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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May 01. 2023

유럽여행 버킷리스트 '패러글라이딩'

생애 첫 패러글라이딩 도전

 기억이 안 나네요. 제가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러브샷을 했다고 합니다. 호텔 게스트룸에서 온갖 추태를 부렸나 봅니다. 분위기에 취한 줄 알았는데, 와인에 취했습니다. 아침 일찍 패러글라이딩 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술이 덜 깬 상태로 뛰면 덜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린 속과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호텔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같이 패러글라이딩을 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픽업 승합차는 12인승 정도였어요. 12명을 꽉 채웠습니다. 용감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저와 똑같았습니다.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인원 점검이 끝나자 승합차 문이 ‘쾅’ 하고 닫혔습니다. 그때 뒷좌석에 앉은 한국 친구가 탄식을 내뱉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덩달아 긴장되고 울고 싶어 졌습니다. 차창 밖으로 패러글라이딩 착륙 장소가 보였습니다. 부디 무사히 이곳에 내려앉길 기도했습니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승합차 안에서 간단한 OT가 진행되었습니다. 담당 파일럿 소개를 시작으로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 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여러 번 설명했습니다. 날아오를 때, 착륙할 때 뒤로 눕지 말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특히나 착륙할 때 앞사람이 누워버리면 뒤에 있는 파일럿이 앞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앞사람이 파일럿과 글라이더에 깔리게 되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죠. 눕지 않고 걸으면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쓰다듬었습니다.

 고불고불한 길을 한참 올라갔습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작아질 때마다 긴장감은 점점 커졌습니다. 숙소 옆 호텔이 보였습니다. 밑에서 봤을 땐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습니다. 산 중턱에서 보니 엄청 작아져있었습니다.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발걸음에 힘이 없었습니다. 조여 오는 긴장감 때문에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5분 정도 걸어가자 푸른 초원이 나타났고요. 그 위로 펼쳐진 글라이더가 보였습니다. 곧 날아오를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벌써 하늘을 날기 시작했습니다. 푸른 초원 끝에는 급경사가 있었습니다. 승합차에서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오간데 없고 거침없이 초원 끝으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잠시 후 기체가 솟구쳐 올랐고요. 발이 공중에 떴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떨렸습니다. 저는 바이킹도 못 타는 겁쟁이입니다. 과연 할 수 있을까요?


 담당 파일럿은 두려움에 떠는 저에게 “괜찮아, 괜찮아.”라며 위로했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헬멧과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눈보다 빠른 손을 가진 파일럿의 모습을 보고 조금이나마 안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에서 말했던 ‘눕지 말 것’을 또 한 번 알려주고 최종 장비를 결합했습니다. 비행 순서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 팀이 날아오르자 다른 팀도 연이어 비행했습니다. 마음의 준비할 겨를 도 없이 제 순서가 다가왔습니다. 두 발자국 앞으로 가란 파일럿의 말을 듣고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때 뒤에 달려있던 글라이더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기체는 인터라켄의 맑은 공기를 머금어 빵빵하게 부풀었습니다.

 “가자. 가자. Go. Go.”


 파일럿의 출발 신호에 초원 끝을 향해 걸었습니다. 세발자국 내디뎠을 때였습니다. 더 이상 땅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저를 위에서 쭉 당기는 느낌이 났습니다. 초원을 떠나 맑은 하늘로 나아갔습니다. 무사히 이륙에 성공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차로 올라왔던 길입니다. 고불고불 이어졌던 길은 골짜기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 같았습니다. 전날 와인을 마셨던 잔디밭도 보였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니 아름답고 평화로웠습니다. 저 멀리 눈 덮인 알프스 산맥도 보였습니다.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설산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올려다봤던 산이 제 발 보다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신비로웠습니다. 발을 뻗어 봉우리를 누르면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았습니다. 감탄을 자아냈던 툰호는 작은 호수가 됐습니다. 이대로 호수 위로 날아가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초록 대지 위에 펼쳐진 마을 모습은 동화에 나올 법한 풍경이었습니다.


 인터라켄에서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햇살이 눈부셨습니다. 비가 내리면 일정이 취소되거나 불안정한 상태로 비행을 한다고 했는데 맑고 맑은 날씨라 정말 행복했습니다. 챙겨 오지 못한 선글라스가 생각났습니다. 하긴, 이런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은 맨눈으로 봐야 합니다. 필터 없이 아름다운 장관을 눈에 담았습니다.

 놀이기구도 못 타고 높은 건물도 못 올라가는 제가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있었습니다. 발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주변을 가득 채운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무서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너무 신이 나서 손도 놓아보고 크게 소리도 질렀습니다. 텐션이 높아진 저를 본 파일럿은 조종 손잡이를 넘겨줬습니다. 아무리 재미있고 행복해도 글라이더를 조종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손잡이를 받아 들고 파일럿이 시키는 대로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였습니다. 갑자기 훅 떨어질까 봐 무서웠습니다. 다급히 손잡이를 파일럿에게 넘겨줬습니다.

 기체는 어느덧 주택과 가까워졌습니다. 파일럿은 비행하다 보면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끔 지붕에 착륙해서 함께 커피를 마신다고 했는데,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곧 비행이 끝난다며 제게 ‘빙글빙글’을 원하냐고 물었습니다. 전날 와인을 마시며 올려다본 하늘에서 좌우로 심하게 나부끼는 글라이더를 본 적 있습니다. 아마도 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손사래 치며 “Next Time”이라고 내뱉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건물도 커지고 잔디밭의 초록색도 선명해졌습니다. 착륙 지점엔 비행을 마친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두려움으로 시작한 패러글라이딩은 아름다움을 거쳐 아쉬움으로 끝나고 있었습니다. 착륙할 때가 다가오자 파일럿은 눕지 말라고 한 번 더 설명했습니다. 안전 수칙을 떠올리며 무사히 잔디밭에 발을 디뎠습니다. 사뿐하고 가벼웠습니다. 안전하게 비행을 끝낸 쾌감과 하늘에서 봤던 아름다운 풍경에 감격하여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너무나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한 번 더 타라고 하면 충분히 탈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승합차 뒷자리에서 울었던 친구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잔디밭에 주저앉아있었습니다. 친구 인생에서 패러글라이딩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합니다.

 비행하며 찍었던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얼굴엔 무서움이 살짝 있긴 하지만 행복함이 느껴졌습니다. 뜻깊은 비행을 선사해 준 담당 파일럿과 악수를 나눴습니다. 덕분에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추억이 생겼습니다. 고마움을 전하고 뜨거운 포옹을 한 뒤 패러글라이딩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땅에서 보이지 않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했습니다. 인터라켄 창공을 가로질렀던 아주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 못할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았고요.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몸이 하늘로 솟구치던 느낌, 발아래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은 여행의 풍미를 더해줬습니다. 벤치에 앉아 아직 가시지 않은 패러글라이딩 여운을 음미했습니다. 다음엔 꼭 ‘빙글빙글’에 도전하기로 다짐하고 헐거워진 신발끈을 고쳐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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