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전기트럭 타면 정말 지구가 살아나나요?"
작년 가을, 인천의 한 물류터미널에서 만난 트럭 운전사 김 기사님이 던진 질문이었다. 새벽 2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나눈 대화였지만, 그 질문은 내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물류&운송산업 탄소배출량 측정 전문기업 글렉에서 일하며 숱하게 들어온 통계와 수치들이 그 순간 생생한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6억 7,660만 톤. 그중 운송부문이 14%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운송부문 배출량의 96%가 도로운송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김 기사님이 몰고 있는 그 트럭들이, 우리가 주문한 택배를 실어 나르는 그 차량들이 만들어내는 숫자다.
어느 날 대형 물류센터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센터장님이 한숨을 쉬며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여주셨다. "이게 보통 물류센터의 3배예요. 냉동창고라서요." 24시간 돌아가는 냉동시설, 새벽배송을 위해 밤새 켜진 조명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컨베이어. 이커머스 시대가 만든 편리함의 이면이었다.
더 아픈 현실은 재생에너지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9TWh. RE100에 가입한 36개 기업이 필요로 하는 60TWh에도 못 미친다. 물류기업들이 추가로 참여하면?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한 중견 물류기업 대표님과 만났을 때, 그분이 털어놓은 고민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영업이익률이 3%예요. 여기서 RE100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건지..." 맞다. 물류업은 늘 그랬다. 제조업과 유통업 사이에서, 갑과 을의 관계에서, 늘 비용 절감의 압박을 받아왔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신규 재생에너지 설치가 오히려 줄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4GW였던 신규 설치량이 작년에는 2.5GW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는 겨우 1GW. 목표는 높아지는데 현실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전기트럭? 아직은 꿈같은 이야기다. 디젤 트럭보다 2~3배 비싸고, 한 번 충전으로 300~400km밖에 못 간다. 충전하는 데만 1~2시간. 서울에서 부산까지 화물을 실어 나르는 김 기사님에게는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정부가 K-RE100을 만들고, 전기트럭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고, 배터리 가격은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얼마 전 한 스타트업 대표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저희는 친환경 배송만 합니다. 비용은 좀 더 들지만, 고객들이 기꺼이 지불해요." 작은 변화지만, 시작이다.
물류센터 한구석에서 만난 젊은 직원이 물었다. "우리 회사도 RE100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텅 빈 지붕이 보였다. "저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전기요금도 아끼고, 지구도 살리고." 그의 눈이 반짝였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 물류업계가 RE100을 달성하기까지는 높은 산이 많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김 기사님이 물었던 그 질문에, 언젠가는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하고 싶다.
오늘도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수많은 트럭들을 본다. 아직은 매연을 뿜지만, 언젠가는 조용히 달릴 그날을 상상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지만, 누군가는 꿔야 하는 꿈이다.
새벽 물류터미널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진다. 오늘도 물류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도전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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