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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Mar 29. 2023

너무도 귀하고 특별했던 광남고 법과 정치 과목 특강


보통 나에게 강의를 의뢰하는 교사들의 90% 정도는 법정 의무교육으로 몇 년 전부터 그 시행 조건이 강화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법적 명칭인 <장애인식개선강의>를 요청한다.


물론, 10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내가 진행하는 온라인 연수나 강의 의뢰해 주신 선생님들께 보내는 이력서나 제안서 등에 <장애공감교육>, <장애이해증진교육> 등으로 열심히 용어를 바꾸어 사용해 오고, 또 내 강의 관련 포스팅에도 늘 같은 용어의 해시태그를 붙이다 보니 이젠 여러 학교나 교육청 등에서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은근 뿌듯하다.





지난가을쯤 광남고등학교 주우연 선생님으로부터 매우 마음을 쓰시는 듯한 특별한 강의 제안을 받았다.

본인은 사회과 담당 교사이며 일반적인 장애인식개선강의가 아닌 법과 정치 과목의 특강으로 장애와 불평등, 본인의 삶을 중심을 겪었던 사례들도 곁들여 강의를 해 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일단 특수교사가 아닌 일반 교사의 강의 요청부터 너무나도 이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법정강의가 아닌 자신의 과목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한 특강 요청이라 개인적으로 무척 신선한 강의 제안이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수 있다니...


우리 모두 알다시피 고등학생들은 대입이라는 중차대한 과업을 수행하는 터라 수능이나 내신에 저어어어언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강의들은 들을 시간도, 여유도 없지 않은가?

그런 아이들에게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기회가 얼마나 귀히 느껴졌는지 모른다.     


강의가 있던 날은 엄마가 갑자기 떠나신 지 고작 열흘 남짓 되었을 때였다.

고등학교이니 당연히 1교시도 일찍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광진구는 우리 집에서 매우 멀었으므로 나는 새벽 6시 30분경 집을 나섰다.

유난히 몸도 마음도 시리고 추웠던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7시 40분도 안 되어서 도착한 학교에는 놀랍게도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맞으려 서 계시기도 하고, 이미 교무실에도 많은 선생님이 계셔서 살짝 놀랐다.

(아! 맞다. 여기 고등학교지?ㅋㅋㅋㅋ)     






강의 내용에 대해서 다른 때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준비했다.

이제 거의 성인기에 가까운, 머리가 다 자란 아이들에게 진부하고 고루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공정성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무겁지 않게 위트 있고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잘 들리게끔 전달해 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같은 등록금을 내고도 사용 가능한 컴퓨터가 캠퍼스 내에 한 대도 없었던 시각장애 학생의 입장에 내 마음이 움직여 다니던 대학교에 후배들을 위해 시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를 만들었던 일이라든가 TOEIC이나 수능 등 각종 국가시험 및 중요한 자격시험에서 과연 장애를 가진 같은 또래 친구들이 공정하게 시험을 치르고 있을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비장애인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나의 경험을 살짝 녹여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공감과 이해를 구하며 강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고등학생들인 만큼 진로와 전공에 대한 고민도 많을 터.

장애로 인한 불편을 해결하고자 고안된 다양한 첨단 기술과 디자인 등 아이들의 흥미와 앞으로의 진로 설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들도 강의에 포함하여 진행하였다.     





이 날 나는 평소 만나기 힘든 고등학생들을 만나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감사하고 설레었었다. 

실은, 엄마가 떠나신 지 열흘 남짓밖에 되지 않아 속으로는 많이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막상 강의를 시작하고 나니 4교시 네 시간 강의를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내 모습에 나 자신조차 조금 놀라기도 했었다.

3교시 강의를 마치고 한 시간 점심시간을 가졌는데 주우연 선생님께서 너무도 맛있는 도시락까지 시켜 주셔서 감사히 먹었다.


사실 당시 난 뭘 잘 먹지 못했음에도 내가 남기면 선생님께서 급식실도 아닌 장소에서 버리는 것도 불편하겠다 싶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도시락을 비웠던 기억도 난다.

점심을 함께 나누며 선생님의 예전 저시력 장애학생 제자 이야기도 나누고, 또 사회과 교사로 소수자에 대한 공정과 정의에 대한 교육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고민 등등 사려 깊고 좋은 말씀도 많이 나눌 수 있어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저 학습으로서의 사회과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그 안의 실질적인 삶과 연관된 소수자 문제, 정의와 공정의 문제들을 깊이 고민하며 가르치려 노력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또한, 나를 주우연 선생님께 소개해 주신 분은 사실 내 인가을 들으셨던 사서 선생님이셨다고 하셨는데, 새삼 사서 선생님께도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뵙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 추웠던 생각이 난다.

손도, 몸도, 마음도 너무 시렸던 그날...

늘 다니던 양평역임에도 넋이 나간 듯 헤매다 집에 들어갔던 날이었다.

하지만, 이 날 강의는 너무나도 보람되고 뜻깊은 강의로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다시 한번 의무로 듣는 장애공감교육이 아닌 과목 특강으로 귀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신 광남고등학교 주우연 선생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강의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렇게 감동적인 후기까지 써 준 예쁜 광남고 학생들에게도 고맙다는 마음을 전해 본다.


사실 강의 하는 데 비해 늘 후기 쓰는 것에는 게으르고 인색한 나이지만, 이번 강의 후기는 정말 정말 쓰고 싶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나의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회복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던 탓에 이렇게 늦은 강의 후기를 쓰게 되었다.

앞으로도 중, 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강의가 좀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며 늦은 후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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