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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Dec 16. 2020

사내 커플이 회사를 떠난 이유

"마음이 가는 건 막을 수 없더라고요. 가는 것보다 막는 게 훨씬 힘들거든요. 마음껏 사랑하세요. 그리고 절대! 절대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세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두 가지는 뭘까? 나는 일과 사랑이라 생각한다. 내가 겪어본 것 중 가장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둘을 동시에 잡은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 같다. 그렇다면 일하는 곳에서 사랑을 잡으면 어떨까?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한때 회사 동기였지만 연인으로 발전한 D와 E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업무가 연관된 부서였어요. 저는 디자인, 여자 친구인 E는 마케팅이요. 디자인 수정사항이 생기면 제 옆자리에 앉아서 오타 확인도 하고 같이 수정도 했죠. 마케팅 부서 사람들이 거칠어서 말도 막 내뱉거든요. 여자인 E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도 많았는데 씩씩하게 이겨내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저랑 일할 때 유독 바짝 붙어 앉더라고요. 저한테 신호를 보낸 게 아닐까요?”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누가 먼저 ‘끼’를 부렸는지 이야기하며 애정을 뿜어냈다. 달달한 모습에 재수가 없어진 나는 서둘러 화재를 바꿨다.


 “사내 연애하면 어때요? 전 해본 적 없어서요.”


 D와 E는 조금 망설인 뒤 의견을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사내연애를 추천하지 않았다. 의외였다. E가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요. 사귀게 된다면 끝까지 숨기거나 한 명이 퇴사해야 편해요. ‘연애’는 사생활이잖아요. 저는 회사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밝혀지면 내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건데 너무 불편할 것 같았어요. 남자 친구 D랑 이야기해서 끝까지 숨기려 했죠.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계속 시치미 떼기로요.”


 “그런데 결국 들켰네요? 확실한 증거가 있었나요?”


 E가 D를 노려봤다. D가 수줍어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E는 사내연애가 들통난 상황을 설명했다.


 “회사 창립 기념일에 놀러 갔다가 들켰어요. 그날 뭔가 느낌이 싸했어요. D에게 다른 곳에 가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D는 괜찮다며 가자고 했죠. 손잡고 걷고 있는데 누가 달려와서 저를 툭 치더라고요. 하필 회사에서 입 가볍기로 유명한 우리 팀 대리님이었어요.”


 고개를 든 D가 입을 열었다.


 “그때 제가 대리님한테 제발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요. 만난 지 얼마 안 됐다고 나중에 우리가 회사 사람들한테 말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비밀로 해준다고 했죠. 그런데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어요. 대리님이 한 명에게만 말했는데, 그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말했고요. 그 한 명은 또 다른 한 명에게… 결국 회사 사람들 전체가 알게 됐어요.”


 어느 회사든 마찬가지다. 말조심, 행동 조심해야 한다. 회사 사람에겐 비밀을 말하지 말고 들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사내연애를 들켜버린 D와 E는 회사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E의 말처럼 회사 사람들에게 공개된 사생활은 회사 생활에 부담이 됐다. 남자 친구인 D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얼굴에서 화가 솟구쳐 올랐다.

 “E의 팀원들이 E를 따돌렸어요. ‘넌 짝지랑 먹어’라며 자기들끼리 밥 먹으러 가더라고요. 한두 번이 아니에요. 팀원이랑 안 먹으면 혼자 먹어야 하거든요. 어떻게 보고 있나요? 마음 아프잖아요. 그래서 E와 같이 밥 먹었어요. 화가 나는 건 사람들의 반응이에요.”


 “왜요? 사람들이 쓴소리를 했나요?”


 D는 말을 계속 이었다.


 “회사에 연애하러 다니냐며, 공과 사를 구분하라고 했어요. 그런 모습이 프로 같지 않다나? 같이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본인들이 만들었으면서요. 어이없죠?”


 그때를 떠올린 D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그뿐만 아니었다. 정당한 업무지만 사내커플이란 이유로 눈치를 봐야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두 사람이 왜 사내연애를 추천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옆에 있던 E가 D를 달랜 뒤 말했다.


 “갑자기 터진 일이 있어 D에게 급하게 수정 요청을 했어요. 마감 일정이 앞당겨졌거든요. D는 하던 일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제 업무를 먼저 처리해줬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희 팀 대리가 D를 나무라기 시작했어요. 여자 친구 일이라고 먼저 챙겨준다고요. 너무 화가 났어요. 시급한 업무를 끝내는 게 당연한 건데, 그분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회사에선 연애하는 티 안 내고 일만 했어요. 서로 말도 조심하고 자리를 같이 비우지도 않았고요. 들키기 전 보다 더 조심해서 행동했는데 모진 말을 들으니까 다 무너졌어요.”


 영화 <500일의 섬머>에 나오는 장면이 있다. 톰과 섬머는 사람들 몰래 회사 한편에서 진한 키스를 나눈다. 스릴감 넘치는 애정행각을 보고 있자니 심장 끝이 간질간질했다. 사내연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사내 커플을 로맨틱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였고 드라마는 찾을 수 없었다. D와 E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더욱 확실해졌다.


 “지금은 각자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죠? 같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요?”


 나의 질문에 D가 대답했다.


 “뒷말이 많은 회사였어요. E와 같이 출근할 때가 있었어요. 출근시간이 같으니까요. 일부러 만나서 온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을 만들었어요. 저와 E가 같이 자고 왔다고요. 진짜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저희 집이 엄하거든요.”


 D의 너스레에 나와 E는 웃음이 터졌다. D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그런 적이 있죠. 연인 사이니까요. 그런 날엔 E가 먼저 출근하고 제가 10분 뒤에 들어갔어요.”


 갑작스러운 D의 양심선언에 E는 D의 어깨를 때렸다. 난 결단코 두 사람이 부럽지 않았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회사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에 마음 앓이를 한 두 사람은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E가 먼저 동종 업계로 이직했고, 6개월 뒤 D가 중고 신입으로 다른 회사에 들어갔다. 몸은 멀어졌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사랑을 키워 갈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사내 연애를 시작하려는 그리고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을까요?”


 E가 D를 밀치고 나에게 말했다.


 “D의 말을 들었다가 들켰어요. 제가 말할게요. 마음이 가는 건 막을 수 없더라고요. 가는 것보다 막는 게 훨씬 힘들거든요. 마음껏 사랑하세요. 그리고 절대! 절대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세요. 연예인처럼 사람 없는 곳에 숨어 다니고요. 여건이 된다면 차에서 하는 데이트도 추천합니다.”


 “이거 완전 첩보 작전인데요?”


 “아, 회사 사람들의 동선을 미리 파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회사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잘 기억했다가 그곳을 피하는 거죠.”

 동기로 시작해 사내커플이 된 두 사람의 사랑은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들었다. 내년 봄 결혼을 계획 중인 D와 E에게 진심을 담은 축하를 전했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인사를 나눴다.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주변 시선과 말에 흔들리지 않고 사랑을 지켜낸 연인에게 늘 행복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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