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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Feb 13. 2020

보톡스 시술 후 달라진 것

생애 첫 성형외과 방문기

어금니를 꽉 깨무는 버릇이 있다. 짜증 나거나 열이 오를 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한 번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깨물었는데, 어금니가 으스러졌다. 그동안 압력에 시달린 이가 수명을 다한 것이었다. 덕분에 금을 씌워야 했다.

돈 많이 들어가는 버릇은 부계 쪽에서 받은 ‘유전’이다. 어머니 잔소리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묵묵히 참아냈다. 내 성적표를 보셨을 땐 어금니를 몇 초 정도 깨무시곤 내 어금니를 부술 정도로 한 바탕하셨다.


턱 근육도 근육이라 점점 커졌다. 내 턱선을 본 이모는 ‘턱 보톡스’를 추천했다. 시술은 수술이 아니다’라는 신조로 성형외과를 찾는 이모는 나를 성형외과로 인도했다.


생애 처음 방문한 성형외과는 일반 병원과 큰 차이 없었다. 창구에서 접수를 하고 간단하게 시술 부위를 검사했다. 검사를 끝내고 푹신한 소파에 앉는 순간, 너무나도 떨렸다. 치과의 세 배 정도 떨림이었다. 이윽고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로 향하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진료실 구석에 있는 보톡스 병.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진료실 안에는 반쯤 누울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구석에 놓인 보톡스 병을 보니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의자에 앉는 순간, 선생님은 내게 “꽉 물어보세요”라고 했다. 불룩 튀어나온 턱을 매만지고는 예고 없이 주사 바늘을 찔렀다.

놀랄 틈도 없었다. 오른쪽 턱에 주사 세 방이 들어왔다. 오른쪽이 끝나기가 무섭게 왼쪽을 공략했다. 선생님은 거침없었다. 한 방, 두 방 세 방. 10초도 안 걸렸다. 내 생에 첫 보톡스 시술은 30초를 채 넘기지 않았다.


멍하게 창구로 걸어갔다. 턱이 얼얼했다. 선생님은 시술 후 하면 안 되는 걸 설명해줬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턱 근육이 두꺼워 보톡스를 많이 투여했다고 했다. 결제 금액은 5만 5천 원이었다. 현금을 내면 깎아주냐고 물어봤다. 선생님은 그런 건 없다고 했다.

화내지 말자. 돈과 바늘을 떠올리며 심호흡 하나 둘... 후 후

시술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턱 선뿐만 아니다. 이를 꽉 깨물던 버릇이 줄어들었다. 열심히 작업한 엑셀 파일이 날아가 버린 적이 있다. 평소 같으면 버릇이 나왔을 텐데, 심호흡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렸다. 머릿속에서 ‘5만 5천 원’과 ‘보톡스 주사 바늘’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달라진 턱선보다 달라진 행동이 뿌듯하다. 역시 돈이 좋긴 좋은가 보다. 돈으로 버릇까지 고쳐버렸다. 그러고 보니 6개월마다 병원을 찾으라고 했는데, 언제 방문해야 하는지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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