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의 어느 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조용히 하나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문 너머에는 한국 물류업계를 흔들 거대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CBAM,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의 확대에 관한 공개 협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CBAM을 철강이나 시멘트 같은 제조업만의 문제로 여겼을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물류 탄소배출량 측정 전문기업에서 일하며 마주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제품 가공 단계까지, 확대되는 규제의 그물망
먼저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따라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현재는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 등 여섯 개 품목에만 적용되고 있으며, 2026년 1월부터 본격적인 탄소세 부과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다운스트림 확대가 이슈가 되고 있을까요. 다운스트림이란 제품 가공 단계를 의미합니다. 원자재에서 중간재를 거쳐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에서, 현재 CBAM은 주로 원자재와 중간재 단계에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기업들이 가공품 형태로 제품을 수출하여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철강 자체에는 CBAM이 적용되지만, 철강으로 만든 자동차 부품이나 기계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기업들은 철강 대신 철강 가공품을 수출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탄소 누출, 카본 리키지 문제입니다.
유럽이 던진 그물망, 한국 수출품을 향하다
2025년 7월 1일, EU 집행위원회는 CBAM의 다운스트림 제품 확대에 대한 공개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유럽 철강 및 금속 액션 플랜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연말까지 입법안을 제출할 계획입니다.
확대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는 품목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철강 및 알루미늄 집약적 제품, 자동차 부품 및 기계류, 전자제품 부품, 건설 자재 가공품. 이 품목들은 한국의 주요 수출품과 상당 부분 겹칩니다.
더 중요한 점은, 다운스트림 제품이 CBAM 적용 대상이 되면 단순히 제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품을 EU까지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즉 스코프3 배출량까지 보고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운송업계에 닥친 새로운 현실
여기서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현재 CBAM은 제품 생산 과정의 직접 배출인 스코프1과 전력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인 스코프2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운스트림 제품으로 확대되면,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인 스코프3도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스코프3에는 무엇이 포함될까요. 바로 원자재 운송, 완제품 배송, 물류 창고 운영 등 운송 및 물류 활동 전반이 포함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첫째, 제조사가 운송사에게 탄소배출 데이터를 요구할 것입니다. EU로 제품을 수출하는 제조사들은 CBAM 보고를 위해 운송 과정의 탄소배출량 데이터가 필수적으로 필요하게 됩니다. 따라서 운송사를 선택할 때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증빙할 수 있는가가 핵심 기준이 될 것입니다.
둘째, 국제 표준 기반 측정이 요구됩니다. EU는 2024년 4월 카운트에미션스 EU 규정을 채택하여 운송 배출량 측정을 의무화했습니다. 이 규정은 ISO 14083 국제 표준과 호환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즉, EU로 화물을 운송하는 기업들은 사실상 ISO 14083 기반으로 탄소배출량을 측정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셋째, 검증 가능한 데이터가 필수입니다. 단순히 추정치가 아니라, 제3자 기관의 검증을 받을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자사의 기준으로 계산한 배출량으로는 CBAM 보고 요건을 충족할 수 없습니다.
ISO 14083, 새로운 기준의 등장
ISO 14083은 2023년 3월 국제표준화기구에서 공식 발표한 온실가스, 운송 체인 운영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정량화 및 보고 표준입니다. 이 표준은 스마트프레이트센터가 개발한 GLEC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전 세계 물류 업계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국제 표준입니다.
ISO 14083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글로벌 표준의 통일입니다. 과거에는 유럽의 EN 16258, 미국의 EPA 스마트웨이 등 지역별로 다른 측정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ISO 14083은 이 모든 것을 통합한 최초의 범용 국제 표준입니다. EU의 카운트에미션스 EU 규정도 이 표준과 호환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전 생애주기 배출량 측정이 가능합니다. ISO 14083은 단순히 차량 운행 중 배출인 탱크 투 휠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료 생산 단계의 배출인 웰 투 탱크까지 포함한 전체 배출량인 웰 투 휠을 측정합니다. 이는 CBAM의 전 과정 평가 방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운송 수단을 커버합니다. 도로 운송뿐만 아니라 해운, 항공, 철도 등 모든 운송 수단을 포괄하는 통합 측정 방법을 제공합니다.
한국 운송업계의 현실, 그리고 걱정
안타깝게도 현재 국내 운송업계의 준비 수준은 미비한 상황입니다. 대형 물류사들은 일부 탄소배출량 측정 시스템을 자사 기준으로 구축하기 시작했지만, 중소 운송사들은 대부분 이러한 변화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요 문제점을 나열하자면 이렇습니다. 탄소배출량 측정 시스템 자체가 없습니다. ISO 14083과 같은 국제 표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검증 가능한 데이터를 생성할 역량이 없습니다. 차량별, 구간별 정밀 측정 인프라가 부재합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까요. 준비된 소수의 기업만이 EU 수출 화물 운송 계약을 따낼 수 있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화주사 입장에서는 탄소배출량을 제대로 측정하고 보고할 수 있는 운송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지 않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025년 7월부터 12월까지는 CBAM 다운스트림 확대 공개 협의 및 법안 초안이 마련됩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5년 말까지 입법 제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2026년 1월에는 현행 CBAM이 본격 시행됩니다. 현재 여섯 개 품목에 대한 탄소세 부과가 시작됩니다.
2026년부터 2027년 사이에는 다운스트림 확대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U 의회와 이사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 최종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28년 이후에는 다운스트림 CBAM이 본격 시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안 통과 후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시행이 예상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법이 시행되고 나서 준비하면 이미 늦다는 것입니다. 화주사들은 법 시행 전부터 운송사 선정 기준을 바꿀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운송사는 그 순간부터 계약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준비
그렇다면 운송사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크게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ISO 14083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ISO 14083의 핵심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세 가지 배출량 개념이 중요합니다. 웰 투 탱크는 연료 생산 과정의 배출량입니다. 탱크 투 휠은 차량 운행 중 배출량입니다. 웰 투 휠은 전체 배출량으로 웰 투 탱크와 탱크 투 휠을 합한 값입니다. CBAM은 전체 배출량인 웰 투 휠을 요구하기 때문에, 단순히 차량 운행 배출만 측정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측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려면 다음과 같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실시간 차량 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야 합니다. 연료 소비량, 주행 거리, 적재량 등을 수집해야 합니다. 자동화된 배출량 계산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API 연동을 통한 데이터 통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3자 검증이 가능한 데이터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특히 디지털 타코그래프나 IoT 센서를 활용한 실시간 데이터 수집이 필수적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인증 및 검증 체계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데이터가 국제 표준에 부합하고, 제3자 기관의 검증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ISO 14083 기반 측정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국제 인정 기관의 검증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데이터 감사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준비된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
CBAM의 다운스트림 확대는 더 이상 혹시 모를 미래가 아닙니다. EU는 이미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고, 2026년부터 2027년이면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늦어도 2028년부터는 본격 시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의 경쟁사는 이미 준비를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화주사들도 곧 ISO 14083 기반 탄소배출량 측정이 가능한 운송사를 찾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EU 수출 화물 운송 계약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기존 거래처를 잃을 수 있습니다. 준비된 경쟁사에게 시장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준비한다면 새로운 시장 기회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화주사에게 신뢰받는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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