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오랜만에 박물관 나들이
지난 주말 오랜만에 아이와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역시나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시원한 체험 공간을 찾아온 관람객들과 어린이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조를 짜서 온 아이들도 많아 박물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오죽하면 푸드코트와 식당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 더운 편의점 앞 파라솔 땡볕에서 아이스커피와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야 했을 정도였다.
사실, 시각장애를 가진 나에게 있어 박물관이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였다. 눈 앞에서 흔드는 손도 1미터만 떨어지면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나에게 박물관 유리 보호 케이스 속 멀찌감치 떨어진 전시물들은 그저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벽일 뿐이었다. 요즘엔 박물관에도 다양한 도슨트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그나마 그런 프로그램이라도 이용하면 설명이라도 체계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엔 그런 것도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그냥 엄마 아빠가 읽어 주는 간략한 전시물 설명이나 상식선에서 해주시는 이야기를 통해 박물관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 내가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의 전부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난 늘 생각했다. 저렇게 재미 없고 나에게는 하나도 의미 없는 박물관에 가느니 차라리 좀 더 자세하고 권위 있는 설명이 곁들여진 관련 책을 읽고 말겠다고. (물론 당시에는 점역 서비스가 활성화 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시각장애 학생인 내가 읽을 만한 점자책들도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보니 이런 지적 호기심을 채울 길이 별로 없어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여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이렇게 내게는 별 재미도, 흥미도 없었던 박물관을 아이를 위해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다니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국립 박물관에 가서 혹시나 하여 상설 전시 리플렛이라도 점자로 만들어진 것이 없나 물어보아도 그런 것조차 여전히 없었을 만큼 박물관의 장애인 접근성은 여전히 나아진 것이 없었다. 그러니 경제학 전공한 아빠가 아이와 화폐박물관에 가도 시각장애가 있으면 아무것도 설명해 줄 수 없고, 영어가 능통한 엄마가 영어권 국가의 국립 박물관에 가도 전시물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는 웃픈 사태도 생기게 된다. 그래도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들던 시기인 약 5년 전부터는 박물관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고 나름 발전하는 작은 변화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즈음 한국 수어언어법이 통과되어서인지 수도박물관에서는 전시물 설명에 수어설명 QR코드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당시 흥분해서 사진까지 찍으며 우리 가족이 좋아했던 생각도 난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는 RFID 방식 단말기를 활용하여 전시물 앞에 가서 사용자가 전시물의 번호를 누르거나 단말기가 인식되면 전시물에 대한 오디오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단말기 대여 서비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편 우리 나라의 대표적 국립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보다 조금 늦게 변화가 조금씩 시작되었는데, 가장 큰 국립박물관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그 변화의 시작과 속도가 너무 느렸다. 내가 처음으로 그나마 조금 쓸만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물 오디오 서비스를 중앙박물관 앱을 통해 활용한 건 가야에 대한 특별전을 관람하러 갔을 때인 아이 초등 2학년 말 겨울방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중앙박물관 앱에 모든 박물관 관련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다 집어 넣어서 앱을 디자인한 탓에 앱 크기가 너무 커서 구동도 원활하지 않았고, 전시장 내에서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다 보니 원활하게 오디오 서비스가 구동하지를 않아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해 답답하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 2020년 늦가을, 어떤 인연으로 한 기자 지망생 청년의 나름 사수 같은 취재 대상으로 박물관 장애인 접근성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기사 방향성과 언어 사용 등을 첨삭하고 잡아 주는 도움을 주게 되어 박물관에 갔을 때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이 만져볼 수 있도록 딱 한 개 만들어 놓은 선사시대 유적 레플리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건 그야말로 딱 하나, 상징적인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당시엔 별 감정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이번에 다시 찾은 선사시대, 마한, 진한, 변한, 삼국시대 전시관 등에서 각각 가장 대표적인 유물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배리어프리 촉각 전시물이 하나씩 제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니 나도 이 레플리카들이 매우 반갑고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조망이 빠른 아이가 그래도 각 시대별로 하나씩은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며 이런 게 보일 때마다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점자로 쓰인 설명과 레플리카를 직접 만져보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니 다른 관람객들도 부쩍 관심을 보이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곤 하였다. 시각장애를 가진 관람객인 내가 이 레플리카를 통해 박물관을 관람하는 모습으로 인해 아이들도 감각장애인들의 박물관 관람시의 어려움과 모두를 위한 박물관이 되기 위한 대안까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니, 박물관에서 만든 이 레플리카가 비단 시각장애인들만을 위한 투자는 아닐 것이다.
