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소장 Dec 27. 2020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

 “절대 공개 안 할 거예요. 당연하죠. 왜냐면 다들 그렇게 쓰니까요. 같이 쓰는 우물에 침 못 뱉는 거죠.”


 생색내는 걸 좋아하는 부장이 있었다. 그가 밥을 사주면 세 번 인사를 해야 했다. 첫 번째는 식당 앞에서다. 두 번째는 사무실에 들어와서다. 이때 중요한 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해야 한다. 마지막은 퇴근할 때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부장님 그리고 오늘 점심 잘 먹었습니다.”


 부장이 밥 사준다고 했다. 내 돈 내고 편하게 먹고 싶었지만, 코스 요리를 먹는다는 말에 따라갔다. 보양식을 먹식당 앞에서 감사 인사를 했다.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자 부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순간 부장 손에 들려있는 카드에 눈길이 갔다. 회사 법인 카드였다. '업무 추진비'로 밥을 사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자기 돈으로 사준 게 아니라 회사 돈으로 사준 거 아닌가? 왜 우린 감사해야 하는지, 왜 부장은 생색 내는지 이해 가지 않았다. 내 말을 듣던 G가 웃었다.


 “그게 어디예요? 우리 팀장은 법인카드로 거의 안 사줘요. 이상한 건 밥 한 끼 안 사주는 팀장의 법인카드 한도가 월말만 되면 다 차요.”


 G는 소속 팀의 막내다. 그는 매월 말 법인카드 영수증을 정리하여 총무팀에 전달한다. 미리 주면 일이 수월할 텐데 팀장은 말일쯤 G에게 영수증 뭉치를 던져준다. 꼬깃하게 접힌 법인카드 영수증을 일일이 다 확인하여 사용 내역을 분류한다. 처음 일을 맡았을 땐 처리하기 바빴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금요일에 주유소에서 기름 7만 원을 넣었어요. 다음 주 월요일에 또 5만 원을 채웠고요. 주말에 출장 일정도 없어요. 쉬는 날에 영업 나가는 사람도 아니거든요. 팀장 차가 화물차도 아닌데 7만 원이면 웬만한 중형차 가득 채울 금액이잖아요. 그런데 월요일에 또 기름을 넣었다? 뻔하죠. 주말에 가족들이랑 어디 멀리 갔다 온 거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법인카드로 자기 차 기름을 넣는 거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는 사원 G는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준비 못 한 날엔 회사 근처 식당에서 사 먹는다. 7천 원짜리 김치찌개를 즐겨 먹는 G는 가끔 밥이 부족할 때가 있다. 공깃밥을 추가하면 천 원을 더 내야 하는데 그것마저 부담스러워 기본 반찬으로 부족한 배를 채운다. 그러나 G보다 몇 배나 더 버는 팀장은 점심 값을 법인카드로 결제한다. 월말이 되면 영수증은 G의 책상에 올려진다. 사용 내역은 ‘업무추진비’다.


 “팀장만 유난히 그런 거 아닐까요? 다른 부서는 어때요?”


 G의 입에서 다른 부서는 이런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다.

 “막내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똑같더라고요. 아, 웃긴 이야기도 들었어요. A팀장, B팀장이 같이 술을 마셨나 봐요. A팀장 법인카드로 결제하려 했는데 한도가 부족한 거예요. 쓸 수 있는 만큼만 A팀장이 결제하고 나머지는 B팀장 법인카드로 긁은 거죠. 그 영수증을 A팀장은 영업비, B팀장은 회식비로 정리했어요. 나중에 총무팀 과장한테 걸렸대요. A팀장이 영업을 했다는데 같이 있었던 사람은 B팀장이고, B팀장은 A팀장과 회식한 걸로 나왔으니까요. 결제한 식당도 같은 곳이고, 결제 시간도 13초 차이가 났어요. 총무팀 과장이 팀장들한테 소리 지르니까 팀장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고 하네요.”


 “모를 줄 알았을까요? 거짓말하려면 손발이라도 잘 맞추지 답답하고 갑갑한 사람들”


 그 외에도 많았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곳에서 사용한 사람도 있었다. 부끄러워 말하지 않겠다. 몇몇 사람들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했다. 다들 알고 있지만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회사 건의사항에 법인카드 사용을 꼬집는 글이 나왔다. 내용은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영업비가 정말 영업비로 쓰이는지, 업무추진비가 정말 업무를 추진하기 위한 곳에 쓰이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회사 돈이 개인적으로 착복되는 건 아닌지 투명하게 운영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당돌한 내용이네요. 어떻게 했나요?”


 “다른 설문은 모두 자세한 답변이 달렸어요. 법인카드 내역의 경우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게 끝이었어요. 절대 공개 안 할 거예요. 당연하죠. 왜냐면 다들 그렇게 쓰니까요. 같이 쓰는 우물에 침 못 뱉는 거죠.”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사람의 결합이나 특정한 재산에 대하여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법률관계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한 것’ 법인의 사전적 정의다. 사람의 ‘결합’이며 ‘법률’ 관계로 보장받고 있다. ‘법인’의 이름을 달고 있는 카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결합과 법률관계로 이루어진 ‘법인’에서 만든 엄연한 회사 돈이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라, 내가 팀장이니까, 회사 오래 다녔으니까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내용은 어떤 해석법을 들이밀어도 찾아낼 수 없다. 다 같이 번 돈을 자신에게만 쓰는 짓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몰랐을 리 없다. 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고 긁어댔다. 그것도 영악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말이다.


 G의 사연을 듣고 오랜만에 언성을 높여 이야기했다. 분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G의 말을 듣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악습을 끊고 싶어요. 쪽팔리고 역겹잖아요. 자기 돈도 아니면서요. 그런데요… 저도 저 자리에 가면 렇게 할 거예요. 법인카드로 점심 사 먹고, 친한 사람들이랑 술 먹을래요. 다들 그래 왔잖아요. 아직도 그러고 있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