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번호 없이 사용등록, 태깅형 OTP 내장으로 고령자에게도 편리
네모난 플라스틱 카드 한 장, 그냥 가져가서 단말기에 긁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실물 신용/체크카드에도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 같다.
특히나 다양한 편의성과 할인 프로모션 메리트를 갖춘 네이버페이, 토스페이,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에 내 카드 한 번만 등록해 놓으면 얼마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인데 장애인이라고 해서 카드 사용에 무슨 불편이 있을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사실 각종 간편결제 앱의 접근성 문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오늘은 주제의 간명한 전개를 위해 실물 카드의 접근성 문제에만 한정하여 글을 쓰기로 한다.
먼저 네모난 카드에 어떤 시각적 정보들이 적혀 있는지 한 번 떠올려 보자.
카드번호, 유효기간, CVC 등.
카드 사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숫자 정보들이다.
요즘은 페이앱들의 일반화로 일일이 카드번호나 유효기간을 적어가며 결제할 일은 많이 줄었지만, 해외 직구나 상담사를 통한 결제 정보 변경 등을 위해서는 여전히 시각적으로 이 정보들을 인지하고 활용해야 할 때가 제법 많다.
특히나 가장 근본적으로 전술했던 편리하디 편리한 페이앱들을 사용하기 위한 초기 카드정보 등록은 직접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비록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카드정보 스캔 기능의 정확도가 떨어져 결국 직접 입력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런데, 카드정보가 점자로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지갑에서 카드를 쓱 꺼내서 정보를 읽거나 입력할 방법이 없다.
(내가 금융기간이나 기업 강의 때 이 얘기하면 카드에 금색으로 숫자 양각되어 있는 거 말씀하시는 분들 드물게 있는데 그 관찰력은 칭찬하나 점자 스피드도 손감각도 최상인 나조차도 그 숫자를 촉각으로 읽기엔 너무 작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 가지 더, 페이앱들에서 카드 등록의 편의성을 더하겠다고 만든 카드 스캔 기능, 그 네모칸에 맞춰서 카드 정보가 잘 스캔될 수 있게 할 만한 능력이 시각장애인인 내게 있을 리 없다.
(제대로 포커스가 맞추어질 때 비프음으로 알려주는 기능이라도 좀 충실히 넣어 주지!ㅠㅠㅠㅠ 없는 앱이 태반이라...ㅠㅠㅠ)
이러니 어쩌다가 유효기간 만료를 앞둔 카드사가 너무도 친절하게 먼저 알아서 카드 재발급을 해주거나 지갑이라도 잊어버려 카드 재발급을 받기라도 하면 시각장애인인 나는 카드 사용 등록부터 각종 공과금이나 휴대폰 요금 등의 결제 변경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지난한 고역을 치루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정말 싫다. 이래서 내가 지갑을 평생 두 번 정도 밖에 안 잊어버렸나부다.ㅋㅋ 그것도 한 번은 요즘은 보기 드문 소매치기가 돈도 별로 없는 대학생 백팩을 칼로 긋고 가져간 것이지만...ㅋㅋㅋㅋㅋ
전술한 것과 같은 신용/체크카드 장애인 사용 편의성이 떨어져서 겪고 있는 내 고역을 기술 발달 과정에 따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눈 좋은 사람이 있으면 읽어 달라고 하면서 등록한다.
하지만 혼자 살 땐 이게 불가능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래서 두 번째 방법으로 카드 사진을 찍어서 신뢰하는 이에게 카톡으로 보내주면 그 사람이 타이핑을 해서 카톡 메시지로 보내주기도 한다.
그런데 부탁하는 사람은 1000% 신뢰한다 해도 카드를 사진으로 찍고 어딘가에 보내고 하는 게 보안에 있어서는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셋째, 스마트폰과 장애인 보조공학 어플리케이션들이 발달함에 따라 시각장애인용 문자인식 및 음성합성 앱으로 카드정보 텍스트를 추출하여 그걸 잠금이 걸린 메모로 저장해 두고 카드 등록과 결제 등에 활용한다.
이 방법은 작년까지만 해도 문자인식률 정확성이 떨어져서 안정적이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많이 개선되어 인식 오류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활용할 만한 대안이 되었다. 현재 내가 각종 카드를 관리하고 접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얼마 전 다소 늦게 토스뱅크카드를 발급받게 되었는데 실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우선 카드번호가 없다.
또한 카드 IC칩 쪽 변과 대칭되는 변에 살짝 홈을 파서 쉽게 촉각적으로 카드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모양이라니...
나와 세대가 비슷한 사람들은 아마도 공중전화 카드라는 유물을 기억할텐데, 그게 바로 이렇게 카드 투입 방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나름 유니버설 디자인적 특성을 갖춘, 다시 말해 장애인 및 고령자의 사용 편의성을 어느 정도 고려한 최초의 카드가 아닐까 싶다.
카드 사용에 나름 스트레스가 많았던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너무도 반가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카드 번호는 어떻게 확인하냐고?
이렇게 토스뱅크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보이스오버로 읽을 때도 아무 문제 없이 접근 가능하니 내 입장에서는 나름 편리했다.
그렇다면, 과연 토스뱅크카드의 어떤 특성들이 나로 하여금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한 카드로 여기게 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Su2yW9Tu2OI
IT기기 전문 리뷰 사이트 underkg.com의 영상을 첨부하였습니다.
위의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토스뱅크 카드는 카드번호 등의 정보를 입력하여 사용 등록을 하는 방식이 아니다.
