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35,000대의 전기 배송차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일 본에 있는 DHL 본사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물류&운송산업 탄소배출량 측정 전문기업 글렉에서 일하며 해외 사례를 조사하던 중 받은 답장이었다. 숫자가 믿기지 않아 다시 읽었다. 35,000대. 우리나라 전체 전기트럭을 다 합쳐도 못 미치는 숫자였다.
작년 가을, 운 좋게 독일 출장 기회가 생겼다. DHL의 도심 배송 센터를 방문할 수 있었다. 아침 7시, 노란색 전기 배송차들이 조용히 센터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매연도, 소음도 없었다.
안내를 맡은 직원 토마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2017년에 CEO가 직접 2050년 넷제로를 선언했어요.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죠. 하지만 보세요, 우리는 해내고 있어요."
그들의 비결이 궁금했다. "한 번에 다 바꾼 게 아니에요. 도심의 라스트마일 배송부터 시작했죠.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실현 가능한 곳부터." 작은 성공이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을 그들은 증명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DHL이 한때 직접 전기트럭을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StreetScooter라는 이름의 귀여운 노란 트럭. "시장에 우리가 원하는 제품이 없으면 직접 만들면 되죠." 토마스의 말에 모두가 웃었지만, 그 도전정신은 진짜였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Maersk의 혁신을 목격했다. 세계 2위 해운사가 2024년 첫 그린 메탄올 추진 선박을 띄웠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배는 30년을 써야 하는데, 검증되지 않은 연료를 쓴다고?"
하지만 Maersk의 CEO는 달랐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도 첫 걸음을 내딛으면 길이 보입니다." 그들은 아마존, H&M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손잡고 그린 운송 계약을 맺었다. 비싸더라도 깨끗한 운송을 원하는 고객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일본으로 눈을 돌려보니 야마토운수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도쿄의 좁은 골목길을 위한 전기 삼륜차, 교토의 전통 거리를 위한 전기 자전거. 획일적이지 않고 지역 특성에 맞춘 접근이었다.
"우리는 단순히 트럭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물류를 만들고 있어요." 야마토의 한 관리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용인의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만난 김 부장님의 표정은 복잡했다. "11톤 수소트럭을 시범 운영 중입니다. 아직은 한두 대뿐이지만..."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희망도 있었다. "수소 분야에서는 우리가 앞서가고 있어요. SK E&S와 함께 액화수소 운송사업도 시작했고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기회를 찾는 전략이었다.
현대글로비스는 2045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업계 평균보다 5년 빠르다.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후발주자의 이점이 있어요. 선진 사례를 보고 배울 수 있으니까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름도 없는 작은 물류회사의 이야기였다. 경기도 어느 작은 도시의 '그린로지스'라는 회사. 직원 200명, 트럭 50대의 작은 규모지만 그들은 이미 시작했다.
"처음엔 물류센터 전구를 LED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다음엔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고, 올해는 전기트럭 5대를 도입했습니다."
대표님의 눈이 빛났다. "대기업 화주가 우리를 선택했어요. 친환경 물류 파트너를 찾고 있었대요. 작은 투자가 큰 기회가 됐습니다."
모든 성공 사례의 공통점이 있었다. 리더의 의지, 작은 시작, 꾸준한 실행,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 거창한 계획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DHL의 35,000대 전기트럭도 처음엔 한 대였을 것이다. Maersk의 그린 메탄올 선박도 누군가의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창밖으로 구름 위에 떠 있는 태양이 보였다. 저 무한한 에너지를 우리가 쓸 수 있다면. 바람이, 물이, 자연이 주는 선물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세계에 이렇게 답할 수 있기를. 그날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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