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통역의 통역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2014년 스산했던 늦가을의 어느 날 오후에…
오늘은 영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머리도 묵직하고, 너무 피곤해 자지 않던 낮잠도 자 보려고 한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예상대로낮잠이 나를 찾아와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침대를 박차고 나와 샤워도 해 보고, 내게는 가끔 사치스러운 마약과도 같은 초콜릿타르트에 커피 한 잔도 마셔 봤지만 이것마저 효과가 없다.
이럴 때는 그냥 9 to 6로 사무실에 묶여 있는 것이 훨씬 낫다는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내가 즐겨 듣던 NPR의 ‘Radio lab’이라는 프로그램 중, 강의에 활용하기도 좋고, 칼럼을 쓰기도 좋아 보이는 매력적인 이슈가 있어 그냥 생짜로 듣고 번역을 하기로 맘 먹었다. 스크립트도 없이 듣고만 하는 번역인지라 허접하기 짝이 없지만, 공부도많이 되고 생각할 것도 많으며 재미있기까지 한 내용이라 그나마 집중은 잘 되었다.
-수화통역의 통역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미국 뉴저지에서 열렸던 어느 코미디 축제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쇼에는 14,000 여 명이라는 엄청난 관객이 운집해 있었고, 사회자는 제프로스라는 코미디언이었다.
그의 주특기는 대상을 말로 공격하여 면박을 주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을 연출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Insults-comedian’이었다.
쇼가 시작되자 그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객석의 관객들을 지목하여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신사분? 이름이뭐죠?’
‘Rob입니다.’
‘오늘 밤 먹잇감을 사냥하시길 바랍니다. 저기 두 분의 귀여운 여성분들 같은…’
(Rob라는 이름에서 랍스타를 연상하여 던진 유머)
‘귀여운 숙녀분들, Twofives make ten.’
(사람들 완전 뜨거워짐, 그러나영어방송을 이렇게 많이 들어도 이런류의 성적 콘텐츠가 담긴 코미디에는 한국어로도 약했던 터라 도저히 번역 불가.공부는 해야겠지만, 지금은 기분 전환 삼아 번역하는데 이런 공부까지는 패스!)
‘오! 저기 수화 통역을하고 계신 숙녀분이 있네요. 제가 그 쪽으로 좀 가볼까요?’
‘이름이 뭐죠?’
‘킴입니다.’
‘여러분! 킴에게 큰 박수부탁해요.’
(박수!)
‘오, 아주 뜨거워요, 킴!’
(라디오를 번역하고 있는 것이라 추정하기로는 그녀의 옷차림 때문이아닌가 함.)
제프가 말을 이어 갔다.
‘얼마 전에 나 아주 맛이 갔었어요.’
제프는 수화통역사를 이용하여 점점 수위를 높여 갔다.
‘그 날 난 코 속에 코딱지가 있어서 엄지손가락을 콧구멍에 쑥 집어넣었죠.’
수화 통역사는 자신의 손가락을 콧구멍 속에 집어 넣으며 수화통역을 했다.
‘그리고 난 그 손을 내 ‘그곳’에 가져갔어요.’
(라디오에서는 ‘그곳’이 당연히 ‘삑’으로 처리됨.)
킴 역시 수화 통역을 하면서 자신의 손을 자신의 은밀한 부위 쪽으로 가져갔다.
이쯤 되니 관중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킴, 나 오늘 밤 너무재미있어요.’
제프는 이제 한 발 더 나아갔다.
‘나는 그 손으로 내 바이브레이터를 꺼내 고전 스타일로 그걸 시작했어요.’
킴이 또 통역을 했다.
‘30분 동안 나 완전 뿅 갔었죠!’
킴은 섹스의 절정에 도달하는 표정을 묘사하며 그야말로 뜨거운 수화통역을 했다.
‘킴, 당신 너무 멋져요.’
(사람들 완전히 열광, 또열광하며 환호!)
제프는 수화통역사라는 그녀의 특수한 입장을 백분 활용하여 쇼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 성공했다.
제프는 수화통역사인 킴을 이용한 셈이고, 킴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스스로를 성희롱한 셈이 되는데, 킴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쇼에 초대 받아 관람을 하던 라디오 프로듀서는 이 쇼의 중반에 킴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찾아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했다.