정작 우리의 이 날 주된 방문 목적은 멕시코와 한국 수교 50주년을 맞아 특별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고, 여전히 이 전시는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답답함만 안겨주긴 했다. 전시실 입구에서 아스테카의 세계관을 쉽게 이해하고 관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작한 동영상 속 내레이션 외에 내가 얻을 수 있는 전시 정보라고는 아이가 띄엄띄엄 읽어 주고 설명해 주는 전시물들의 이름과 간단한 텍스트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새 방앗간처럼 늘 들르던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전시실에서 가뭄 속 단비같이 만나게 된 배리어프리 촉각 레플리카에 그래도 모두를 위한 박물관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역시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도 좀 누그러졌다.
마지막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박물관 접근성 개선을 위한 의견 몇 가지를 남기자면...
첫째, 적어도 국립 박물관들의 상설 전시 관련 리플렛 정도는 점자로 만들어 비치해 두었으면 한다. 내용으로는 짧은 전시 기획 의도와 내용 소개, 전시관 이동 순서에 따른 전시물 순서와 각각의 전시물에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는 설명 텍스트 정도를 넣어 주면 어떨까 한다.
둘째, 국립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주요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 시 하루에 1회, 혹은 일주일에 딱 1회라도 수어 통역사를 동반한 프로그램,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언어적 설명과 촉각적 체험이 좀 더 가미된 배리어프리 특화 도슨트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으면 좋겠다.
셋째, 오디오 안내 시스템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은 IT 선진국 답게 스마트폰을 모든 사람이 사용한다는 가정으로 MFC 기술을 활용한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데, 관리가 좀 힘들더라도 RFID 방식 전용 단말기를 제공하는 등의 단순한 접근 방식을 활용해 주었으면 한다. 사실 그 앱을 돌리려면 나름 고스팩의 스마트폰이 필요한데 누구나 그런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고령자 등은 능숙하게 다루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국 박물관 같은 곳에 가면 전용 오디오 서비스 기기를 많이 보는데 그들이 그저 우리보다 IT가 덜 발전해서, 와이파이가 안 좋아서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배리어프리라는 것이 꼭 장애만을 고려하는 개념이 아니므로 이런 점도 세심히 살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약 15년 쯤 전에 혼자서 저시력인용 케인 하나 달랑 들고 싱가포르 자유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 혼자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에 갔었다. 다른 뜻은 없었고, 혹시나 점자 리플렛이라도 있을까 해서 박물관 입구에서 내가 시각장애인이며 이 박물관을 관람하러 왔는데 혹시 점자 리플렛 같은 건 없냐고 물어보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직원이 어디론가 무전을 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 시각장애 관람객이 한 분 오셨는데 점자 리플렛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 괜찮다면 내가 이 분을 안내하여 박물관 관람을 도와주고 다시 이 자리로 복귀해도 될까요?“ 태어나서 그 때까지 이런 태도로 장애를 가진 나를 맞아주는 경험을 국내에서는 전혀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일단 너무 놀라고 감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폐가 될까 싶어 그야말로 황송함에 아니라고,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셔도 괜찮다고 손사래까지 쳤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젊은 청년 리차드는(투어를 도와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름까지 알게 됨) 나에게 구석구석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들과 싱가포르의 역사에 대해 설명도 해 주었고, 멀라이언 아래에서 그 싱가포르의 상징과도 같은 조형물의 의미와 생김새도 알려주고 사진도 찍어 주었다. 심지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는 바로 연결된 인공해변에서 핑크돌고래쇼도 보고 아쿠아리움도 관람했었는데 그 곳을 관람할 때 도와줄 직원까지 어레인지 해 주기까지 했었다. 나의 관람 어시스트를 인계 받은 분 역시 만져볼 수 있는 생물들은 만져보게 하고 아쿠아리움에 어떤 종류의 생물들이 있는지 어떤 색깔인지 최대한 알려주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또한 핑크 돌고래쇼를 볼 때는 돌고래의 각종 기예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고 본인이 열심히 그 장면 장면들을 내 디카로 열심히 찍어 주기까지 했었다. 그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한 관람객으로 전적으로 존중 받고 이해 받는 (내 나라에서도 평생 못 해봤던) 극한의 받아들여짐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내가 그 이후로도 겁 없이 뵈는 게 없어도 혼자 어느 나라든 자유 여행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용기를 장착할 수 있는 원천이 되어 주었다.
그렇다.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 나와 다른 존재, 다른 삶, 다른 방식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 그것이 어떤 Fancy한 장애인 접근성 관련 제도나 기술 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박물관도 느리지만 조금씩 배리어프리를 고민하고 변화하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국립 박물관에서도 내가 싱가포르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관람자로서 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