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방법, 곤돌라, 고산병 그리고 컵라면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갑니다. 세계 자연유산이자 알프스 산맥의 고봉 ‘융프라우’로 향합니다. 해발 4,158m 고산인 융프라우는 패러글라이딩으로 날아올랐던 높이와 차원이 다릅니다. 패러글라이딩은 높이와의 싸움이었다면 융프라우는 높이에 추위까지 견뎌야 합니다. 올라가기 전 숙소에 들려 패딩 한 장을 더 입고 장갑과 선글라스까지 챙겼습니다. 흰 눈에 햇빛이 반사되면 눈부시거든요. 선글라스도 필수 아이템입니다. 얼굴에 선스틱도 덧바르고, 출정 준비를 마쳤습니다.
‘융프라우’는 ‘처녀’라는 뜻입니다. 수줍은 처녀처럼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라고 해요. 구름과 안개에 덮여 풍경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3대가 덕을 쌓은 여행객에게만 아름다운 풍경을 허락한다고 합니다. 과연 저는 3대가 덕을 쌓았는지 이번 기회에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차 안은 융프라우로 가는 사람과 스키, 보드 등 설상 스포츠를 하러 가는 사람으로 나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스키를 즐기려면 스키장을 가야 합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장비를 가져와서 동네 뒷산인 알프스 산맥으로 향했습니다. 환경의 차이가 신기했습니다. 만년설을 가진 사람들의 취미는 남다릅니다.
20분쯤 지났을까요? 그린델발트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이 역에서 곤돌라로 환승합니다. 여행 떠나기 전 남산 케이블카를 처음 탔었는데 그것과 비교가 안됩니다. 아이거 익스프레스 곤돌라는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360도 서라운드뷰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죠.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기차는 종착역에 이르렀습니다. 고산병과 추위를 이겨내고 융프라우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저를 맞이한 건 천장부터 바닥까지 꽁꽁 얼어있는 얼음 동굴이었습니다. 사방을 둘러싼 얼음이 모형인 줄 알고 볼을 대봤더니 차가워서 깜짝 놀랐습니다. 생소한 풍경에 기분이 얼떨떨했습니다. 긴 터널 끝에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외부 전망대에서 본 융프라우 모습은 온통 하얀색이었습니다. 부산에 살아서 눈 덮인 산을 볼 기회가 많이 없습니다. 어딜 봐도 눈으로 가득한 풍경이 신기했습니다. 마치 A4용지에 떨어진 개미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흩날리는 눈을 손으로 잡으며 부산에서 만나 본 적 없는 못한 겨울왕국을 즐겼습니다.
아쉽게도 구름과 안개가 많이 껴서 융프라우의 절경을 온전히 담지는 못했습니다. 3대가 덕을 쌓지 못했나 봅니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폭설이 쏟아지면 전망대를 폐쇄한다던데, 그 정도가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플라토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포토존 앞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등산객이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눈발도 전망대에 있을 때보다 굵어졌고요. 바람도 불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볼에 내려앉는 눈의 감촉이 부드러웠습니다. 밟을 때마다 뽀드득 거리는 눈을 밟으며 이곳저곳에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눈을 한주먹 집어 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손 시린 것도 잊은 채 눈밭을 걸으며 융프라우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감상했습니다.
행복한 추억을 남기고 실내로 들어왔습니다. 그제야 손이 시렸습니다. 신발은 눈에 젖어 발도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이럴 땐 뜨끈한 국물로 얼어붙은 몸을 녹여야죠. 융프라우에서 한국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쿠폰으로 발권받은 티켓을 제시하면 컵라면을 무료로 줍니다. 해발 4,158m에서 만난 라면은 정말 반가웠습니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에서 먹는 라면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지요.
알프스 산맥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융프라우도 아쉬운지 거센 눈발을 흘렸습니다. ‘다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겨 행복했습니다. 온전히 자연에 파묻혀 보낸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내려가는 곤돌라에 앉아 뒤를 돌아봤습니다. 멀어져가는 설산 위로 햇빛이 드러났습니다. ‘꼭 다시 보자’는 융프라우의 미소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기억을 선사한 융프라우에 감사를 전하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