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차 직원들이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 같지 않은 의견을 낼 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몇몇 직원은 자신감과 건방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행동합니다.
얼마 전, 8년간 다닌 회사를 떠나 신생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새로 자리 잡은 회사는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수평적인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직급 없이 서로를 영어 이름이나 ‘~님’으로 부르며 자유롭게 소통합니다.
이전 회사는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사규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선배들에게 '다','까'를 써야 하는 딱딱한 문화가 있었고,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직급이 세세히 나뉜 전형적인 수직적 조직이었습니다.
수직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회사로 옮기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지시받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직원들의 연령대도 훨씬 젊어 활기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최근 불편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한 후배의 태도가 거슬렸기 때문입니다. 입사한 지 3개월 된 후배가 프로젝트 중 의견을 냈는데, 그 내용이 정말 터무니없어 보였습니다. 신입 시절 제가 저질렀던 실수를 떠올리게 하는 제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저희 분야와 맞지 않아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견은 좋지만 범위를 벗어난...”
그러나 제 말을 끝내기도 전에 후배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뇨, 해보는 게 어떨까요? 제가 이전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해본 적이 있어요.”
워낙 수직적인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탓인지,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고 낯설었습니다. 이전 회사였다면 이런 반응은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감히 선배의 말을 자르다니요? 터무니없는 의견도 문제였지만, 후배의 태도가 더 어이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는 후배를 그저 바라봤습니다. 예전 회사였다면 “야, 조용히 좀 해!” 같은 말이 어디선가 날아왔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고, 모두 묵묵히 그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결과가 궁금하시죠? 후배는 결국 자신의 주장대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상황은 심각해졌습니다. 후배는 투입된 비용 3분의 2를 날려버렸고, 메신저로 저에게 물었습니다.
“비용을 더 투입해야 할까요? 기간은 많이 남았는데 반응이 없어서요.”
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를 꾹꾹 눌렀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희와 맞지 않는 의견이라고요.”
더 해줄 말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후배 실수로 발생한 손실은 고스란히 팀 실적으로 잡혔습니다. 그 결과, 분기 결산 때 전 직원 앞에서 저희 팀의 하락한 실적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한때 에어팟 논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업무 시간에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것을 두고 찬반이 나뉘었죠. 저는 단언컨대, 누군가 에어팟을 꽂든 에어팟 맥스로 귀를 틀어막든 상관없습니다. 본인 자리를 PC방으로 세팅해도 업무 효율만 낸다면 어떤 장비를 쓰든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겪어보니 상황은 달랐습니다. 뒷자리 동료를 불렀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일어나 옆으로 가보니 그는 에어팟을 끼고 있었습니다. ‘집중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돌아서려던 순간, 그의 모니터 화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신사에서 옷을 고르고 있더군요.
제 자리로 돌아와 그 직원에게 요청 사항을 메신저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5분, 10분이 지나도 메시지를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상황은 더 황당해졌습니다. 그의 메신저 상태가 ‘방해 금지’로 설정돼 있었던 겁니다. 솔직히 말해, 그 순간 저는 정말 화가 났습니다. 에어팟을 끼고 있으면 메신저라도 보거나, 아니면 귀라도 열어둬야 하는 게 아닐까요? 옛날 회사였다면, 당장 컴퓨터 코드를 뽑아버렸을 겁니다.
네, 아마도 저는 ‘꼰대’ 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그냥 넘어가는 게 맞나요? 그렇다면 저는 기꺼이 ‘꼰대 할아버지’가 되겠습니다. 이게 정말 수평적인 회사의 분위기인가요?
수평적인 분위기. 마냥 좋을 줄 알았습니다. 이전 회사는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할 만큼 무섭고 딱딱한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수평적인 회사가 저와 맞지 않는다는 걸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 솔직히, 8년 차면 적은 경력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1~2년 차 직원들이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 같지 않은 의견을 낼 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몇몇 직원은 자신감과 건방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행동합니다.
이런 상황을 겪을 때마다 예전 직장이 떠오릅니다. 물론 저도 상사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 했지만, 적어도 후배들이 선배에게 들이박는 일은 없었습니다. 회사라는 곳에서는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입일 때는 수평적인 회사가 부러웠는데 연차가 생기니 수직적인 회사에서 지내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을 보며, 저는 이렇게 점점 ‘꼰대’가 되어 갑니다.
*이 글에 나오는 회사, 직책, 업무 등은 사연 내용을 재구성하여 만들었습니다.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