뉴저지 수화통역사 리스트를 모두 뒤져 그녀가 사는 곳을 찾아내어 인터뷰를 했다.
킴은 매우 종교적인 분위기의 뉴저지의 해변마을에서 사는, 주로 예배, 미사나 성가대, 음악회 등을 통역하는 수화통역사였다.
그런데, 그녀가 주로 맡아 하는 음악회 통역을 하는 회사에서 이번에코미디쇼에 청각장애인 관객이 있으니 이 쇼의 통역을 해 달라고 부탁해서 그 곳에 가게 된 것이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연의 경우, 청각장애인이 한 명이라도 티켓을 구매하면 법에 의해 그에 따르는 적절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화 통역사지원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킴은 코미디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음악회야 설사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없더라도 프로그램도 있고, 가사도 미리 찾아 볼 수 있지만 코미디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녀는그야말로 맨 몸으로 그 공연에 부딪힌 것이었다고 했다.
프로듀서는 킴에게, 당시 그 코미디 쇼에서 제프 때문에 그야말로 자기자신을 성희롱한 셈이 되는데, 그것이 괜찮았냐고 물었다.
킴은 의외로 쿨하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녀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일반적으로 수화통역사에게는 세 가지의 옵션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예의를 갖춘 공식적 수화,캐쥬얼한 수화, 친밀한 수화이다.
예를 들어 ‘Fuck’이라는 단어를 통역해야 하는 경우, 예의를 갖춘 공식적 수화를 사용하려면 수화로 스펠링을 하면 된다. ‘f,u, c, k’ 이런 식으로.
캐쥬얼한 수화 통역의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중지를 펴서 상대를 가리키는 모션을 그대로 한다.
좀 더 친밀한 수화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아주 그레피컬하게 섹스를 연상하는 모션을 손동작을 이용하여 하면 된다.
킴은, 이런 맥락에서, 수화통역사로서제프와의 대화를 어떻게 통역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그가 코미디를 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녀는 세 번째 경우가 맞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고했다.
제프가 더러워지기로 했기 때문에 자기도 더러워지기로 한 것이라고.
그건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프로듀서가 그에 대해 괜찮았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별 문제 없이 그상황을 캐쥬얼하게 즐겼다고 했다.
그렇다면, 킴은 왜 쇼 중간에 공연장을 떠났느냐고 물으니, 그녀의 클라이언트가 그걸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킴은 애초에 엄마와 함께 이 쇼를 보러 왔던 단 한 사람의 젊은 청각장애인 여성을 위해 그 쇼를 통역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그녀가 더 이상 쇼를 보지 않고자 했기 때문에 그 곳을 떠났던 것.
프로듀서가 제프가 킴을 이용해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어가고 있을 당시, 클라이언트의기분은 어땠냐고 물었다.
킴에 따르면, 그 당시 클라이언트는 자신이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는것 같은 상황에 매우 당황해 하며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낀 것 같다고, 그래서 킴에게 공연장을 떠나겠다는의사를 표시한 후, 그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프로듀서는 수화통역 서비스를 받았던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고 싶어 이메일도 보내고, 전화도 해 보았으나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 이야기는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수화통역사의 역할 범위에 관한 문제인데, 수화통역사는 수동적으로 관객에게 통역의 대상이 되는 공연을 다른 관객들과 똑같이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전해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클라이언트를 원치 않는자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공연의 순수성이 손상되더라도 일종의 중간지대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인가?
또한, 이런 상황 때문에 수화통역을 받았던 당사자의 위엄을 훼손한것은 아닐까?
나 역시,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상황에 대해 다른 사람의 주관성이철저히 배제될 수 없는 묘사를 통해 정보를 얻으며, 다른 사람의 눈을 빌어 교사와 교수님들의 판서된노트필기 등의 정보를 습득해야만 했던 감각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할 점이 많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이 이야기의 출처는 NPR의<Radio lab>이라는 프로그램 중 ‘Translation’이라는주제로 방송된 내용 중의 일부임을 밝혀 둔다. http://www.npr.org/podcasts/452538884/radiolab 다음의 URL을 통해 <Radio Lab>에 입장할 수 있으며, 위의 내용은 OCTOBER 20, 2014년 'Translation'의 51분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