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물류 탄소 측정의 기준을 하나로 통일한 날

by GLEC글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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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5일, 유럽에서 하나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EU 이사회와 유럽의회가 CountEmissionsEU라는 규정에 대해 정치적 합의에 도달했다는 소식이었다. 물류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스쳐 지나갈 뉴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합의가 가진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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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EmissionsEU는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유럽의 각 국가와 기업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물류 탄소배출량을 측정해왔다. 누군가는 A라는 계산식을, 누군가는 B라는 기준을 썼다. 같은 거리를 같은 트럭으로 운송해도 계산 결과가 달랐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고, 그래서 누군가의 친환경 주장은 늘 의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제 유럽은 이 혼란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하나의 표준 방법론으로 통일하겠다는 것. 그 기준으로 채택된 것이 바로 ISO 1408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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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 14083은 국제표준화기구가 2023년 3월에 발표한 운송 체인 온실가스 배출량 정량화 및 보고 표준이다. 도로, 철도, 해운, 항공까지 모든 운송 수단을 아우르고, 물류 허브까지 포괄하는 글로벌 표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 Well-to-Wheel, 우리말로 하면 추출부터 연소까지라는 뜻이다.

단순히 차량이 달릴 때 내뿜는 배출량만 세는 것이 아니다. 연료가 땅에서 뽑혀 나와 정제되고, 주유소를 거쳐 차량의 연료탱크에 채워지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까지 모두 더한다. 전기차가 주행 중 배출량이 제로라 해도, 그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가 나왔다면 그것까지 계산에 넣는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공정한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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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규정에서 탄소배출량의 공개 자체는 자발적이다. 기업이 원하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만약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면, 혹은 거래처로부터 데이터를 요청받았다면, 반드시 ISO 14083 방법론을 따라야 한다.


공개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다.

기업마다 제멋대로 계산해서 비교가 안 되거나, 그린워싱에 악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자발적이라는 단어에 안심하기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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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해보자.

글로벌 대기업들과 유럽 화주사들은 이미 협력사에게 탄소배출량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 대기업들은 Scope 3, 즉 공급망 배출량 보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협력 물류사인 우리에게 데이터를 달라고 손을 내민다.


유럽과 거래하는 한국 물류기업이라면 이 요구를 피하기 어렵다.


ESG 공시를 준비할 때,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표준에 기반한 데이터를 원한다. 입찰 현장에서 같은 조건이라면 탄소배출량을 투명하게 제시하는 기업이 선택받는다. 자발적 공개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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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물류 업계의 반응은 대체로 환영 일색이었다.

유럽 화물운송협회는 이번 합의가 물류 산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것이라 평가했다. 유럽 철도 업계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철도 운송의 강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며 반겼다. 국제도로운송연맹도 중소 물류기업의 현실을 고려해준 유럽의회에 감사를 표했다.


저마다의 이해관계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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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이야기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시대에 유럽의 규제는 곧 우리의 규제가 된다. 유럽 수출입 물류를 담당하는 포워더, 유럽계 화주사와 거래하는 3PL 기업,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해운사와 항공사. 이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온다.


대기업 협력사로서 ESG 데이터 요청을 받는 중소 물류기업, 향후 국내 규제 도입에 대비해야 하는 모든 물류기업에게도 간접적인 파장이 미친다.


GDPR이 전 세계 개인정보보호법의 기준이 된 것처럼, ISO 14083도 물류 탄소배출량 측정의 글로벌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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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의는 아직 몇 가지 절차가 남아 있다. COREPER 승인, 유럽의회 본회의 승인, 법률 전문가 검토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핵심은 이미 결정되었다.

EU 이사회와 유럽의회가 정치적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은 방향이 확정되었다는 의미다. 남은 것은 형식적인 승인과 문서 정비 과정일 뿐이다.


아직 최종 확정이 안 됐으니 기다려보자는 태도는 위험하다. 이제 확실해졌으니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규정이 정식 발효된 후 허겁지겁 대응하는 것보다, 지금부터 ISO 14083 기반 탄소배출량 측정 체계를 검토하고 준비하는 기업이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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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다.

EU 27개국이 물류 탄소배출량 계산 방법을 ISO 14083으로 통일했다. 공개는 자발적이지만, 일단 공개하기로 했다면 ISO 14083 방법론은 의무다. Well-to-Wheel 원칙으로 연료 생산부터 사용까지 전 과정을 측정한다. 유럽과 거래하는 한국 물류기업도 대비가 필요하다.


다음 글에서는 ISO 14083과 GLEC Framework의 관계, 그리고 공식 인정을 받기 위한 SFC 인증 체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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