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취준생이라고 무시해도 되는건 아니잖아요
"저의 차별화된 장점은 데이터 기반의 문제해결 역량입니다. 데이터 분석 언어인 Python과 시각화 툴인 Tableau를 활용하여 인사 데이터에서 정확한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70개가 넘는 예상 질문 답변을 일주일 동안 달달 외우고, 또 외웠다. 혹시나 말하다 토씨 하나 틀릴까 싶어 계속 틀리거나 꼬이는 부분은 볼드체, 밑줄, 빨간색 가리지 않고 표시해서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이젠 정말로 안 틀린다 싶을 때 그만두기로 스스로와 약속하고, 자기소개, 회사 지원동기, 직무 지원동기, 퇴사 사유, 장단점 중 아무것도 틀린게 없었을 때야 비로소 잠에 들었다. 거실에 에어컨을 틀어놨지만 내가 면접 보는 걸 알고 부모님이 관심 갖는게 싫어서 찜통 같은 더위에도 방문을 닫고 연습했다. 선풍기로는 역부족인 32도의 실내 온도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지만 꾹 참았다. 면접 답변을 너무 연습해서 나중에는 글자가 쳐다보기 싫을 정도였지만 이겨내야 한다. 제발 이번에는 꼭 합격하고 싶다.
새벽 1시에 겨우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2시에 자버렸다. '혹시 면접에서 실수하진 않겠지?'하는 걱정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간절해질수록 조급해지는 마음. 3년 남짓한 취준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면접을 봤지만 그 하나의 기회가 너무 소중하기에 간절한 마음은 매한가지다.
아침 8시에 일어났더니 오늘 휴가인 엄마가 벌써 깨어있다. 엄마 몰래 면접 보기는 글렀다. 별 수 없이 면접 때만 공들여서 하는 화장을 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엄마 방에서 무표정으로 고데기를 하고 있으니 "면접에서 좋은 인상 남기려면 잘 웃어야 돼"하며 옆에서 걱정어린 잔소리를 한다. 걱정마 엄마. 면접 짬바가 있는데 그런 기본 상식은 당연하지.
바쁘게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 하니 어느새 현관에 와서 "지금 열심히 하는만큼 나중에 다 보상이 돌아올거야. 잘하고 와 우리 딸~"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벌써 이런 기대를 몇 번이나 주고 떨어져서 면목이 없기에 대답 없이 손만 흔들고 나와버렸다.
고데기를 열심히하고 나왔는데 밖에 비가 온다. 조금도 아니고 많이. 이럴 때를 대비해 프로 J인 나는 휴대용 무선 고데기까지 장만했다. 이전에 비오는 날 생쥐 꼴로 면접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돈이 궁해서 3만원 하는 고데기를 살까말까 두 달동안 열심히 고민하면서 매일 사이트를 확인하다가 할인할 때 그냥 질렀다. 면접에서는 인상도 중요하니까. 조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떻게든 챙기고 싶어서.
오늘 면접 보는 회사는 역에서 멀어 지하철을 타고 버스도 타야한다. 버스 안의 많은 직장인 속에 나만 취준생은 이 기분은 참 묘했다. 한 때 직장인이었을 땐 직장이 있다는게 감사한 일인줄 모르고 매일을 불평불만에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나보니 가끔은 그런 일들도 얼마나 소중하고 다행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직장인의 힘듦과 취준생, 백수의 힘듦은 각자 다르지만 둘 다의 입장에 처해본 나로서는 취준생이 곱절 힘든 것 같다. 소속감과 안정감, 소득이 없는 삶이 장기화되는 건 상상 그 이상의 우울함을 안겨준다. 이러다 나도 다시 직장인이 되면 백수가 차라리 나았다고 할까? 아니. 이젠 절대 아니다. 확신할 수 있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지도를 켜고 찾아가보니 아저씨들이 우르르 모여 담배 피고 있는 건물을 가르키고 있었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다행이 그 조금 옆 건물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매우매우 낡았다. 아마 내가 면접을 보러 간 건물 중에 제일 노후화된 건물 같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도 건물이 썩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비하면 아주 많이 양반이었다. 거긴 괜찮은 편이었구나. 최악을 경험할 때마다 차악같은 이전 회사가 떠오른다. 그 때 심한 갑질을 당한 기억은 미화된걸까. 차라리 그 회사 그냥 다녔어야 되는걸까 생각할 때마다 어차피 나올 회사였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런 생각 이제 그만하자고 했잖아.
