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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May 11. 2023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부라노 섬'

아이유 섬, 바토레토, 수상버스 그리고 하루 끝

 바다가 부릅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짜릿한 바다향이 먼저 맞이했습니다. 이곳은 수중도시 ‘베네치아’입니다. 누가 부산남자 아니랄까 봐 ‘바다 짠 내’를 맡으니 힘이 샘솟습니다. 유럽여행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입니다. 설렘이 파도처럼 밀려오네요. 베네치아는 1,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물의 도시입니다. 본섬 내부에는 자동차 도로가 없습니다. 수상버스와 수상택시 그리고 도보로만 이동이 가능하죠. 말 그대로 ‘수중 도시’입니다.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베네치아에서 가장 먼저 둘러볼 섬은 ‘아이유 섬’으로 알려진 ‘부라노 섬’입니다. 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 배경이 된 장소예요. 준 유애나(UAENA)로서 아이유 발자취를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일정을 시작하기 전, 멀미약부터 챙겨 먹었습니다. 수상버스를 1시간가량 타야 하거든요. 작은 배라서 많이 흔들린다고 해요. 부산 남자라고 해도 바다에서 놀기만 했지 배를 탄 적은 없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약의 힘을 빌렸습니다.

 수상버스를 타려면 ‘바토레토’ 티켓을 사야 합니다. 한국의 교통카드와 똑같습니다. 이 티켓은 수상 버스뿐만 아니라 육상버스, 트램까지 이용 가능합니다. P.le Roma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폰테 델라 리베르타’ 자유의 다리를 건너 베네치아 본섬에 도착했습니다. 항구에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습니다. 정류장에서 버스가 아닌 배를 기다리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수시로 드나드는 수상버스를 카메라에 담으며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본섬에서 부라노 섬으로 가려면 배를 두 번 갈아타야 합니다. F.te Nove "B"에 내려서 옆 정거장 F.te Nove "A"로 걸어간 뒤, 그곳에서 부라노 섬으로 가는 수상버스를 타면 도착합니다. 버스나 지하철 환승만 해봤는데 배를 갈아타는 경험 하네요. 너무나 설레서 멀미 걱정이 싹 달아났습니다.


 정거장에 들어설 때 꼭 ‘바토레토’를 기계에 태그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지하철 이용하는 것과 동일해요. 불시 검표 할 때가 있습니다. 태그 하지 않았거나 분실했을 경우 벌금이 50유로 정도 나옵니다. 한국 돈으로 7만 원 정도네요. 파스타 세 그릇 금액입니다. 티켓을 태그하고 가방 안쪽에 곱게 모셔뒀습니다. 잠시 후 F.te Nove "B"로 가는 배가 항구로 들어왔습니다.

 대운하를 따라 나아가던 수상버스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배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니 마치 건물이 물 위에 떠있는 듯했습니다. 육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자 반갑게 화답해 주었습니다. 다행히 파도가 없어서 배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 그리고 짜릿한 베네치아 바다 냄새를 느끼며 낭만을 즐겼습니다.


 골목을 벗어난 수상버스는 카나레조 북쪽 정류장을 하나씩 거치며 운행했습니다. 배 오른편은 베네치아에서만 볼 수 있는 수상가옥이 펼쳐졌고요. 왼편엔 넓은 바다가 나타났습니다. 어업을 하는 배도 만났고요. 양식장처럼 보이는 표식도 있었습니다. 양 옆을 오가며 경치 구경에 빠졌습니다. 오른쪽, 왼쪽 어느 한 곳에만 앉아있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어느덧 환승 정류장인 F.te Nove "B"역에 도착했습니다. 선착장 바닥에 걸터앉아 바다를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개 멋, 다른 말로는 낭만이라고 하죠. 숨을 크게 들이마셔서 바다 내음을 온몸 가득 채웠습니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이 몸속에 퍼져나갔습니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건너편에는 산 산 미켈레 공원묘지(San Michele Cemetery)가 보였습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저곳에 잠들기 원한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멋진 곳에 머무를 수 있는 낭만이 부러웠습니다.


