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만난 자연재해
철제 침대 헤드가 달달달 떨렸다.
잠결에 다리를 떨었나, 잠에서 깨었다. 오전 8시쯤으로 기억된다. 침대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침이 시작되었다. 두어 시간 뒤, 지인의 전화 한 통이 날벼락이 되어 떨어졌다.
어머머머머, 이게 다 무슨 말이야???
푸껫은 태국에서 가장 큰 섬이며, ‘아시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대표 관광지다. 방콕으로부터 862km 떨어져 있고 비행기로 1시간 20분 여분 소요된다. 그중에 빠통은 상권이 가장 발달된 다운타운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빠통 해변가에는 고급 호텔과 리조트가 즐비하여 유럽인들의 휴가지로 인기 만점이었다. 나는 빠통에서 언덕을 하나 지나면 나오는 마을 무반(단독주택)에 터를 잡았다.
전날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우리는 빠통에 나가 저녁도 먹고 함께 할 수 있는 미니골프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정이 가까워지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날도 날이니만큼 빠통 호텔에서 하루 묵고 갈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분위기파 기분파인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렇게 늦은 시간 귀가한 우리들은 늦잠을 자야 마땅한데 침대 헤드가 흔들려 강제 기상을 하게 된 것이다.
여행사업을 하는 지인과 통화하는 다급한 가이드의 목소리가 전화를 뚫고 나왔다. 가이드는 이제 대학 졸업을 앞둔 어린 친구였다. 정제되지 않은 앞뒤 없는 앳된 그녀의 울먹임에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손님을 데리러 간 빠통의 호텔로 물이 들어차 모두 옥상으로 대피를 했다고 한다. 지인은 다급히 빠통으로 향했지만, 빠통은 이미 통행이 금지되었고 우리는 얼이 빠졌다. 생전 처음 겪는 이 일이 그렇게나 큰 재해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9.3의 초대형 지진이었다. 이 지진은 인도양 전 지역에 치명적인 쓰나미를 발생시켰다. 쓰나미라는 말도 처음 들어본 때였다. 지금은 기쁨의 쓰나미, 슬픔의 쓰나미, 감동의 쓰나미 등 뭔가 큰 감정에 갖다 쓰지만, 쓰나미를 겪고 나니 누구에게는 언어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고 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부상을 당했다. 빠통은 뻘에 잠긴 도시처럼 초토화가 되었다. 더 이상 기쁨과 설렘의 바다가 아니었다. 침대 헤드의 떨림은 쓰나미가 일어나기 전단계 지진이었고, 그로부터 두어 시간 뒤 바다가 뒤집어진 것이다.
전날 빠통에서 묵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쓰나미를 직접 목도했다면 우리는 지금 괜찮을까.
우리는 살 수 있었을까.
정말 우리에게 수호신이 있었던 건 아닐까.
오조오억 개의 생각들로 심장이 뛰던 그날.
2004년 12월 26일.
태국에 정착한 지 두 달 반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