담배 냄새가 가득한 좁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면접 장소가 위치한 층에 내렸다. 허접한 A4용지에 '신입사원 면접 대기 장소'라고 써있었다. 지원자 경험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기업은 입사해서 인사팀이 어떻게 일할지 그려진다. 면접 대기 장소에 들어가니 대기 장소도 낙서되어 있고, 안내해주는 담당자분들은 뒤에서 계속 사담을 하시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누가 계속해서 가래와 구토를 뱉는 소리까지 너무 잘 들렸다.
게다가 내 면접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는데, 면접시간이 다 되어서도 아무런 안내 없이 내 이름이 호명이 안 되어서 직접 여쭤보니 그제서야 면접이 1시간 넘게 밀렸다고 말해주는.....아무리 그래도 면접이 지정된 시각에서 계속 밀리면 먼저 말씀을 해주셔야 하는거 아닌가. 안 그래도 험난한 날씨에 오느라 진이 빠졌던 나는 마음 속으로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네, 하고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취준생은 을이니까. 내 입장 따위는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겠지. 비슷한 일을 너무 겪어서 익숙해져버렸다.
2시간 반을 대기하고 드디어 본 면접은 더 최악이었다. 말 그대로 병풍 면접이었다. 지금까지 본 면접 중 가장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질문도 없었다. 병풍 면접이라도 개인 질문 하나는 할 법도 한데, 나한테 물어본 건 1분 자기소개, 퇴사 사유. 이 두 가지가 끝이었다. 자기소개랑 퇴사/이직 사유는 모두에게 공통 질문이었으니 나한테 물어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면접관들은 3년 유관 경력에 대학원까지 재학 중인 분께만 관심을 쏟았고 나는 속은 타들어갔지만 옆에서 웃으며 30분 내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까지 신입 면접에 오는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분 말고도 다른 두 분 역시 경력이 있으신 분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답변을 들으며 신입 면접인데 이젠 다 경력 있는 사람들만 면접에 세우는구나, 생각할 즈음 면접관이 이제 면접을 마무리하겠다며 내가 열심히 준비한 마지막 할 말을 발언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끝내버렸다. 정말 역대급으로 허무한 면접이었다.
면접을 위해 일주일 동안 예상 질문을 만들고, 답변을 작성하고, 회사 분석을 하고, 일찍 일어나 화장하고, 궂은 날씨에 1시간 걸려 회사에 간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낯선 화장실에서 회사 지원동기, 장단점, 자신만의 직무 강점 등 뻔한 개인 질문 하나 받지 못하고 면접장에서 나온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선 고데기로 뿌리 볼륨까지 준다며 셋팅한 머리와 공들인 화장에 비해 내 얼굴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보였다. 난 여태까지 뭘 한거지. 뭘 위해 여기까지 왔지.
머릿수 채우려고 날 부른 걸 알았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서류부터 탈락시키는게 낫다. 기어이 면접까지 가서야 병풍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게 너무 싫다. 이런 수치의 대가는 겨우 2만원. 벌써 교통비로 3500원 썼고 내가 면접을 위해 들인 시간, 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몇 푼 얻었다고 좋아해야 하는걸까.
기분이 다운된채로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엄청 많이 왔다. 우산을 썼는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젖어서 블라우스와 바지가 온몸에 쫙 달라붙었고, 물이 첨벙청벙하는 구두를 끌다시피해서 집에 돌아왔다. 지쳐서 거지꼴로 현관에 앉아있는데 불현듯 오늘 면접 잘 보고 오라고 뒤에서 응원해주던 엄마가 생각났다. 방에서 혼자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는 나를 알면서도 부담될까 면접 보냐고 묻는 대신 뭐 먹고 싶은거 없냐고 물어보던 아빠도 생각났다.
기업에서 취준생을 배려할 이유가 없다는 거, 몇 번이나 당해서 잘 알지만 그럼에도 오늘 일은 너무 상처가 됐다. 엄마아빠가 알면 너무 속상해할 것 같아서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삼킨다. 아니, 삼키지 못해서 소화되지 못한 채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백수, 취준생의 삶은 그냥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