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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물류창고 지붕에서 본 태양광 패널의 빛

by GLEC글렉

3년 전 여름, 나는 경기도 어느 물류센터의 지붕 위에 서 있었다. 물류&운송산업 탄소배출량 측정 전문기업 글렉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 현장이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반짝이는 태양광 패널들을 보며, 문득 이 작은 변화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궁금해졌다.


RE100.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그저 또 하나의 환경 캠페인쯤으로 생각했다. Renewable Energy 100%,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바꾸겠다는 약속. 2014년 영국의 작은 비영리단체가 시작한 이 움직임이 전 세계 430개 기업을 움직이는 거대한 물결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물류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늘 듣는 말이 있다. "우리는 마진이 너무 박해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 한 고객사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RE100 준비하고 계신가요? 저희 본사에서 계속 물어봐서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구나.


작년 한국무역협회 조사를 접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 제조기업의 16.7%가 이미 거래처로부터 RE100 이행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그중 절반 가까이는 당장 올해부터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볼보가 국내 부품업체와의 계약을 취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나라에도 희망은 있다. 2021년부터 시작된 한국형 RE100, K-RE100은 연간 전력 사용량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글로벌 RE100이 연간 100GWh 이상을 사용하는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작은 물류회사도, 동네 배송업체도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장 쉬운 건 녹색프리미엄제다. 한전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을 조금 비싸게 사는 것이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당장 시작할 수 있다. REC라는 재생에너지 인증서를 사는 방법도 있다. 작년 기준으로 7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니, 생각보다 감당할 만하다고 느끼는 기업들도 있다.


더 적극적인 기업들은 PPA, 즉 전력구매계약을 맺는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와 직접 계약해서 장기간 안정적인 가격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방식이다. 물론 가장 확실한 건 직접 만드는 것이다. 물류센터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처럼.


그 여름날 지붕 위에서 만난 한 설치 기사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거 설치하고 나면 전기요금이 확 줄어들어요. 처음엔 투자비가 부담되지만, 몇 년 지나면 오히려 이익이에요." 단순한 숫자 이야기였지만, 그 말 속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DHL은 이미 2050년 넷제로를 선언했고, 2030년까지 전기차 8만 대를 도입한다고 한다. FedEx와 UPS도 각자의 목표를 세우고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어떨까? 현대글로비스와 CJ대한통운이 자체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던가.


며칠 전, 그때 태양광을 설치했던 물류센터를 다시 방문했다. 센터장님이 자랑스럽게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여주셨다. 3년 전보다 40%나 줄었다고 한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이제는 다른 센터에도 추천하고 있어요."


변화는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지붕 위의 작은 패널 하나, 전구 하나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RE100이라는 거대한 목표도 결국은 우리 각자의 작은 선택이 모여 만들어진다.


오늘도 나는 또 다른 물류센터를 향해 간다. 그곳에서 만날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깨끗한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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