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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신음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by GLEC글렉

안녕하세요 물류&운송산업 탄소배출량 측정 전문기업 글렉입니다.


제주도 해안가에서 본 일몰은 아름다웠다. 수평선 너머로 거대한 화물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붉은 노을에 실루엣으로 남은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지만 그 배가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알게 된 후로는, 같은 풍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스크러버라는 이름의 모순

2020년, 국제해사기구가 황 함량 규제를 시작했다. 많은 선박들이 '스크러버'라는 장치를 설치했다. 배기가스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장치라고 했다. 하늘을 깨끗하게 만드는 좋은 기술처럼 들렸다.


그런데 2025년 1월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스크러버가 배출하는 폐수가 주변 해수보다 최대 10만 배 더 산성이라는 것이다. 하늘을 깨끗하게 하는 대신, 바다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납, 카드뮴, 수은 같은 중금속.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 질산염과 황산염. 이 모든 것들이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단 0.001퍼센트의 농도에서도 해양 생물에게 치명적이라고 한다.


47억 유로와 6억 8천만 유로

2024년 5월, 네이처지에 실린 연구는 씁쓸한 진실을 보여줬다. 스크러버를 장착한 선박의 51퍼센트가 2022년 말까지 투자비용을 회수했고, 총 47억 유로의 수익을 올렸다.


반면 같은 기간 발트해 지역에서 스크러버 폐수로 인한 해양 생태독성 피해 비용은 6억 8천만 유로를 넘었다. 기업의 이익과 바다의 피해. 이 불균형한 저울 앞에서 누가 목소리를 낼 것인가.


보이지 않는 연기

MIT의 연구진은 스크러버를 장착하고 중유를 사용하는 선박이 저황유를 쓰는 선박보다 미세먼지를 70퍼센트 더 배출한다고 밝혔다. 블랙카본은 최대 4.5배 더 많이 나온다.


스크러버가 황산화물은 제거하지만, 다른 유해물질들은 여전히 대기로, 바다로 흘러간다. 이것이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40만 명의 숨결

국제 해운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40만 명의 조기 사망을 초래한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믿기지 않았다. 40만 명. 중소도시 하나가 매년 사라지는 것과 같다.


특히 항구도시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 선박 배출물의 70퍼센트가 해안선 400킬로미터 이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례는 더욱 아이러니하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항구도시의 선박 관련 미세먼지 농도는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선박 관련 사망자는 11.4퍼센트 증가해 2020년에 48,300명이 사망했다. 인구 집중과 고령화가 원인이었다. 배출량 감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북대서양의 희망

그래도 희망은 있다. 2024년 11월 국제청정운송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북대서양에 배출통제구역을 설정하면 2030년 한 해에만 118명에서 176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2030년부터 2050년까지는 누적 2,900명에서 4,3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이미 발트해와 북해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작은 변화가 만드는 큰 차이. 희망은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 바다의 현실

인천과 부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들도 안전하지 않다. 2025년 4월 발표된 연구는 항구 배출 저감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한 대기오염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대형 페리와 크루즈선의 영향이 크고, 계절풍은 오염물질을 내륙 도시까지 실어 나른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생태계

선박 오염물질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도미노 같다.

먼저 식물성 플랑크톤이 줄어든다. 산성화된 바다에서 광합성 능력이 떨어지고, 중금속이 축적되어 성장이 저해된다. 그러면 이를 먹고 사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소형 어류가 감소한다. 산호초는 하얗게 변해간다.


결국 우리가 먹는 수산물에도 영향이 미친다. 오염된 바다가 만든 오염된 먹거리. 이 연쇄작용의 끝에는 우리가 있다.


지금, 행동할 때

제주 해안가의 그 일몰을 다시 떠올린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은 아픔을 이제는 안다. 스크러버라는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친환경 연료로의 전환, 스크러버 폐수 해양 투기 금지, 항구도시 대기질 모니터링 강화, 국제적 규제 협력.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하다.


바다는 지구의 허파이자 생명의 요람이다. 편리한 물류를 위해 바다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 컨테이너선이 지나간 자리, 그곳에서 바다가 신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탄소배출량 관련 상담 및 문의는 GLEC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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