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서른, 그러다 마흔

[Part1] 4화. 술자리에서 웃고 집에서 울던 밤

by 유리사탕

웃는 게 어렵지 않았다.


누가 웃긴 말을 하면 웃고, 분위기가 좋으면 따라 웃고, 건배를 하면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금요일 밤, 회사 근처 고깃집. 연기 사이로 얼굴들이 보였다. 다들 한 주가 끝났다는 안도감으로 붉어져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겉으로는.


"야, 너 요즘 괜찮아?"


선배가 물었다. 소주를 따르면서.


"네, 괜찮아요."


반사적으로 나왔다. 괜찮다는 말. 스물여덟 이후로 가장 많이 한 말이 아마 그거였을 거다. 괜찮아요, 별일 없어요, 잘 지내요. 전부 같은 말이었다. 번역하면, 묻지 마세요.


이차로 옮겼다. 맥주집. 누군가 노래방을 가자고 했고 나는 웃으면서 따라갔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박수를 받았다. 웃었다. 또 웃었다.


새벽 한 시, 택시를 탔다.


기사님이 라디오를 틀어놨는데 새벽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발라드가 나왔다. 창밖으로 텅 빈 도로가 지나간다. 가로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얼굴을 스친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그 리듬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집에 도착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불을 켜지 않았다. 신발도 안 벗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술기운이 올라오는 건지, 다른 무언가가 올라오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천장을 봤다.


갑자기 전부 무의미해 보였다. 오늘 웃었던 것, 건배했던 것, 노래 불렀던 것. 거기에 내가 있었나. 아니, 있긴 있었는데 빠져 있었다. 몸은 거기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어딘가 멀리서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밤이 처음은 아니었다.


스물여섯부터 그랬다. 사람들 사이에선 괜찮은데 혼자가 되면 무너졌다. 이유를 모르겠어서 더 무서웠다. 뚜렷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나를 힘들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막연하게,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 방향이 맞나. 대답 없는 질문들이 새벽마다 찾아왔다.


친구에게 말할까 생각했다.


"나 요즘 좀 힘들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뭐가 힘든데? 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으니까. 회사 다니고, 월급 받고, 건강하고. 객관적으로는 힘들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더 말하기 어려웠다.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힘들어할 자격.


눈물이 났다.


소리 없이. 술 때문인 척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핑계를 댔다. 술이 과했나 보다. 컨디션이 안 좋은 거다. 원래 새벽엔 감정이 예민해지는 거다. 합리화의 끝에는 항상 같은 결론이 있었다.


나는 괜찮지 않다.

근데 그걸 인정하면 무너질 것 같아서 또 덮었다.


아침이 되면 괜찮아질 거다. 실제로 아침이 오면 좀 나았다. 햇빛이 들어오고, 알람이 울리고,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밤의 감정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래서 또 괜찮은 척했다. 회사에서 웃고, 점심을 먹고, 야근을 하고, 금요일에 또 술을 마셨다.


반복이었다.


술자리에서 웃고 집에서 우는 밤이 몇 번째인지 세지 않았다.


세면 무서울 것 같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 밤이 온다. 예고 없이.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울고 나서 이불을 덮기 전에 혼잣말을 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누가 해준 말이 아니다. 그 수많은 밤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게 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