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기업의 환경 담당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배출권거래제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복잡한 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규정, 그리고 무엇보다 '또 다른 비용'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뛰어들어보니 우리 회사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그의 말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 파도를 피하려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위에서 서핑을 즐길 것인가.
배출권거래제는 바로 그 서핑보드 같은 존재다. 2005년 유럽에서 처음 시작된 이 제도는 이제 전 세계 3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5년부터 한국형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며 이 글로벌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처음 이 제도를 접했을 때 나 역시 의아했다. 공기 중에 배출되는 탄소에 값을 매기고, 그것을 사고판다는 발상이 낯설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보다 더 시장친화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 싶었다.
배출권거래제의 핵심은 '총량제한 및 거래'라는 간단한 원리다. 정부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 상한선을 정하고, 이를 기업들에게 배출권 형태로 나눠준다. 그리고 기업들은 이 배출권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시스템의 아름다움은 바로 경제적 인센티브에 있다. 배출량을 줄이기 쉬운 기업은 적극적으로 감축 활동을 펼쳐 여분의 배출권을 판매하고, 반대로 감축이 어려운 기업은 배출권을 구매하여 의무를 이행한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감축 비용은 최소화되면서도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다.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는 현재 약 68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70%를 포괄한다. 발전업부터 항공업까지 21개 업종이 대상이다. 처음엔 대부분 무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했지만, 점차 유상할당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2025년 현재 유상할당 비율은 약 10% 수준이다.
세계 각국의 배출권거래제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유럽의 EU-ETS는 20년 가까이 운영되며 가장 성숙한 시장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제도는 없지만,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주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캐나다 퀘벡주와 연계하여 국제적 협력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중국의 등장이다. 2021년 전국 단위 배출권거래제를 출범시키며 세계 최대 규모의 탄소시장을 형성했다. 중국의 참여로 글로벌 탄소시장의 규모와 영향력은 한층 확대되었다.
최근 EU가 도입을 예고한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2026년부터 철강, 시멘트, 비료 등의 수입품에 탄소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무역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서로 다른 배출권거래제 간의 연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배출권을 상호 인정하고 거래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탄소가격의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탄소시장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마치 각각의 강들이 하나의 큰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기업들에게는 이제 배출권거래제가 새로운 현실이 되었다.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기본은 정확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과 보고다. 이를 위해서는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전문 인력 확보, 그리고 검증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배출권 거래 전략도 중요하다. 시장 가격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기업의 배출량 전망에 따라 적절한 시점에 배출권을 매입하거나 매도해야 한다.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은 톤당 약 8,000원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상승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물류·운송 기업들에게는 특히 연료 효율성 개선과 친환경 운송수단 도입이 핵심 전략이다. 전기차, 수소차 등 무공해 차량으로의 전환, 운송 경로 최적화, 공동 배송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상쇄제도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외 산림 조성,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에 투자하여 발생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배출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다. 기업의 탄소중립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도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단순한 규제를 넘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에너지 효율화 사업, 탄소 컨설팅, 친환경 기술 개발 등 탄소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기업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종종 감명을 받는다.
처음 그 환경 담당자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배출권거래제는 비용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그 배를 안전하게 목적지로 이끌어줄 나침반 같은 존재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장이자,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여정이다.
탄소가 그려낸 이 새로운 시장에서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다.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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