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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Mar 05. 2023

농사짓는 우리 아버지

 정말 잘 됐다. ‘취미’가 생겼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자 떠오른 첫 문장이었다. 주말이 되면 아버지는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 항상 안방에 누워있었다. 점심엔 엄마가 구워주는 파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곤 낮잠을 잤다. 어린 시절,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소중한 주말을 허비하는 게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깨달았다. 주말엔 누워 있는 게 최고다. 또 이렇게 아버지에게 하나 배웠다.


 그런 아버지에게 취미 생활이 생겼다. 주말엔 아침 일찍 나가서 해 질 녘 즈음 들어온다. 평일엔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가서 취미를 즐긴다. 아버지의 취미는 '농사'다. 어머니 친구가 일구던 밭이 있었는데, 이사를 가게 되면서 그 밭을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경남 남해 큰집을 가서도 아버지가 밭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큰아버지가 일구는 밭이 있었지만, 내 기억 속 아버지는 그곳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거나, 뒤뜰에 있는 유자나무에서 유자를 따는 게 전부였다. 아버지가 밭일을 한다니,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농사짓는 아버지의 모습은 곧 만날 수 있었다.


 주말이었다. 11시까지 늘어져 자다가 배고파 잠에서 깼다. 거실로 나가니 기름 냄새가 집안 가득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주말 간식 ‘파전’을 굽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밭에 나갔다. 나는 흙보다 아스팔트에 익숙하다. 농사를 시작한 아버지가 신기했다. 엄마가 큰 대접에 파전 겹겹이 쌓아 올리고 비닐 팩으로 덮었다.


 “엄마, 이게 뭐야?”


 “새참. 밭에 좀 가져다주고 와.”

 밭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배달 주문이 들어온 것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엄마가 알려준 밭 위치를 떠올렸다. 대학 정문을 통과하여 샛길로 빠지면 산길이 나온다. 그곳에 주차하고 길 따라 쭉 걸어가면 인삼 밭이 있다. 거기에서 네 번째 오두막, 아버지의 밭이었다. 새참을 손에 들고 아버지의 취미 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찾았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밀짚모자를 쓰고 밭을 일구는 아버지의 모습도 처음 봤다. 엄마가 싸준 새참을 오두막에 내려놓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밭일이 재미있으세요?”


 아버지는 머쓱하게 웃었다. 이윽고 내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밭에 오면 얘들이 내를 보고 웃는다. 얼마나 이쁜 줄 모르제?”

 고구마, 대파, 양파, 여주, 고추, 호박이 심겨 있는 곳을 가리켰다. 이 넓은 곳을 아버지 혼자 가꾸고 있었다. 침대에서 TV만 보던 아버지가 집 밖에 나와 취미 생활을 제대로 즐겼다. 시장에서 사 온 비료를 직접 밭에 뿌렸고, 그 땅에  파종까지 했다. 평일 새벽에 밭을 찾아서는 잡초를 뽑았다. 오두막에 앉아 파전을 먹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지만,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취미가 생긴 아버지의 웃음은 나에게 기쁨을 안겨줬다.


 기쁨을 받은 건 나뿐만 아니었다. 아버지의 취미는 주변 지인에게도 기쁨을 전했다. 직접 농사지은 양파, 대파, 호박을 차 트렁크에 싣고 아버지 친구, 친척, 이웃에게 나눠줬다. 받는 사람보다 더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수확물을 받아 든 지인이 미소를 지으면 아버지는 덩달아 맑게 웃었다. 그 맛에 밭농사를 짓는 것 같다. 취미 덕분에 아버지 얼굴에 웃음이 물드는 날이 많아졌다.

 오랜만에 아버지 차를 탔다. 매운 냄새가 가득했다. 트렁크에 담았던 양파향이 좌석까지 비집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좀 맵제?”라며 창문을 내렸다. 올해 양파 농사가 잘 된 모양이다. 뒷좌석엔 고구마가 바구니 가득 담겨있었다. 365일 다이어트하는 나와 엄마를 위한 고구마였다. 이 고구마도 아버지가 직접 밭에서 키웠다. 이번 다이어트는 꼭 성공해야겠다. 아버지의 농사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행복하게 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밭에 행복을 심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취미 생활이 생겨서 정말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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