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3. 커피에 미친 나, 바리스타 되다

Series : 나는 어떻게 '미친년'이 되었을까

by 글린더

Part 3. (제이의 1인칭 시점)


Q : 지금도 커피에 미쳐 있나?


A : 지금은 너무 진한 더블에스프레소보다는 살짝 묽은 아메리카노가 좋고 다크 한 향의 원두보다는 살짝 산미가 있는 원두가 좋고.

어떤 기분이냐 따라 같은 커피도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게 확실히 예전보다는 커피에 대한 집착이 덜해진 것 같아요. 지금은 미쳐있다기보다는 그냥 다른 음료 중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커피를 고르는 정도랄까.


장기연애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연인을 보면 설레냐는 질문에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하더라구요.

"심장이 계속 콩닥콩닥 설레는거 같지? 그럼 병원 가봐야해~그건 설렘 아니고 병이야~"

그러면서도 손은 꼭 잡고 더운여름날에도 찰싹 붙어다니는 거 어떤건지 아시겠죠? 비교할 그 무엇의 기준이라는 걸 갖다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

딱 그런 관계인 것 같아요.

더이상 심장떨리는 설렘은 없지만 여전히 가장 '선호'하는 참 아끼는 최애 같은 느낌이랄까.


살면서 무언가에 미쳐보는 것은 꽤나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인 것 같아요. 지금도 여러 부분에서 커피는 여전히 제 일상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예전만큼 딱 어떤 취향을 고수하거나 하는 경향은 없어진 것 같아요.

내 평생 살며 마실 양을 그 시기에 다 마셔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 시기에 살이 꽤 많이 빠졌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그만큼 마셔댔으면 커피 때문에 배불러서 아무것도 못 먹는 게 정상이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웃음)


바리스타를 하면서 커피를 더 좋아하게 되는 분들도 많이 봤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던 것 같아요.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 먼저 영업을 배워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커피를 만들었는데 그때 레시피를 따라 커피를 제조하고 해당 브랜드에서 요구하는 맛을 따르기 위한 적정량을 연습하며 제가 선호하는 맛이 뭐였는지 잃어버린 것 같아요.

아마도 딱 그만큼 이었겠지..라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게 꽤나 상실감이 크게 왔었거든요.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게 고작 이 정도였나 싶기도 하고, 고작 이 정도 하려고 그 난리를 쳤나 싶기도 하고 괜스레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약간의 과도기였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걸 못 이겨냈어요.

그 상실감이 스스로에게 큰 실망감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한 번씩 그 시절부터 수전증 시작되었다고 농담하곤 해요. 가끔 포기해 버린 길에 대한 아쉬움을 농담으로 웃어넘기면서 그럴 수 있지 하는데 실지로는 맘이 아직도 미련이 그득한 거죠.

그래서인지 한 번씩은 일단은 되든 안 되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부딪히고 깨져도 보고, 깨질 만큼 깨져보고 나서 후회를 해도 하자라는 맘에 좀 과하게 버티다가 후회하는 일도 더러 있었어요. 사람이 중간이 없나 봐요. (웃음)


그래도 참 다행인 게, 커피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지난 시간 동안 많은 커피들을 겪으며 좋은 추억들도 많이 쌓였던 덕에 가끔 별스럽지 않은 커피 한잔에 크게 위안을 받곤 해요.

머리는 잊고 있었지만 그리웠던 한 모금에 잊었던 옛 추억들이 소환되기도 하고, 그 향이 떠오르는 어느 좋아했던 장소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커피가 주는 심적인 평안함이 카페인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끔 아련한 추억이 커피 한 모금과 함께 향긋하게 피어오르는 느낌이 꽤 위로가 되거든요.


가끔 몸을 심하게 돌보지 않은 날이면 여느 날과 다름없는 그 커피 한잔에 호되게 야단맞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고, 혹여나 이 커피 한잔마저도 못 마시게 될까 억지로 밥을 먹고 억지로 운동도 한 적도 있어요.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왠지 커피는 제 인생에서 제일 마지막에 놓을 마지노선 같은 느낌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이 마저 못할 상태이면 정말 심각한 거다'라는 의미의 마지막 경고를 날리는 기준점 같은 거죠.


지금은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로 노후에 작은 카페하나 차려 보면 어떠냐라는 말을 들으면, 절레절레 손사래가 먼저 나와요. 내 마지막 끝까지 함께 갈 친구 같은 존재를 '일'로 바라보고 싶진 않더라고요.


어찌 보면 다른 의미로 커피에 아직 미쳐있는 것 같기도 해요.

집착 같기도 하고. 미련 같기도 하고.