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20만 원, 명절 30만 원, 생일 50만 원. 부모님에게 드리는 용돈이다. 저녁 식사는 그날의 주인공이 사야 한다는 엄마 의견을 존중하여 봉투만 준비한다. 용돈을 받아 쓰던 내가 이젠 용돈을 드리고 있다. 뿌듯하고 행복하다.
엄마가 환갑을 맞이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은행을 찾아 새 돈으로 50만 원을 뽑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버건디 색상 봉투에 돈을 넣었다. ‘역시 난 효자’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그냥 생일도 아니고, 환갑인데 좀 특별한 건 없을까?’
매번 봉투만 준비했다. 저녁 식사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주섬주섬 봉투를 꺼내 머쓱하게 내밀었다. 엄마와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딸랑 봉투만 주는 건, 너무 분위기 없었다. 이번엔 달라야 했다. 엄마에게 특별한 생일을 선사하고 싶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막막할 땐 인터넷이 최고다. 검색창에 ‘엄마 선물’을 쳐봤다. 돈이 줄줄이 나오는 선물 상자부터 디퓨저, 가방, 영양제 등 센스 있고 독특한 상품이 가득했다. 그중 가장 눈길이 가는 포스팅에 손가락을 올렸다. ‘엄마에게 꽃 선물을 했습니다.’는 제목이었는데, 꽃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누군가의 엄마 모습이었다. 썸네일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꽃 선물을 언제 했었지?’
“엄마,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여기 카네이션이요.”
“고마워 아들.”
내 기억이 맞다면, 중학교 때가 마지막이다. 학교 앞 잡화점에 파는 카네이션을 엄마에게 쭈뼛쭈뼛 건넸다. 고작 5천 원짜리 조화였지만, 엄마는 아들에게 받은 꽃을 색이 바랠 때까지 화장대 한 편에 올려놨다. 그 후 엄마에게 꽃 선물을 한 적이 없었다. ‘용돈을 많이 넣었으니까’, ‘저녁을 샀으니까’ 다른 건 괜찮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핑계고 변명이다. 그땐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쑥스러웠다. 애정 표현이 서툴고 더딘 아들 때문에 엄마는 고생해서 키운 아들에게 꽃 선물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감사’, 핑크 장미의 꽃말이다. 엄마에게 핑크색 장미꽃을 선물하기로 했다. 꽃말을 먼저 생각하고 산 건 아니다. 엄마가 붉은색 계열을 좋아해서 단번에 골랐다. 집으로 가는 길에 꽃말을 찾아보니,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순서가 어찌 되었건 기분 좋은 선택이었다.
감사의 마음이 담긴 꽃은 생일 케이크 촛불이 꺼지고 엄마 품에 안겼다. 예상치 못했고, 아들에게 받아본 적 없는 꽃을 받아 든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봉투만 받았을 때 보다 더 기뻐했다. “뭘 이런 걸 준비했냐.”라고 말했지만 어느 때보다 표정이 밝았다. 소녀처럼 웃는 엄마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환갑을 맞이한 엄마는 여전히 소녀였다. 꽃 선물은 성공적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꽃 선물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그동안 여기 도달하기까지 겪은 수고와 고통에 대해서 알고 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물과 적당한 온도 등 수많은 요인을 충족하고 이겨내야 한다. 그 끝에 꽃이 피어난다. 고되고 힘든 시기가 엄마라고 왜 없었을까? 받아 든 꽃 못지않게 엄마도 수고와 고통을 겪었다. 핑크 장미를 건네며 엄마의 수고와 고통에 감사를 전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내가 선물한 꽃을 꽃병에 담아 식탁에 올려놨다. 꽃다발을 풀어서 꽃병에 꽂는 모습을 떠올려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많이 할 걸 그랬다. 그간 꽃 선물을 엄마에게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엄마에게 표현도 많이 하고 애교도 조금 부릴 줄 아는 아들이 되어야겠다. 수고와 고통이 있겠지만.
‘엄마,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의 수고와 고통이 있어 저라는 꽃이 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