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차를 바꿨다. 저 정도 직급이면 일 년에 차를 두어 번 바꿔도 무리가 없나 보다. 이전에 타던 차는 ‘성공’의 상징으로 불리는 세단이었다. 옵션도 짱짱하고 국산차 중에서도 손꼽히는 비싼 차였다. 이번에 바꾼 차는 그보다 급이 높은 차로 ‘쟤네 실수’라고 불리는 사장님 차다. 바꾼 이유가 궁금했지만 참았다. 괜히 물어봤다가 일만 시킬 것 같아서였다.
아들을 태우러 학원에 간 팀장은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학원을 걸어 나오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자 아들 옆에 있던 친구가 크게 소리친다. “너희 아빠 차 저거야? 우리 아빠는 제네시스 G80인데” 팀장 아들은 황급히 달려와 숨듯이 차에 탔다. 시무룩한 아들을 보자 마음이 쓰라렸다고 한다. 놀라운 건 아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아들 친구는 어떤 차가 더 비싸고 좋은지 알고 있었다. 꿈이 ‘자동차 딜러’라면 그 친구의 부모는 조기교육에 성공했다.
어린 시절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비교하는 쪽이 아닌 당하는 부류였다. 우리 아버지 차는 조그마한 국산차였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라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때 처음 차가 생겼다. 아버지 지인 분이 중고차 딜러였는데, 그분을 통해 흰색 소형 중고차를 저렴하게 구매했다. 차는 스틱 기어였다. 아버지는 기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불편함을 감수하셨다. 우리 가족은 그 차를 타고 남해, 울진, 포항 등 곳곳을 누볐다.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클러치와 엑셀을 오갔을 아버지 발을 생각하니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흰색 소형차가 학원 앞에 찾아온 적이 있다. 낯익은 번호판을 단 차가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까지 이어진 수업에 지친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차로 달려갔다. 뒷좌석 문을 열고 안기듯 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며칠 뒤 친구 몇 명이 다가왔다. “저번에 그 차 너희 아빠 차야?”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친구들은 히히덕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그날 내가 봤던 친구 웃음과 팀장 아들이 들었던 친구 말속엔 공통된 감정이 담겨있다. 바로 ‘무시’였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부모의 죄가 곧 자식의 죄”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젠 죄뿐만 아니라 ‘부모의 차가 곧 자식의 차’인가 보다. 돈 한 푼 벌어보지 못 한 어린아이가 돈 잘 버는 아빠 덕분에 기세 등등한 건 나 때도 그랬는데 요즘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팀장 일화를 들으니 옛 생각이 났다. 20년도 더 지났지만 그때 친구들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혹시 자동차 딜러가 됐을까? 궁금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아빠가 될까? 자식의 폼나는 하차감을 위해 좋은 차 타는 아빠가 되어야 하나? 지금부터 ‘부자 아빠 되는 방법’이 담긴 도서를 섭렵해야 하는데, 머리가 벌써 지끈거린다. “미안하다. 미래의 내 자식들아. 아빤 틀린 것 같구나” 좋은 차는 어렵겠지만 확신하는 건 있다. 광고 카피처럼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알려줄 것이다. 무쇠 솥이 검다고 밥까지 검은 것은 아니다. 작은 타를 탄다고, 낡은 곳에 산다고 무시하지 않도록 바르게 인도해야겠다.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혜안을 갖춘 자식으로 키우기 위해 나부터 그렇게 살아야지. 부모의 모습이 곧 자식의 모습이니까. 아, 그전에 결혼부터 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