MFC 기술을 활용하여 카드를 본인의 스마트폰 뒷면에 태그하기만 하면 카드정보 입력 없이도 자동으로 손쉽게 사용 등록이 된다.
비록 토스앱에 카드 등록할 때 딱 한 번의 경험이었고, 다른 앱을 사용할 때는 확장성이 없는 제한적 기능이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나에게는 그 딱 한 번의 카드 번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극도의 해방감을 가져다주는 매우 강렬한 경험이었다.
일상 속 카드 정보가 필요한 다양한 결제 플랫폼 속 다양한 상황에서 이러한 사용자 경험은 불가능한 것일까?
카드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다양한 사용 환경에서 장애인이나 고령자들을 고려한 MFC 기술 등을 활용한 위와 같은 방식의 사용 편의성을 많이 고민하고 적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토스뱅크카드를 받고 또 하나 놀라웠던 건, 태그형 OTP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시각장애인이라면 이 OTP라는 물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다.
처음 나온 일반 OTP는 볼 수도 없는데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은행이 알고 시각장애인용 보안카드를 잠시 만들던 시절 그걸 사용하겠다고 하면 니가 시각장애인이니 금융거래에 위험성이 있으므로 송금 한도를 몇 백 만원 이상 할 수 없다고 이러지를 않나.ㅠㅠㅠㅠ
그래서 10년 전쯤의 어느 날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은행 직원을 향해 난 이렇게 말했었다.
그냥 나 시각장애인인 거 모르는 걸로 하고 나 이 OTP 가져가겠다고. 참고로 내가 점자 보안카드 쓰면 다른 사람들이 점자를 모르기 때문에 내 보안카드 습득했다 해도 못 알아봐서 일반 실물형 보안카드보다도 훨씬 안전한 건데 이러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어떻게 가정 생활하고 주택 거래도 이사도 하는 사람이 몇 백 만원 송금한도로 사느냐고...ㅠㅠㅠㅠ
인권의식이 조금 신장된 지금은 인권위에 진정하면 차별 행위로 간주되기라도 하겠지만 정말이지 그 땐 그랬다.
한 5년 전쯤에는 또 다른 대안으로 위 사진과 같은 음성출력형 OTP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고장도 너무 잦고 많은 수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신청하고 지급 받는 데에도 한 3, 4주는 걸렸었다. 게다가 1년 정도 사용하면 어김없이 고장이 나서 다시 내 돈 5000원 주고 발급 받고 또 등록하고...ㅠㅠㅠ 정말 번거로웠다.
그 뿐이랴? 사용할 때도 유선 이어폰이 꼭 있어야 하는데 에어팟 같은 걸 주로 쓰는 요즘 그건 유물에 가까우니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한 많은 OTP 사용 경험을 갖고 있는 나에게 태깅형 OTP 내장 카드라니...
OTP 번호를 볼 필요도, 후진 음성 OTP를 번거롭게 사용할 필요도 없이 그냥 카드만 태깅하면 OTP 기능을 알아서 한다니...
이건 정말이지 토스뱅크에게 백 번 고맙다고 하고 싶을 정도로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고맙고도 신박한 기능이다.
물론 어르신들에게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실 토스는 처음 스타트업으로 페이앱 서비스를 제공할 때부터 너무나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앱 설계에 시각장애인 접근성 또한 매우 잘 지켜지고 있어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오래 전부터 가장 애정하며 활용해 온 앱이기도 하다.
나 역시 토스뱅크에서 가계부 기능 등 다양한 기능들에 보이스오버로 무리 없이 접근 가능해서 너무 애정하며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카드 외관에서 발견한 유니버설디자인적 특징을 언급하자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단말기 등에 카드를 투입할 시 방향성이 헷갈릴 수 있는데 촉각적으로 방향성을 인지하기 쉽도록 카드에 홈을 살짝 파 놓은 디자인 별 것 아니지만 칭찬유니버설 디자인적 접근이기에 칭찬한다.
또한, 예쁜 거 좋아하는 아들이 자기 카드도 아닌데 더 좋아했던 카드 꾸미기 스티커들.
이 역시 카드 번호조차 없이 심플하게 디자인된 카드를 나름의 개성을 살려 커스터마이즈 해 보라는 의도로 포함된 구성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뜻밖의 유용한 기능이 있다.
보통 카드를 한 장만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을텐데, 여러 장의 카드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도 점자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름 모텍스에 점자를 써서 붙여 놓는 사람도 있고, 그도 아니면 칸칸이 꽂은 순서를 외워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다양한 모양의 스티커가 있다면 자기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카드에 붙여 놓으면 구분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물론 토스카드는 홈이 파여진 디자인과 스티커 덕분에 내 지갑에서 가장 쉽게 찾아지는 카드가 됐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쓰는 빈도도 늘게 된다.
모르긴 해도 토스뱅크카드를 설계하고 디자인한 실무자들이 나 같은 시각장애인 고객들을 특별히 타깃팅 하여 배려의 마음을 담뿍 담아 이러한 디자인과 기능을 적용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저 좀 더 특별한 디자인과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기능 등을 고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이 어느 정도 담긴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춘 카드가 된 것이리라.
덕분에 나 같은 시각장애 사용자는 이런 카드가 또 없다며 장애인 사용자 경험적 관점에서 편리하고 좋은 카드라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
유니버설 디자인 예찬론자들이 늘 말하듯, 어떤 건물이나 제품, 서비스 등의 사용 편의성을 가장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사용자들의 편익에 맞추면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기능까지 갖춘 훌륭하고 멋진 산물이 되어 그 기업의 이윤과 가치를 한층 업그레이드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토스뱅크카드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