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N번째 퇴사를 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by 에델바이스

2025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다니던 한국 법인을 퇴사했다.


회사에 다닌 지 5개월 만이었다.

퇴사 한다고 했다가 번복 했다가 다시 또 퇴사 한다고 난리 부르스를 겪고 난 후의 퇴사였다.


작년 4월, 말레이시아로 도망쳤다.

간절히 원했던 회사를 4개월 만에 퇴사한 후

2년 넘게 사귀던 남자친구와 이별한 후

얽매일 것 없는 자유인(?)의 신분으로 부모님이 계신 말레이시아로 갔다.


“너한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

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스스로 희망을 지어내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자.

해외에서 언제 일해보겠어.

부모님도 계시고 완전 좋은 기회잖아.’


회사에도 관계에도 싫증이 나버린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싶었다.


아니,

솔직하게 한국에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해외취업이라고 하면 그럴싸해보이니까.

나중에 커리어 한 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나의 내적 동기는 없었다.


첫 출근이 설레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했다.

생활용품 담당 첫 한국인 마케터였다.

상사는 그동안 본인이 작성해왔던 한국 보고서 작성을 와장창 맡겼고

그동안 마케팅 일까지 맡았던 영업 부서는 방어적인 태도가 심했고

한국 본사에서는 요청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한국 본사 직원도 로컬 직원도 아닌 애매한 중간 위치에서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맞다…이게 회사였지…’


일을 던지고 압박하는 상사

방어적인 영업 부서 동료들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어려움

혼자 한국인 마케터

.

.

결국 출근한 지 2주만에 화장실에서 울었다.

일이 힘든 것 보다 압박만 하는 상사와

상사에 대한 적대감이 나한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현지 동료들의 눈빛이

외로웠다.


‘역시…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구나’


그럼에도 맡은 일은 열심히 했다.

한국 본사 임원과 협력사 임원까지 모인 미팅에서 영어로 신제품 소개를 하고

현지 인플루언서 30명 앞에서 영어로 제품 소개도 하고

혼자 협력사 미팅을 가서 영어로 발표도 했다.


회사의 신임은 두터워 지고 회사 일도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본능적으로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몸에서도 나타났다.


한 달에 한 두번은 이유없이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누워있어야만 하고 인후염, 방광염을 달고 살았다.

회사에서도 일하다가 오후 4시쯤 밖에 나가서 멍때리면서 혼자 앉아있었다.


원래 계획은 25년 9월까지 1년은 일하고 싶었다.

비자 받은 것도 1년이었고 전 회사에서 4개월 일하고 퇴사해서

이곳에서는 적어도 1년은 일해야 커리어를 망칠 것 같지 않았다.

퇴사 후 계획도 없었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면서 버티다가

몸은 계속 아프고 난생 처음 동료랑 트러블이 생기고

감정 소모가 3일 내내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더이상 못 버틸 것 같아서

비자도 취소해야 하고 세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인센티브도 못받고

연봉 인상도 취소하고 커리어도 망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했다.


내 욕망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보기에 좋아보였던 선택은

몸과 마음을 괴롭혔다.


퇴사 후 25년 3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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