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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Aug 17. 2020

직장인의 부업

- 나의 부업 도전기

대화 주제가 달라졌다. 20대엔 주된 내용이 ‘이성’이었다. 누구와 사귀고, 내 스타일 여성과 잘 되고 싶다는 등 연애 관련 대화였다. 30대가 되면서 주식, 부동산, 재테크 같은 ‘돈’이 화두가 됐다. 근로소득으로는 답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차를 사더라도 유지하기에 버겁고, 집은 꿈도 못 꾸는 시대다. 4차 산업혁명으로 AI, 블록체인,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고 있지만 부를 증식하는 방법은 아직도 부동산 투자(혹은 투기)가 가장 핫하다. 그마저도 대출 끼고 구입할 형편이 안 된다. 주택청약은 로또 당첨만큼 어렵기만 하다.

주변에서 주식을 권유한다. 아쉽게도 난 태생적으로 간이 작다. 내 돈이 실시간으로 오르락 내리락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소액 단타로 치고 빠지면 된다고 하는데, 일하는 도중 틈틈이 그래프를 챙겨보기 어렵다. 특히나 팀장과 가까운 자리에 있는 나로서는 ‘단타’ 노리다가 ‘강타’로 맞을 수 있다. 슬픈 결론이지만 근로소득을 더 올리는 것 외엔 답이 없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업무 외 시간에 ‘부업’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부업을 해야 할까? 


“생활스포츠 지도자 2급, 라이프가드 자격증 있잖아. 수영강사 어때?”


취미가 수영이라 주변에 ‘물쟁이’들이 넘실거린다. 친구 한 명은 새벽반 수영 강사를 부업으로 하고 있다. 6시, 7시 수업을 한 뒤 본업 일터로 출근한다. 9시까지 출근이라 수업 마치고 가도 늦지 않는다. 매일 두 시간씩 부업으로 일 한 뒤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 기준 70만 원이 조금 넘는다. 본업 월급과 부업 월급을 더하면 지갑이 제법 두둑하다. 친구도 나와 똑같이 수영 지도자,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곧 30대 중반을 맞이한다. 그간 회사 생활에 너무 찌들었다. 쌩쌩하던 20대 때와 완전 다른 상태가 되었다. 숙취도 길어지고, 운동 후 회복도 더디다. 근육통을 넘어서 뼈마디가 쑤신다. 예전 같지 않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 수영강사는 내가 해볼 만한 부업이다.


부업을 하기 위해서 먼저 생활 패턴을 바꾸기로 다짐했다. 저녁 8시 수영을 새벽 6시로 바꿨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돈을 벌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하면 몸에 익을 거라 생각했다. 그 후 인근 수영장에서 강사로 근무할 계획이었다. 알람을 5시 30분에 맞추고 잠을 청했다. 잠깐 눈을 감았는데 알람이 울렸다. 잘못 맞춘 건가 했지만 정확히 ‘오전 5시 30분’이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옷만 입고 터덜터덜 수영장으로 향했다. 첫날을 포함해서 한 달 동안 새벽 수영을 다섯 번 갔다. 새벽반 수강생들은 나를 ‘수영장 기부천사’라고 불렀다.

나는 태생적으로 간은 작고 아침잠은 많다. 친구들과 여행 가서 가장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항상 나였다. 친구들이 다 씻을 때까지 누워 있다가 맨 마지막에 화장실로 기어갔다. 퇴실 시간을 꽉 채우는 이유는 나의 잠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수영’을 하러 간다고 해서 달라지겠나? 5분 더 누워있으려다 수업 끝난 시간에 눈뜨는 날이 허다했다. 평소 7시 40분에 일어나는 것도 겨우 눈 뜨는데 5시 30분이 가당키나 했을까.


‘해장 수영’이란 말이 있다. 술 먹은 다음날 수영으로 숙취를 깨는 방법(음주 후 수영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아침반 수업에서 이렇게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옆에서 풍겨오는 술 냄새를 맡으면 소주잔에서 수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섯 번 간 날 중 하루였다. 나도 전날 과도한 음주를 했다. 무슨 정신력인지 이른 새벽 수영장으로 향했다. 분명 술이 덜 깨서 그런 것이다. 접영 집중 주였는데, 꿀렁꿀렁 웨이브를 연습했다. 숙취로 머리가 빙빙 돌았고 몸까지 울렁거렸다. 옆 레인에서 밀려오는 물살도 거들었다. 순간 속이 뒤집혔다.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급박한 순간이었지만 수영장 물을 오염시키지 않았다. 난 진정한 수영인이었다. 그날이 새벽 수영 마지막 날이 됐다.

저녁 약속 다음 날은 새벽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술까지 마신 날엔 출근하기도 버거웠다. 아침잠과 숙취는 나에게 디폴트 값이다. 그러니 수영강사 부업은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새 도랑 낼 생각 말고 옛 도랑 메우지 말라’는 말처럼 70만 원 더 벌려다가 본업 망치고 생활 리듬이 어긋날 수 있었다. ‘부업’이란 창대한 꿈을 꾸며 시작했지만, 꿈나라가 더 좋다는 결론을 맞이했다. 


돈을 더 벌면 좋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70만 원은 큰돈이다. 하지만 난 지금이 좋다. 7시 40분까지 늘어지게 잘 수 있고, 퇴근 후 수영도 하고 때론 친구들과 거나하게 술에 취한다. 부수입이냐, 지금의 생활이냐 묻는다면 사실 고민은 조금 될 것 같다. 요즘 사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대답은 ‘지금의 생활’이라 하겠다. 70만 원 보다 ‘오늘’이 더 값지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통장 잔고가 줄어든 기분이다. 어쩌겠나 못 버는 만큼 덜 쓰면 된다. 인 풋이 적으면 아웃 풋도 그만큼 줄여나가야지. 


편하게 놀 수 있는 오늘 저녁과, 푹 잘 수 있는 내일 아침을 생각하며 ‘부업’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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