십, 세후 이백십만 원 조금 넘는 돈. 태어나서 내 이름으로 가장 큰 금액이 들어온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확인하고, 화장실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진짜였다. 일한 대가가 숫자로 돌아오는 경험. 그게 이런 기분인 줄 몰랐다.


동기들이 말했다. 첫 월급으로 뭐 살 거냐고.


운동화. 패딩. 에어팟. 대답은 다 비슷했다. 나도 사고 싶은 게 있었다. 겨울이라 패딩이 필요했고, 출퇴근용 무선 이어폰도 갖고 싶었다. 노트북도 바꿔야 했다. 목록을 적다 보면 이백십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에서 엄마 생각이 났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창밖으로 아파트 불빛이 지나가는 걸 보다가 문득. 저 불빛 중 하나가 우리 집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안에서 엄마가 저녁을 차리고 있었겠구나 싶었다. 내가 학원 갔다 늦게 들어오는 밤에도, 취업 준비한다고 방에만 있던 날에도, 엄마는 늘 부엌에 있었다.


핸드크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손이 거칠었다. 설거지를 하루에 세 번은 했으니까. 겨울이면 손이 갈라져서 밴드를 붙이고 다녔는데, 엄마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원래 겨울엔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 크림 하나 안 바르는 사람.


백화점에 갔다. 핸드크림 코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종류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시어버터, 로즈, 라벤더.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직원에게 물었다.


"어머니 선물인데, 손이 좀 거친 분이요."


직원이 웃으며 하나를 골라줬다. 삼만 팔천 원. 핸드크림이 이렇게 비싼 건가 싶었지만, 첫 월급이니까. 포장도 부탁했다. 리본까지 달아줬다.


집에 가는 길이 이상했다. 선물 하나 들고 가는 건데 심장이 빨라졌다. 면접 전날보다 더 떨렸다. 뭐라고 하지. 그냥 "이거"라고 하면 되나. "첫 월급이라서"라고 말하면 너무 오글거리나. 연습을 했다. 지하철 안에서.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가 부엌에 있었다. 역시나.


"엄마."


"어, 왔어? 밥 먹었어?"


"응. 이거."


쇼핑백을 내밀었다. 엄마가 손을 닦고 받았다. 고무장갑을 벗은 손이 벌겋게 불어 있었다.


"뭔데?"


"그냥. 첫 월급이라."


결국 말해버렸다. 괜히 뒷목이 뜨거웠다.


엄마가 포장을 열었다. 핸드크림을 보더니 한참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괜한 걸 했나 싶었다. 차라리 용돈을 드릴걸. 현금이 더 실용적이었을 텐데. 핸드크림이 뭐라고.


"이걸 왜 사 왔어."


엄마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평소보다 한 톤 낮고, 끝이 떨렸다.


"손 거칠잖아. 바르라고."


"이런 데 돈 쓰지 마. 네가 쓸 거 써."


그러면서 엄마는 핸드크림 뚜껑을 열었다. 냄새를 맡았다. 손등에 조금 짜서 발랐다. 갈라진 손가락 사이로 크림이 스며들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양손을 비볐다.


나는 방에 들어갔다. 더 있으면 울 것 같아서.


한 시간쯤 뒤에 거실에 나갔더니, 엄마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이모한테.


"우리 아들이 첫 월급 타서 나 핸드크림 사 왔어. 아이고, 아니야. 비싼 거 아니야."


나는 못 들은 척 냉장고를 열었다.


엄마의 그 목소리가, 세상 어떤 합격 통보보다 좋았다. 삼만 팔천 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거기 있었다. 거칠고 갈라진 손 위에, 서툰 아들의 마음이 천천히 스며드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