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선택

by GLEC글렉

어느 겨울 아침, 택배 상자를 받으며 문득 생각했다. 이 작은 상자가 내 손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거쳐왔을까. 원자재가 채굴되고, 가공되고, 포장되어 수많은 트럭과 배를 거쳐 마침내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하기까지의 긴 여정 말이다.


2025년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무거운 과제들로 가득하다. 특히 기업들이 마주한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는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이 본격 시행되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확대 적용되는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물류와 운송 부문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6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수치를 들었을 때, 나는 놀라움보다는 묘한 책임감을 느꼈다. 우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며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지구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함이라는 새로운 언어

지속가능한 공급망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딘가 어색했다. 공급망이라는 차가운 비즈니스 용어에 지속가능함이라는 따뜻한 가치가 결합된 모습이 마치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두 단어가 만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 그리고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세 개의 축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공급망의 핵심이라는 것을. 원자재를 조달하는 순간부터 소비자에게 제품이 전달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자원을 순환시키며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제조하고, 사용하고, 버리는' 단순한 구조였다면, 이제는 '순환하고, 재생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원칙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포장재 하나를 선택할 때도, 운송 수단을 결정할 때도, 이제는 단순히 비용과 효율만을 고려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블록체인 기술로 제품의 이력을 관리하고, 사물인터넷 센서로 실시간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며, 인공지능으로 수요를 예측한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새삼 실감한다.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공급망에 투자한 금액이 전년 대비 35퍼센트나 증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세상이 정말로 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럽 기업들은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 적용을 앞두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아시아 지역에서도 ESG 경영 확산과 함께 관련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8퍼센트가 향후 3년 내에 기존 운영 방식을 대폭 개편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은 탄소 배출량 측정 및 관리, 친환경 운송 수단 도입, 순환경제 모델 적용 순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패션 브랜드들의 변화였다. 예전에는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친환경적 요소만 고려했다면, 이제는 면화를 기르는 농장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부터 매장까지 배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까지 모든 것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하나의 티셔츠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측정하는 일

지속가능한 공급망 구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정확한 탄소 배출량 측정이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는 오래된 경영 격언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기업의 탄소 배출량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직접적인 사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것과 구매한 전력 사용으로 인한 것, 그리고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이 그것이다. 놀랍게도 이 중 세 번째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서 90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많은 탄소가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운송 경로별 배출량을 측정하거나, 머신러닝으로 배출량을 예측하고, 블록체인으로 배출량을 인증하는 기술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기술들은 측정의 정확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해서 즉각적인 개선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가시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문제를 정확히 보는 것이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 시대의 기술들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기업들이 걸어가야 할 길

그렇다면 기업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첫 번째로 공급업체를 평가하는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 가격과 품질만 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탄소 배출량, 재생 에너지 사용 비율, 폐기물 처리 방법, 근로 환경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좋은 방식으로 만드는지까지 살펴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두 번째는 운송의 최적화다. 알고리즘을 활용해 운송 경로를 최적화하고, 적재율을 높여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동시에 전기차나 수소차 같은 친환경 운송 수단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하며, 드론이나 자율주행차 같은 새로운 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세 번째는 포장재의 혁신이다. 과도한 포장을 줄이고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바꾸며, 가능하다면 포장재 없는 배송도 시도해봐야 한다. 반복 사용할 수 있는 포장재나 자연 분해되는 소재를 활용해 포장으로 인한 환경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네 번째는 디지털 기술을 통한 투명성 확보다. 공급망의 모든 단계를 디지털화해서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소비자나 투자자들에게도 투명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변화를 이끄는 선구자들

실제로 이런 변화를 실천하고 있는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희망을 느낀다. 아마존은 2025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Shipment Zero'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전기 배송 차량 10만 대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CJ대한통운도 친환경 물류센터를 짓고 전기 택배차를 도입하며, AI 기반 배송 경로 최적화를 통해 연간 탄소 배출량을 15퍼센트나 줄였다. 고객사와 함께하는 그린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통해 공급망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소식도 반갑다.


유럽의 H&M은 'Conscious Collection'을 통해 재활용 소재 사용을 늘리고 물 사용량을 줄이며, 공정무역 인증 원료를 사용해 브랜드 이미지 향상과 실질적인 환경 개선을 동시에 이뤄내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변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의지와 기술,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며

2025년부터는 지속가능한 공급망이 선택이 아닌 의미가 될 거라고 한다.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 시행, 미국의 공급망 실사 강화, 아시아 각국의 ESG 공시 의무화까지, 전 세계가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비하려면 무엇보다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개선이 필요한 영역을 파악한 다음, 단계별로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급업체와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필요하다면 기술이나 자금 지원을 통해 함께 성장해야 한다.


기술에 대한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시스템, 공급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플랫폼, 친환경 운송 수단 등에 투자해야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오늘 아침 다시 택배 상자를 받으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상자가 내 손에 닿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지구에게 부담이 아닌 도움이 되는 날이 올까. 그 날을 위해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선택들을 시작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현재의 과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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