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물류업계는 준비되었는가
SK AX의 카테나-X 도입이 촉발한 제조·물류업계 대전환의 서막
부산항을 출발한 컨테이너 하나가 독일 함부르크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시 트럭에 실려 뮌헨의 어느 공장으로 향한다. 이 평범해 보이는 운송 과정이 이제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선박이 사용한 연료의 종류부터 운항 속도, 날씨에 따른 연료 소비량 변화, 육상 운송 시 트럭의 배기가스 등급, 심지어 운행 시간대별 교통 상황까지. 이 모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분석되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최근 SK AX가 국내 기업 최초로 독일의 카테나-X(Catena-X) 정회원사 자격을 획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순한 기업 하나의 성과로 치부하기엔,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이는 한국 제조업과 물류업 전반에 걸쳐 탄소배출량 측정과 관리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카테나-X는 2021년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유럽의 자동차 거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데이터 공유 플랫폼이다. 현재 17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는 거대한 생태계로 성장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이다. 기업은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정보는 표준화된 방식으로 투명하게 공유한다. 모순처럼 들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현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플랫폼이 단순한 데이터 공유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탄소발자국, 순환경제, 공급망 투명성 등 ESG의 핵심 지표들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전기차 배터리 하나를 만드는 과정을 예로 들면, 리튬 채굴에서 발생한 탄소부터 셀 제조, 모듈 조립, 최종 차량 장착까지. 모든 단계의 환경 영향을 정량화할 수 있게 되었다.
"글로벌 탄소배출량의 8%가 물류 운송에서 발생한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제품 전체 탄소발자국 중 운송 과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0-30%에 달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해질수록 이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SK AX가 카테나-X를 도입하면서 가장 먼저 직면할 과제도 바로 이 물류 운송 부문의 정확한 탄소배출량 측정이다. 기존의 대략적인 추정치나 평균값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실제 운송 경로, 운송 수단, 적재율, 연료 종류 등을 모두 고려한 정밀한 측정이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이 본격 시행되고, 미국도 유사한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정확한 탄소배출 데이터는 이제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없으면 수출이 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독일의 DHL은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전체 배송 차량의 60%를 전기차로 전환하고, 항공 운송에는 지속가능한 항공유(SAF)를 30% 이상 사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 중이다. 'GoGreen Plus'라는 탄소중립 운송 옵션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일본 야마토운수는 다른 길을 택했다. 도심에 소규모 물류 거점을 촘촘히 배치해 라스트마일 배송 거리를 단축하는 전략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트럭 운행 거리를 30% 줄였고, 전기 자전거와 도보 배송을 확대해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했다.
유럽의 한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B2B 고객의 73%가 탄소배출 데이터를 제공하는 물류업체에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순간이다.
현실을 직시해보자.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물류기업 중 탄소배출량을 정기적으로 측정하는 곳은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대기업은 85%가 측정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3%만이 측정한다. 격차가 심각하다.
측정 시스템 구축에 평균 3억 원이 드는 비용, 전문 인력 부족, 방법론에 대한 이해 부족. 중소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이다.
더 큰 문제는 인프라의 노후화다. 화물차 평균 차령 9.5년, 유로4 이하 노후 경유차가 전체의 45%. 이들 차량의 탄소배출량은 최신 유로6 차량 대비 3배 이상 높다. 20년 이상 된 노후 물류창고가 70% 이상이라는 통계도 암울하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술 혁신이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다.
AI와 빅데이터 분석은 최적 경로 설정과 적재 효율화를 통해 운송 효율을 20-30% 개선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공급망 전체의 탄소배출 데이터를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게 관리한다. 머스크, CMA CGM 등이 참여하는 'TradeLens' 플랫폼이 좋은 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은 물류 네트워크 전체를 가상 공간에 구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한다. 새로운 물류센터 입지, 운송 경로 변경, 차량 유형 변경이 탄소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할 수 있다.
자율주행의 군집 주행(Platooning)은 공기 저항을 줄여 연료 효율을 10-15% 개선한다. 최적화된 주행 패턴으로 추가적인 연료 절감도 가능하다.
2030년까지가 골든타임이다.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한다면, 글로벌 ESG 규제가 본격화될 때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반대로 준비하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될 위험이 크다.
2025년: 기초 역량 구축 탄소배출 측정 시스템 구축과 인력 양성에 집중
2025-2027년: 고도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최적화와 친환경 운송 수단 도입
2027-2030년: 전면 전환 탄소중립 물류 체계 완성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SK AX의 카테나-X 도입은 시작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제조사들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5년 내에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류기업들은 이제 단순한 운송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다. 고객사의 ESG 목표 달성을 돕는 전략적 파트너로 진화해야 한다. 탄소배출 데이터를 정확히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준비된 기업에게는 기회가, 그렇지 못한 기업에게는 위기가 될 것이다.
한국 물류업계도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대전환의 여정, 지금 바로 동참해야 할 때다.
물류&운송 탄소배출량 측정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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