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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Dec 21. 2020

경영진 빽으로 입사한 사람

 “사람들이 저를 이사가 심어놓은 앞잡이라고 수군거렸죠. 이사님 라인이래요. 술자리에서 거하게 취한 선배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난 토익, 대외활동까지 하며 여기 들어왔는데 넌 인맥으로 들어왔다고요.”


 취업 비결은 ‘인맥’이었다. 혹독한 취준생 시절을 보낸 F는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F의 부탁은 일할 곳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이모는 지역에서 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실력자였다. 불과 몇 시간 뒤 중소 건설사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는 홍보회사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잠깐 망설인 F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절박한 심정이었죠. 나이는 먹어가는데 번듯한 직장이 없으니까요. 빨리 취업한 친구들은 벌써 승진을 앞두고 있었어요. 그에 비해 전 아직 월급도 받아 본 적 없고요.”


 보통의 취업은 채용공고, 자소서 작성, 서류 지원, 면접 등을 거친다. F는 과정을 생략하고 회사 이사와 마주 앉았다. 지원동기, 맡은 업무에서 보여줄 역량 같은 상투적인 면접 질문도 없었다. F와 이모의 관계를 몇 가지 물어본 이사는 다음 주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했다. F는 그러겠다고 말한 뒤 회사를 나섰다.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이요? 어떻게 바로 결정할 수가 있죠?”


 인맥의 힘은 경이로웠다. 그녀는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성급한 결정이었죠. 그땐 몰랐으니까요. 앞으로 회사에서 벌어질 일들을요.”


 회사 사람들은 F를 반기지 않았다. 당연했다. 박봉과 더불어 무자비한 야근이 넘치는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자소서를 쓰고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을 거쳤다. 이사 빽으로 들어온 F가 달가울 리 없었다. 팀원들은 그녀를 멀리했다.


 “사람들이 저를 이사가 심어놓은 앞잡이라고 수군거렸죠. 이사님 라인이래요. 술자리에서 거하게 취한 선배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난 토익, 대외활동까지 하며 여기 들어왔는데 넌 인맥으로 들어왔다고요.”


 “회사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았네요.”


 “처음엔 힘들었어요. 같이 일하고 밤샘하며 부대끼다 보니 사람들 틈에 녹아들 수 있었어요. 사실 가까워진 계기는 같이 회사 욕하면서부터 예요. 경영진들이 좋은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F가 인맥으로 들어간 기업 리뷰를 보았다. 경영진 칭찬이 가장 많았다. 별점도 만점에 가까웠다. 나는 F에게 내용을 보여주며 의외라고 말했다. F는 코웃음 치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이사 딸이 쓴 거예요. 엄마랑 아빠, 동생 아이디까지 만들어서 작업한 글이죠. 아, 제가 이사 딸의 기숙사로 이불도 보내고 벨트도 보냈어요.”


 “지원할 때 채용 후기 참고 많이 하던데 믿으면 안 되겠네요. 기숙사로 이불을 보냈다고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요?”


 자세를 가다듬은 F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일하는 중이었는데 이사 전화가 왔어요. 빨리 주차장으로 내려오라고요. 다급한 목소리였죠. 손수레를 끌고 내려가 보니 큰 박스가 있었어요. 딸 이불을 대학 기숙사로 보내야 한대요. 저보고 하라고 했어요. 결제는 법인카드로 하라더군요.”

 “개인적인 일이네요. 집안일을 직원에게 시키다니, 직원을 가족같이 생각하나 봐요.”


 나의 실없는 농담에 피식 웃은 F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거 말고 더 있어요. 택배 반품, 빵 심부름까지요. 퇴근 후에는 사진기사 노릇도 했답니다. 이사가 봉사단체 회장인데 봉사 활동하는 사진을 찍어줬어요. 선배의 말처럼 제가 인맥으로 들어와서 막대하는 것 같았어요.”


 동료들의 싸늘한 시선, 이사의 개인적인 심부름에 마음이 상한 F는 자신이 회사에 들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남들처럼 자소서를 쓰고 2차 면접까지 뚫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 그녀는 한동안 수심에 잠겼다. 역시나 이사는 개인적인 일을 F에게 시켰다. F는 이번엔 달랐다. 이사에게 정중히 말했다.


 “이사님, 죄송하지만 개인적인 일을 지시하시는 게 조금 불편합니다. 업무가 많아서 자리 비우기도 어렵고요.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다음부터는 안 부르셨으면 좋겠습니다.”


 F의 말을 들은 이사는 그 자리에서 노발대발했다. 이사는 자신이 뽑은 F에게 붉어진 얼굴로 쏘아댔다.


 “F 씨 이게 왜 개인적인 일이야? 우리 봉사단체 사람들한테 보내는 거야. 이 분들이 나중에 우리 클라이언트가 될 수도 있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 따위 소리를 해? 나 아니었으면 아직도 백수였을 거잖아. F 씨 이모 얼굴 봐서 이 정도로 하는 거야. 다른 직원이었으면 이대로 안 끝났어”


 그날 F는 자신이 입사한 방법을 반성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만두기 전 팀원들에게 일일이 찾아갔다. 공정치 못한 방법으로 입사한 자신으로 인해 박탈감을 느꼈을 팀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F는 회사를 나서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힘으로 취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려니까 겁이 났죠. 무서웠고요.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제 힘으로 당당히 취업에 성공했답니다. 이사 밑에서 일했던 경력은 이력서에 쓰지도 않았어요. 부끄러웠던 기억이라서요. 물론 지금 다닌 회사도 힘들고 고된 일이 많아요. 그런데 인맥으로 들어갔을 때 보다 훨씬 좋고 당당해요.”


  빽으로 입사한 F의 회사생활은 엉망이었다. 직원들은 그녀를 밀어냈고, 경영진은 개인적인 심부름과 폭언을 하며 그녀를 막대했다. 남의 힘으로 들어온 사람의 말로는 결국 '비극'이었다. 다행히 F는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곳에서 자신이 만든 길을 가고 있다. 긴 이야기를 한 F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저처럼 입사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말리고 싶어요. 취업이 너무 어려운 건 맞아요. 그렇다고 반칙을 써서 입사하면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 더 많이 생겨요. 자명한 사실을 말하자면... 회사는 반칙으로 입사를 하던, 자기 힘으로 입사를 하던 고되고 힘들어요. 떳떳하고 당당하게 힘든 게 났지 않을까요? 저와 같은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부끄럽지만 저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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