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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May 08. 2023

이날만 기다렸다. 먹방의 나라 이탈리아 입성

피자, 리조토, 파스타 그리고 젤라토

 드디어 올 곳에 왔습니다. 먹방의 나라 이탈리아에 입성했습니다. 여행을 되돌아보니 배부르게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아, 와인이 있네요. 아무튼 이탈리아 밀라노에 도착하자마자 명소 탐방은 다 제쳐두고 가장 먼저 식당으로 갔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곧 명소 아닐까요?


 퇴사 후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유럽여행과 요리 배우기였습니다. 두 달 정도 양식을 배웠거든요. 까르보나라, 토마토 파스타 등 이젠 얼추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 양식 요리 입문자로서 본 고장의 맛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을 선택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어느 식당을 가도 평균은 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추천도 좋지만 새로운 곳을 개척하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온통 맛있는 냄새로 넘쳐났습니다. 사람들이 앉은 식탁엔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습니다. 맛있는 음식 옆에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허기가 더 깊어졌습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메뉴판을 집어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은 피자입니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먹는 진짜 ‘이탈리아 피자’를 즐기고 싶었습니다. 물론 피자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유럽 여행하는 동안 식성이 유럽화 됐습니다. 1인 1 메뉴를 기본 원칙으로 함께 여행한 친구들도 각자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고심 끝에 고른 피자는 치즈 피자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콰트로포르마지오 피자’입니다. 콰트로는 숫자 4를 의미하고요. 포르마지오는 치즈를 뜻합니다. 한 피자에서 네 가지 치즈를 맛볼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도 즐겨 찾는 피자입니다. 오리지널 이탈리아 피자와 한국 패치된 피자 맛을 비교하며 음미하기로 했습니다.

 치즈가 두툼하게 덮인 피자가 나왔습니다. 식당 의자에 놓인 방석만큼이나 푹신해 보였습니다. 피자 롤러로 자르고 접시에 담으려는데 치즈가 계속 늘어나서 몇 번이나 치즈를 끌어당겼습니다. 한 입 베어 물자 치즈가 입안 가득 들어왔습니다.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부드러움입니다. 짭조름한 치즈가 혀를 감싸며 입속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신선하고 촉촉하다는 표현을 치즈에 쓸 수 있다는 걸 이탈리아에 와서 느꼈습니다. 진정한 치즈 피자란 이런 건가 봅니다.


 도우는 바삭하고 구수한 데다가 부드러움까지 갖췄습니다. 쫀득한 치즈와 기막힌 케미를 뽐냈습니다. 침샘이 깜짝 놀라서 고장 날까 봐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피자에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을 뿌려 먹었습니다. 발사믹의 시큼함과 올리브 오일이 치즈와 만나면 어떤 맛일지 궁금했습니다. 지체 없이 따라 해 봤습니다. 옆 테이블 사람은 ‘맛잘알’이었습니다. 발사믹 식초의 산미와 특유의 달콤함, 올리브 오일의 풍미가 어우러져 풍부한 맛을 느꼈습니다. 이탈리아에 놀러 온 한국인이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을 한 보따리 사서 귀국하는지 십분 이해했습니다.

 역시 한국인은 쌀을 먹어야 합니다. 다른 메뉴는 ‘시푸드 리조토’입니다. 빨간 밥알이 한국의 김치볶음밥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한 숟가락 떠먹으니 한국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쌀과 어우러져 입안을 물들이는 토마토소스가 일품이었습니다. 요리 학원에서 토마토소스를 이용해 파스타를 만들어 봤었는데, 제가 알던 그 소스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상큼한 토마토향이 입안을 넘어 마음까지 퍼지는 듯했습니다.


 탱글탱글하면서 쫀득쫀득 살아있는 밥알은 제가 알고 있던 리조토를 깨부수었습니다. 죽처럼 눅눅해서 바스러졌던 제 요리와 달리 쫄깃한 식감을 가진 시푸드 리조토는 ‘음식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습니다. 홍합 껍데기에 밥과 해산물을 넣고 숟가락처럼 떠먹었습니다. 해산물의 신선함은 리조토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줬고요. 경이로운 식감과 조화롭게 어울려 맛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당장 주방으로 들어가 셰프님에게 리조토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맛과 식감 모두 완벽한 음식이었습니다.

