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타서 인사하고 그대로 잠을 잤어요. 몇 번은 이해하죠. 출근이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젠 너무 당연하게 잠을 자더라고요. 이어폰을 꽂고 팔짱 낀 채로요. 내가 이 사람의 기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H의 출근길은 험난했다. 현관을 나선 그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간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도착해 지하철로 갈아탄다. 환승역에 도착하면 다른 호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지하철을 가득 채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갈 때면 사람들 옷에 얼굴이 쓸릴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마을버스를 타면 고된 출근길이 끝난다. 결국 H는 편한 출근을 위해 차를 뽑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몰랐어요. 운전하니까 더 힘들어요. 도로에 쏟아져 나온 차를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해요. 10분이면 주파하는 길인데 출근 시간에는 30분 넘게 걸려요. 갑자기 튀어나오는 오토바이와 손님을 발견하면 무작정 멈춰서는 택시를 이겨내고 회사에 도착하면 온 몸에 진이 빠져요. 운전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일하기도 전에 지친 상태예요. 그래도 대중교통보다 좋아요. 저만의 애마가 생겼잖아요.”
출퇴근이 편해진 H는 사내 시행 중인 ‘카풀 제도’를 신청했다. 유류비, 교통비와 약간의 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차를 타게 된 사람은 타 부서 동료였다. 동료는 성격도 좋고 이야기도 잘 통했다. 약속시간에 늦지도 않고 미리 나와 있었다. 하지만 며칠 뒤 동료의 행동으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겼다.
“차에 타서 인사하고그대로 잠을 잤어요. 몇 번은 이해하죠. 출근이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젠 너무 당연하게 잠을 자더라고요. 이어폰을 꽂고 팔짱 낀 채로요. 내가 이 사람의 기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H는 고민했다. 괜히 동료에게 불편한 마음을 표현해서 앞으로의 출근길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운전하는데 조수석에서 노래 들으며 자는 동료의 모습은 계속 봐줄 수 없었다. 그는 사내 메신저로 동료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했어요. 나도 피곤한데, 옆에서 자고 있으면 나까지 잠온다고요. 내가 기사도 아니고 타자마자 눈을 붙이는 게 불쾌했다고 덧붙였죠. 혹시나 졸리거나 피곤하면 잔다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다고요.”
“동료한테 시원하게 털어놓았네요. 뭐라고 하던가요?”
장문의 메시지를 받은 직장동료 반응이 궁금했다. 동료는 한참 뜸 들인 뒤 H에게 메신저 쪽지를 보냈다.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는 같이 카풀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H는 그런 뜻은 아니라고 답장을 했지만 동료는 곧 이사할 예정이라 어차피 그만해야 했다고 답했다.
“마음이 찜찜했어요. 동료의 집이 그리 멀지 않아서 카풀하는데 번거로움도 없고요. 출퇴근할 때 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많이 웃었는데 조금 미안했어요. 괜히 말했나 싶기도 하고요. 차 있다고 유세 부리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됐어요.”
“그래도 운전하는데 옆에서 이어폰 꽂고 자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기본적인 매너가 없는 거 아닐까요?”
자책하는 H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가 H였어도 감정을 표현했을 것 같다. 혼자가 된 H는 라디오도 듣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그룹 신곡을 따라 부르며 출퇴근 길을 즐겼다. 며칠 뒤 동료의 소식이 전해졌다. 조수석에서는 떠났지만 회사에는 남아있었다.
“제가 보낸 메시지가 많이 화났나 봐요. 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어요. 제가 그 사람보다 입사가 3개월 빠르거든요. 고작 3개월 차이 나면서 제가 선배 대접받으려 한다고요.”
“선배건 후배건 옆에서 노래 들으며 자고 있으면 불쾌하지 않나요? 동료가 문제의 논점을 잘 못 잡았네요.”
졸지에 후배 잡는 ‘꼰대’가 됐다. H는 답답했다. 조수석에서 자고 있던 동료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시 한번 그날의 감정이 떠올라 화가 솟구쳤다. 자신의 행동이 잘 못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사가 옆에서 자고 있었더라도 H는 똑같이 메시지를 보냈을 거라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고작' 3개월 선배가 아니라 3년 선배였으면 그랬을까요? 3개월이든 3년이든 하다못해 후배더라도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나쁜 거 아닌가요? 운전하는데 조수석에서 이어폰 꽂고 잠을 자다뇨.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요."
이야기를 나누던 H는 그간 일들이 복잡했는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결국 H는 카풀 신청을 취소했다. 동료 간 친목이건 지원금이건 다 필요 없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하게 혼자 다니는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