 배를 옮겨 타고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대운하를 가로지를 때와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드넓은 바다 위에 내리쬐는 햇빛은 부라노 섬을 보고픈 기대감을 한껏 올려줬습니다. 부라노 섬에 아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뮤직비디오에서 봤던 알록달록한 집을 떠올리며 바다 감성에 빠져들었습니다.

 부라노 섬에 닿기 전, ‘무라노 섬’에 도착했습니다. 발음이 비슷해서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라노 섬은 부라노 섬 가는 경로에 있어서 잠시 들린다고 해요. 개인적인 생각은 부라노 섬에 먼저 방문하고 돌아올 때 무라노 섬에 방문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배에서 봤던 무라노 선착장은 그늘도 없는 그야말로 땡볕이었습니다. 줄도 엄청 길었고요. 장시간 서 있다가 부라노 섬에 도착하면 감흥도 덜합니다. 부라노 섬 일정을 끝내고 컨디션 확인 후 무라노 섬에 들르는 걸 추천드립니다. 괜히 우리 아이유가 그곳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했겠어요? 부라노 섬이 더 아름답고 유명하거든요.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배를 탔네요. 아름다운 바다와 맑은 날씨 덕분에 멀미는 없었습니다. 아담한 공원을 지나자 알록달록한 집이 나타났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파스텔 톤 건물이 조화를 이뤘습니다. 건물을 만진 손으로 하늘을 쓰다듬으면 하늘이 알록달록 물들 것만 같았습니다.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운하에 작은 보트가 정박해 있었습니다. 보트를 타고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는 사람들을 상상했습니다. 운하에 비친 건물 위로 보트가 지나가면 운하가 파스텔 색깔 파도로 일렁일 것 같습니다.


 부라노 섬의 아름다운 색채는 어부들이 배를 알록달록 색칠하던 것에서 유래 됐다고 합니다. 배에서 집으로 이어진 것이죠. 집주인이 자기 집을 색칠하려면 정부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럼 담당 기관에서 해당 부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색상을 알려줍니다. 그중 원하는 색을 골라 집을 칠한다고 하네요. 마을 주민들도 이 시스템에 적극 협조한 덕분에 파스텔 마을의 아름다움이 이어지고 있나 봅니다.

 알록달록한 집이 골목을 따라 줄지어 이어졌습니다. 집 하나만 보면 독특한 색상을 가진 집이지만, 여러 집이 함께 있어 골목을 더욱 다채롭게 물들였습니다. 혼자가 아닌 연인과 이 길을 걸으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하루 끝> 가사처럼 ‘처음처럼 설레는 그런 날, 혼자 있긴 너무너무 싫은 날’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과 알록달록한 골목이 어우러져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딱 한 발짝 더 가까이 붙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루 끝>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이유와 남자 주인공이 이곳에서 데이트를 합니다. 아이유의 사랑스러움과 부라노 섬의 알록달록한 풍경이 만나 아름다움은 배가 됩니다. 남자 주인공 얼굴은 나오지 않고 몸과 그림자만 나오거든요. 아이유 옆에 있는 남자 주인공 얼굴에 제 얼굴을 대입해서 부라노 섬을 걸었습니다. 빨강, 파랑, 노랑한 건물이 젤라토처럼 달콤했습니다.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에 젤라토를 빼놓을 순 없습니다. 부라노 섬에서 맛보는 젤라토에는 여유와 행복도 담겨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섬을 찾은 사람을 관찰했습니다. 맑은 날씨처럼 모두 환한 미소를 머금었고, 다채로운 건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파스텔 속을 걷고 온 사람들 눈에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저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한 하루였습니다. 부라노 섬에 배를 타고 들어오던 과정부터 시작해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했던 순간들. 그리고 마음 편하게 누릴 수 있었던 아름다운 경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습니다. 흘러가는 하루 끝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꼭 다시 찾고 싶은 그리움’을 남기고 떠나는 배에 올랐습니다. 부라노 섬의 아름다운 색채가 물든 추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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