 실수가 때론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습니다. 제 발음 문제인지, 직원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볼로네제 파스타’가 나왔습니다. 소스가 겹치지 않게 리조토는 토마토, 파스타는 크림을 선택하려 했거든요. 아쉬운 마음에 면 한 가닥을 집어 먹었습니다. 그 순간 아쉬움이 녹아버렸습니다. 요리 학원에서 토마토소스로 파스타를 여러 번 만들었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가장 자신 있는 메뉴였습니다. 볼로네제 파스타를 먹고 깨달았습니다. 함부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요.

 도대체 면에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다양한 식감이 들어있었습니다. 쫀득함이 느껴지며 탱글한 식감은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줬습니다. 소스가 면을 타고 내려와 혀 끝에 닿는 순간 토마토의 상큼함이 전해졌습니다. 납작하고 두꺼운 파스타를 빈틈없이 메운 토마토소스는 면과 조화를 이뤄 깔끔했습니다. 농도가 알맞아서 면과 따로 놀지 않고 서로 착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주문 실수도 잊은 채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었습니다.


 빈 접시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맛이 사라질까 봐 양치하기 싫다’ 맛, 식감, 향 등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식사였습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가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한식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유럽 여행하며 피자, 파스타가 질려서 한식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맛이 질릴 수가 있죠?

 더 먹고 싶다는 정신과 더 못 먹는다는 육체의 다툼에서 정신이 패했습니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젤라토’ 가게가 보였습니다. 식사 배와 디저트 배는 따로 있습니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고 정확하게 원하는 맛을 선택했습니다. 하긴 실수해도 괜찮은 곳. 이곳은 먹방의 나라 이탈리아입니다.


  쫀득하고 달콤한 젤라토를 먹으며 밀라노를 걸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해 기분이 좋았고요. 날씨도 맑아서 도시가 더 아름다웠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며 밀라노 감성에 빠져들었습니다. 발길 닿는 곳으로 걷다 도착한 곳은 밀라노의 랜드마크 ‘밀라노 대성당’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 앞 광장에 모여있었습니다. 그 못지않게 비둘기도 빼곡했습니다. 어림잡아 약 7천 마리가량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나자 비둘기 떼가 일제히 날아올랐습니다. 멋있다고 손뼉 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공포스러운 비둘기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후자였습니다.

 비둘기가 사라졌을 때 재빨리 성당 정문으로 달려갔습니다. 밀라노에 왔으면 대성당 앞에서 인증샷은 필수입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동안 누군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악수를 청하는 줄 알았는데 손에 담긴 걸 보니 새 모이였습니다. 냄새를 맡은 비둘기가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황급히 손을 숨기며 거절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비둘기가 이미 발밑으로 모여든 후였습니다. 사진도 찍는 둥 마는 둥 하고 비둘기 소굴을 탈출했습니다.

 비둘기 공습경보를 피해 숨은 곳은 이탈리아 스타벅스 1호점입니다. 커피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에 스타벅스라니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미국 시애틀, 중국 상하이 그리고 이탈리아 밀라노. 전 세계 세 군데밖에 없는 프리미엄 매장 ‘리저브 로스터리’입니다. 매장 안에는 로스팅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머신이 있었습니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레일에 담긴 원두가 로스팅 기계 안으로 쏟아졌고요. 볶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던 스타벅스 분위기와 사뭇 다른 이탈리아 스타벅스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유럽 여행의 마지막을 보낼 나라입니다. 국경에 들어서며 아쉬움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밀라노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과 이색적인 풍경은 여행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시크한 패션의 거리 느낌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먹자골목’ 모습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살이 5kg 이상 찔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크림 리조토와 오일 파스타를 먹어야겠습니다. 아, 와인도 살짝 곁들이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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